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부메랑 Apr 30. 2021

심리상담사가 정서편식주의자 내담자를 만나다

나를 이유 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내담자

 4월 중순까지만 해도 4월이란 사실이 무색할 만큼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스산한 날씨가 연속되어서 재킷을 입고 외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제법 5월을 앞둔 시점이 되어서 그런지 캘리포니아의 태양도 그 특유의 오렌지 빛을 발산하며 야자수와 어우러져서 정열적이고 낭만적인 열과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바쁜 하루였다. 아침부터 스텝미팅과 슈퍼비전이 있었고, 오후에는 연이은 상담과 프로그레스 노트 작성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렌지색 도화지에 검은 야자수가 그려져 있는 것 같은 캘리포니아 특유의 낭만적인 저녁 하늘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온도가 올라간 데다가 스케쥴이 바빠져서 그런지 저녁이 되어도 별로 입맛이 없었다. 인 앤 아웃에서 햄버거를 하나 사먹으려다가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자는 마인드로 멕시칸 타코 음식을 포장해와서 사무실 인근 공원에 앉았다.




이 곳은 멕시칸을 비롯한 남미지역 출신들이 모여사는 지역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공원에는 멕시칸으로 보이는 가족들이 나와서 바람을 쐬며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거나 야구나 농구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타코를 한입 먹으니 멕시칸 음식 특유의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풍겨져 왔다. 그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이렇게 맛있는 식사로 하루를 정리할 수 있어서 참 보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뭇한 기분을 콜라를 마시며 증폭시키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것이 행복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공원과 오렌지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일과를 오전부터 되새겨보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밀린 일들을 했다. 그런데 가슴 한켠에 뭔가 불편한 기억의 조각이 고개를 들었다. 불편한 마음...... 아니 더 정확히는 답답하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나는 그런 마음이기도 했다. 무엇이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마음이 들도록 한 것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후에 있었던 어떤 여성 내담자와의 상담이 떠올랐다. 그녀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미국에 온 지 5년 정도 되어가는 직장여성이다. 상담을 요청한 이유는 이민자로서 겪는 외로움과 차별,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로 인한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그녀가 나의 내담자가 된지는 2달이 되어간다.


누군가 내게 상담사로서 상대하기가 가장 어렵거나 힘든 내담자가 어떤 유형의 내담자라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의 어두움이나 자기가 싫어하는 부분을 분별없이 상담사에게 투영(Projection)해서 이른바 전이(Trasference) 현상을 무분별하게 일으키는 유형이라고 답할 것이다. 성격이 난폭하거나,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도덕적인 문제가 있거나, 어떤 지나친 중독 문제가 있거나 한 내담자들도 까다로운 내담자 유형들이지만 돌이켜보면 내게 자신의 어떤 부분을 투영하고 전이를 일으켜서 상담사인 나를 본인의 해석한 틀로 이해하고 나를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사람들은 그런 류의 사람들보다 훨씬 상담하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이 여성 내담자도 바로 그렇게 분별없이 상담사인 내게 투영과 전이를 일으키며 나를 오해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있는 느낌이 다분히 드는 유형의 내담자이다. 그런 것을 느낀 것은 상담을 시작한 지 2주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서서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태도가 변해갔다. 나와 2미터 거리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리고 사무실에는 우리 단 둘만이 있었지만, 마치 그 누구 보나 멀리 있는 느낌이 들었고, 마치 영혼 없이 나를 대하는 느낌도 들었다. 차가웠고, 답답했고,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런 부분을 다루기 위해 상담 중에 이런 질문들을 한 적이 있다.

"혹시 저를 보면 예전에 내담자님을 힘들게 하거나 상처를 준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시나요?"

"혹시 저를 보면 긴장이 되거나 내담자님이 싫어하는 기분이나 감정이 피어나나요?"

"저와 상담을 하고 나면 어떤 기분이 되시나요?"



이것은 나의 상담적 기술이나 능력, 또는 태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질문에 내담자는 "아니오"라고 하면서 부인하고 말을 흐렸지만, 그런 내담자의 태도에서 뭔가 집고 넘어가거나 프로세스를 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내가 프로페셔널하게 상담을 하기 전에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있어왔다. 나와 아직 제대로 말도 해보지 않았는데 나의 첫인상과 스타일만으로 마치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경계하고 멀리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는 그것이 사람들의 '투영' (Projection), '전이(Transference)' '거울효과(Mirroring)'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그냥 내 첫인상이나 스타일이 별로 마음에 안드나보는구나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분명히 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자신이 극도로 싫어하거나 숨기고 싶어 하는 부분들이 있고, 나를 보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런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어 그냥 나를 경계하고 멀리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싫어한 다는 것이라는 것을. 예를 들어 나의 이미지가 자신을 괴롭히던 오빠와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나의 말투나 표현하는 스타일이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그것과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내 외모나 옷 입는 스타일이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첫사랑의 상대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했던 이 말을 너무 좋아한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특별한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당신에게 못되게 굴면 그것은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이 가진 어두움과 독성 깊은 감정을 통해 단지 자신 앞에 있는 당신에게 그런 것을 거울처럼 투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요"


그들은 본인의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위로받고 격려받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인상이나 느낌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정반대로 그들에게 무한에 가까운 신뢰와 애정, 그리고 친절을 가지고 다가섰기에 그런 이유 없는 차별을 겪는 나로서는 기분이 말이 아니게 안 좋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정서편식자' 라고 부르고 싶다. 상대방의 진심된 의도와는 상관없이 첫인상이나 분위기에서 많은 것을 결정지으며, 의지와 노력과 상관없이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서든 자신의 정서가 편하게 느껴지도록 유도시켜 주는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친절하고 우호적이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에게는 노골적으로 선을 긋고 벽을 세우며 거리를 두기에 나로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도 나지 않고, 그 사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될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예전에 아내와 결혼을 앞두고 아내의 후배들과 인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모두 나를 환영했고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도 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거기에도 바로 그 정서편식자 후배가 있었다. 나는 나이차도 제법 나는 그 후배에게 최대한 친절하고 정감 있게 다가서며 혹시라도 내게 가진 편견이나 오해를 풀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가며 느낀 것은 그런 노력이 별로 통하지 않고 오히려 나만 지치고 절망만 커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담 세션에서도 가끔 이런 정서편식자들을 만난다. 물론 나를 좋게 보고 나를 환대하며 다가오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들의 그런 성향이 상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가 되는 경우에는 정말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다. 상담은 크게 상담의 내용 위주 (Content)인 부분과 비내용적인 부분 (Process)으로 구성된다. 사람들은 상담에서 주고 받는 내용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비내용적인 부분을 훨씬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상담 전문가들 중에는 비내용적인 부분만으로 한 시간 동안 상담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소위 내담자와의 관계도 좋아야 하며, 상담사가 경험이나 직관이 대단히 좋은 경우에 가능한 것이다.


오늘도 오후에 나는 그녀와 한 시간 동안 세션을 가졌다. 나를 경계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빛이나 표정, 말투로 고스란히 표현하는 그녀가 어쩌면 조만간 상담을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당연히 든다. 상담사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반대로 내가 내 안에 가진 어두운 부분이나 안 좋은 기억을 그녀에게 역전이(Countertransference)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아 있는 타코를 다시 먹었다. 그리고 아직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시원한 콜라도 벌컥벌컥 마셨다. 몸과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졌다. 하지만, 머릿속에 남은 나의 궁금증과 답답함, 그리고 불쾌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나와 그녀 사이에는  상담사와 내담자로서 보이지 않는 관계 갈등 (Rupture)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그냥 방치하고 아무  없었던 듯이 그냥 가는 것도 그다지 진실된 (Genuine) 상담사로서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만약 다음 주에 그녀가 세션에 평소대로 나타난다면, 나와 그녀의 얼굴 가면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역동과 전이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시도해  생각이다. 물론 저항이나 마찰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오해를 풀고 보다 단단한 신뢰를 쌓는 다면 그게 오히려 서로에게 유익하고 생산적인 시간을 허락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필요하다면, 그리고 내담자가 듣고 싶어 한다면 나의 다른 그런 정서편식자들과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녀의 반응을 보며 대답을 듣는 것도 도움이  것이다. 결국 이런 대화를 하는 가장  목적은 내담자가 상담을 통해 최대한 효율적인 상담효과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전히 그녀를 향해 Care 하는 마음과 Support 하는 마음을 유지할 것이며, 뭔가 도전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중성적으로 나의 호기심과 존중을 보이며 질문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쉽지 않은 일들이지만, 내담자와의 관계를 수선 (Repair)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런 프로세스에 대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기에 걱정도 된다. 하지만 상담사로서 나의 의도는 명쾌하고 진실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만일 그녀가 그런 나를  싫어하거나 정색하거나 불쾌해해도 괜찮다. 나는 상담사로서 서로를 위한 최선을   것이니까. 그래서 두렵지 않다.



나는 남아 있는 콜라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하늘은 더욱 짙은 오렌지색 하늘로 변해있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활기찬 동작들 또한 여전했다.


=======================================================================

*닥터부메랑의 유튜브에 방문해주세요^^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해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