이야기 치료를 통해 내 인생의 당당한 저자로 우뚝 서기
저는 종종 큰 서점을 가면 진열된 책들이 주는 색감과 고유한 느낌, 그리고 책 속에 담겨있는 저자만의 사연이 아우라처럼 발생시키는 일종의 묘한 힘들에 의해 이끌리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신간 소설 섹션에 잠시 서서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신간 소설을 잠시 읽다 보면 그들의 담백하고 적절한 표현력, 그리고 스토리 전개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결국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전철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지금도 어디에선가 하루하루 쓰여지고 쉼 없이 전개되는 개인들의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개인의 삶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위대한 이야기이며,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극적이고 감동적인 진행형의 이야기 실타래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삶이 아무리 힘겹거나 또는 반대로 삶이 아무리 즐겁더라도, 이자크 디네센의 말처럼 우리는 "희망도 없이, 그러나 절망도 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담학을 배우고, 실습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Narrative Therapry(이야기 치료:설화식 치료요법)는 그런 점에서 포스트 모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크게 어필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Narrative Therapy를 공부하고 실습하며 느낀 점은 이 상담기법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는 점입니다. 매력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몇 가지만 언급을 하자면 한 명의 개인의 고유한 이야기(사연), 성격, 사고방식, 그리고 철학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눅 들어 있는 개인을 다시 팽팽하게 부풀어 오를 수 있게 도와주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그 사람의 "문제"를 그 사람 본인과는 전혀 다른 외부체로 여기게 도와준다는 점을 뽑을 수 있겠습니다. Narrative Therapy (이하 NT)에 대해서 이 지면을 통해서 많은 것을 다룰 수는 없겠으나, 일단 가장 기초적이고 도움이 될만한 창의적인 면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들의 주변에는 직업이 전문상담사가 아니더라도 상담을 잘하는 친구나 지인이 한 두 명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의 특징이 뭘까요? "잘 들어주는 것", "존중", "배려" 이런 점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누구나 상대방과 대화할 때 잘 듣고,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자 노력하지만, 실제로 대화가 시작되면 그런 것들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일단 "잘 들어주는 것", "존중", "배려"의 개념이 여전히 추상적이며 듣는이가 이야기를 듣는 중에는 실제로 그런 덕목들을 제대로 실천하고 적용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NT에서는 "이야기"와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도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서 개인의 심리와 정서, 그리고 감정을 프로세스 합니다.
Carrie Doehring (2015)은 한 개인이 그 동안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사용해 왔던, 그리고 그 사람이 삶의 도식(Schema)을 그려내는데 일종의 "렌즈" 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그 사람의 철학 (삶의 가치관, 신에 대한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 등)을 "Lived Theology"라고 칭합니다. 어느 정도 성인의 나이에 도달하거나 이미 어른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박힌 "Lived Theology" (또는 "Embedded Theology")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지했던 "Lived Theology"가 삶을 살아가는데 순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역기능을 하거나 냉정한 현실을 해석하는데 적절한 소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차차 혼란스러워지고 우울해지고, 때로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합니다. 어떤 건강했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서서히 우울해지거나 무력해지고 서서히 심리상담소나 신경정신과를 방문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Lived Theology"가 더 이상 그 사람의 현실을 책임져주지 못하고 현실의 문제를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불필요하게 자신을 책망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그 "Lived Theology"가 정말 현재에도 타당한 렌즈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임상 심리학자들은 우울증이나 불장 장애에 걸린 사람들의 경우 심리적인 비유를 들어 "마치 어린 시절 부모가 태워주던 세발자전거를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타고 다니면서 자신만의 자전거를 아직 찾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비유가 상당히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NT는 상담사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해라 혹은 저것이 문제다라고 말하고 직접적인 행동 수정이나 문제 해결을 유도하기 보다는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Lived Theology"와 결부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내담자가 본인이 지녀온 "Lived Theology"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스스로 그것을 해체(Deconstruct)하고 자신만의 최적화된 "Intentional Theology" (Doehring, 2015)를 구축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습니다.
일단 NT를 사용해서 내담자와 상담을 할 때 가장 주지해야 하는 것은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직접적이고 강한 개입 (Direct Intervention)을 하지는 않으며, 내담자가 편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상황과 문제점 등을 계속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고찰하고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바로 "내담자의 문제는 내담자 자신이 아니다"라고 재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외부화(Externalization) 과정을 거쳐서 내담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는 내담자의 경우, 상담사는 알코올 중독은 단지 그 내담자가 겪고있는 문제이지 내담자 본인의 정체성인 것도 아니며 그 내담자의 인격과도 무관한, 마치 그 사람이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모자와 같은 것으로 내담자 스스로가 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외부화 과정을 진행 하기 위해서 가장 주효한 방법 중에 하나는 상담사와 내담자가 내담자의 감정, 문제, 또는 증상 등을 이야기 할 때 형용사보다는 명사로 그런 점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우울한 편이다", "나는 화가 난 상태다", "나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다"라는 문장을 명사를 활용해서
"내게는 우울함이 있다", "내 마음에 분노가 있다", "나는 알코올 중독 문제가 있다"라고 바꿔서 표현해도 어감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따라서 상담 시작 때 상담사와 내담자가 서로 그런 점을 착안해서 형용사 대신 명사로 내담자의 문제와 감정을 다루기로 일종의 약속을 해도 좋습니다.
이후에 상담이 진행되면, 상담사는 "나는 내담자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말해달라"는, "Not Knowing"의 자세를 바탕으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을 상담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 "Non-judgmental"의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포스트 모던적인 태도로서 상담사에게 요구되는 점 중에 하나는 "내담자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 이미 이야기 되었고 어떤 것은 "아직 이야기되지 않았다 (Unsaid)는" 관념에서 벗어나 둘이 함께 계속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 내담자의 이야기 중 말해지지 않은 부분(Unsaid piece)은 점차 그 형태가 드러나고 대화중에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되어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 될 여지가 많다는 점입니다" (Freedman & Combs, 1996).
프랑스의 철학자 Derrida는 "상징물, 낱말, 그리고 문장 등이 내포하는 의미와 뜻이 상황과 맥락 속에서 계속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Freedman & Combs, 1996). 이런 점을 주지해서 상담사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수긍과 받아들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평가나 조언을 해주는 태도는 삼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점차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하면서 그 이야기를 내담자가 "내담자 본인만의 언어 (In his or her own language)"로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 같은 주제와 내용을 다시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 그 이야기를 다시 새롭게 전개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실 NT를 적용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또 굉장히 많이 생각을 하며 진행해야 하는 상담 기술입니다. 상담 시 상담자는 나중에 상담록(Verbatium)을 보면 알겠지만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씩 "아, ~~ 해서 ~~ 행동을 하시고, 그 결과 ~ 상황이 된다는 거죠?"라고 반응하거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방향을 조금 심화시키거나 틀어주고, "그런 것을 본인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라고 내담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재구성(Re-authoring)할 수 있게 하는 짧지만 강력한 말들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상담사는 NT적용 시 내담자가 꾸준히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듣기와 적절한 질문이 필수인데, 이것이 단순한 듣기와 질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 Deconstructive Listening/Deconstructive Questioning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 상담사는 상담 시 "문제의 역사 (언제부터 그런 것들이 시작되었죠?)", "문제의 영향요소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그런 문제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나요?)", "상호관계(당신의 어떤 신념과 가치때문에 이런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것일까요?)", "전략(우울함이 당신의 귀에서 뭐라고 속삭이나요? 왜 그렇게 우울함은 확실하게 다가오죠? )"등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하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Freeman & Combs, 1996).
단순하게 말해서 NT는 기계처럼 일괄적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기계의 한 부품처럼 개인의 고유 속성의 가치와 색을 상실하고 그 안에서 반타의적으로 강요받아 얻게 된 자신의 철학이 더 이상 자신의 현실에서 의미 있는 도움의 틀로 역할하지 못할 때 그 개인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해서 자신에게 최적화 된 가치와 삶의 전략을 짜도록, 다시 삶이란 소설의 작가가 되어 자신의 완성중인 소설을 자신있고 당당하게 집필(Re-authoring)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계로 일괄적으로 찍어내는 기성복을 입고 살다가 더 이상 그 옷이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아서 자기에게 가장 잘 맞고 어울리는 최상의 옷을 맞춤제작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기회가 되시면 독자분들께서 서점이나 인터넷으로 NT를 활용한 상담사들의 실제 상담 동영상이나 상담록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스를 반복해서 보며 다른 상담 요법과의 차이점을 눈여겨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2018년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각자 자신만의 삶이란 소설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즐겁게 집필하며 삶의 소소한 보람을 매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소설책에 쓰여질 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 글은 Freedman & Combs의 Narrative Therapy (1996)과 Carrie Doehring의 The Practice of Pastoral Care(2015)를 참조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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