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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Mar 24. 2021

오랜 시간동안의 트라우마와 공황장애의 상실감 속에서

그는 여전히 그였다

지난 3월 첫 주, 나는 1년 만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서 활동반경과 활동성이 현격히 저하된 채로 1년이 지나다 보니 나도 그렇고 가족들이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침체된 느낌이 들어서 다소 무리한 스케쥴을 짜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애리조나의 Sedona라는 지역으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왔다. 애리조나의 자연이 뿜어내는 Vortex에너지는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몸으로는 느낄 수 있었다. 매일 하이킹을 하면서 지쳤던 몸과 마음에 맑은 공기와 Vortex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은 7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온 피로와 수고를 쉽게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다음날부터 예상대로 밀린 스케쥴이 쌓여있었다. 3월이 되었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날씨도 아직은 제법 추웠다. 평일과 주말의 경계에 선 목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베이컨과 계란후라이로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보다 거의 1.5배 이상이 되는 업무량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순간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내일 저녁에 있을 상담을 오늘 밤으로 앞 당길 수 있을까요?"


 문자를 보낸 사람은 42세의 남성으로 7년여간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내담자였다. 상태가 호전된 듯했다가 작년에 코로나 상황이 시작된 이후로 공황장애가 재발되어 두 달전쯤에 나의 내담자가 된 분이다. 문자에서 뭔가 다급함이 느껴지고 마침 오늘 밤에 한 시간 동안 세션을 가질 수 있는 스케쥴이 가능해서 그러자고 했다.


어느새 빈 잔이 된 커피 잔에 커피를 더 따르고 검게 흐린 아침 하늘을 보고 있자니 애리조나에서 봤던 파랗고 눈부셨던 하늘이 떠올르면서 오묘한 기분이 되었다. 예상대로 바쁜 하루였다. 아침부터 서류 정리와 스탭 미팅, 그리고 오후에 연이은 상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아침에 내게 문자를 보낸 내담자를 온라인 상담 웹에 마련된 Teletherapy 전용 방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자마자 내담자가 들어왔다. 내담자의 얼굴은 어찌 보면 긴장한 듯 보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안정된 듯하기도 한, 많은 메시지들이 혼합된 표정의 얼굴이었다. 


예상대로, 내담자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증상이 오히려 더 악화되어서 심리적으로 무력감과 더불어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담자는 30대 중반 무렵에 대기업에서 성실성과 능력, 그리고 특유의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았었다. 성과와 인정의 상승 고리를 이어가던 중, 사랑하던 애인에게서부터 충격적인 배신을 당하면서 그는 공황장애 증상을 겪게 되었다. 그렇게 당당하고 건장하던 그가 순식간에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출장을 갈 때에는 고속도로에서 불현듯 질식감과 호흡곤란 증상이 생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으면 식은땀이 나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으며, 회의 중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와 긴장감이 그를 괴롭혔다. 이런 증상이 점차 심해지는 바람에 그는 결국 퇴사를 했고, 퇴사 이후 치료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조금씩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3년 전쯤에 작은 규모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직후 인생의 짝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며, 작년에는 둘 사이에는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다. 


꿈과 열정이 많았던 젊은 청년이 본인의 잘못도 아닌 일로 트라우마 수준의 충격을 받아 공황장애를 앓게 되고, 인정받으며 잘 다니던 대기업마저 퇴사를 하고 2년 이상을 방황했으니 그 당시의 상실감과 비애가 얼마가 컸을지는 굳이 이해하고 상상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통렬하게 느껴졌다. 그런 공황장애의 늪에서 나오려고 이 내담자는 굉장한 사투를 벌였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공황장애에 좋다는 약도 골고루 먹어보고, 운동도 하고, 영성 생활도 하고, 명상도 하고, 인지행동치료도 받아보고, 취미로는 매월 등산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느닷없이 코로나라는 전염병 상황과 더불어 다시 그 지긋지긋하던 공황장애가 재발했으니 한 가장으로서 그가 느낀 절망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어떠했을지도 이해가 되었다. 

이미 내담자는 오랫동안 공황장애를 겪어와서 그런지 공황장애의 특징과 대응방법 등을 잘 알고 있었고, 인지행동치료도 받아봐서 본인 스스로가 본인을 위해 어떻게 자신의 왜곡된 인지 체제를 파악하고 조절할 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내가 상담사로서 딱히 해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 치료 계획(Treatment Plan)을 짤 때 애매한 부분도 있었고, 나로서도 적잖이 당혹스럽기도 했었다. 물론 치료 계획은 초반에 한 번짜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세션을 거듭하면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는 것이므로 너무 초반에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모든 치료 계획을 확정할 필요는 없다. 


지난 2달 간 이 내담자를 위해서 내가 해온 것은 기본적으로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내가 그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진심으로 내담자를 격려한 것이다. 세션을 거듭할수록 이 내담자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말을 더 집중해서 들었고, 그와의 세션 상담 녹화 테이프를 여러 번 돌려가며 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내담자의 입장에서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며 이 내담자가 어떤 기분이고,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그 외 치료와 회복을 방해하거나 막아서고 있는지 등을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 언뜻 그에게 공황장애는 물론 그 자체의 증상도 힘들지만, 성실히 살던 그에게서 사랑하던 애인이 배신을하며 떠나가고, 건장하던 그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와 결국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던 경험은 그 자체가 그에게 큰 상실감을 주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몸상태는 예전에 한참 공황장애가 진행되던 때에 비하면 많이 안정되었고 건강한 편이었다. 다만, 그 때보다 안 좋은 것은 그의 심리적인 위축 상태였다. 늘 밝고 긍정적이던 그의 마음 속의 목소리 (Self talk)와 원고 (Scripts)는 예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부정적인 것들로 변해있었다. 즉, 그의 몸과 정신의 건강은 차차 회복되어왔지만, 마음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자기 목소리나 심리적인 패턴이 무척이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해와서 굳어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중심에는 상실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고, 그 상실감은 그에게 회사를 다니던 시절을 기점으로 볼 때 그로 하여금 다시는 그 때처럼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우울함과 절망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런 이유로, 그는 세션 중에 이런 말들을 자주 했다.

"그 때는 참 행복했었죠......"

"공황장애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요"

"예전에는 이렇게 하지는 않았었는데요......"

"나는 참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 같아요......"


지난 7년간의 그의 삶에 있어서 공간과 시간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늘 공통적으로 작용하며 그를 힘들게 해온 문제 (Matter of life)는 어쩌면 그가 느낄 지 모르는 "과거와의 단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우마와 공황장애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그들을 억누르는 메세지는 크게 두 가지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바로,


"세상은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곳이야" 

그리고

"내가 내게 닥쳐오는 위험과 문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

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담자는 공황장애 증상에 대해 예전만큼 힘들어하지도 않고 있고, 설령 그런 증상이 찾아와도 스스로 가진 공황장애에 대한 지식, 경험, 노하우 등을 통해 그런 증상을 조절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서로 대화를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세션이 진행되면서 현재 내담자의 진짜 문제는 공황장애 증상보다는 한껏 움츠러들고 부정적으로 퇴색해 버린 내면의 목소리와 원고 (Scripts)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였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요?"

"흠, 글쎄요...... 조금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그렇군요, 오랜 시간 불안과 공포감에 눌려 살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아무래도 삶이 예전보다는 부정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 생각이 맞나요?"

"아마 맞을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변했지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아주 많이요"

"아주 많이 부정적으로 변했다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어떤 부분이 더 그런 것인지"

"말 그대로예요, 모든 것에서 아주 부정적이 되었어요. 마음에 일종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기대와 희망이 없어지셨어요? 음, 그러면 그런 것이 이제 오히려 육체적인 부분에서도 부정적인 신체화 증상을 일으키기도 하겠군요"

"네, 그래서 살도 조금 빠졌고, 잠도 깊이 못 자고 있어요"

"네, 그런 고통이 어느 정도 일지 정확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일지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 지금,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소들이 있을 텐데, 뭐가 바뀌거나 채워지면 그런 것들이 조금은 안정될 수 있을까요? 아니,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글쎄요, 단순하게는 불안감과 우울감이 조금 진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과거가 그리워요. 예전에 회사 다니던 시절, 늘 즐겁게 일하고, 꿈이 있었고, 동료들과 퇴근 후 술 한잔 하던, 내가 건강하던 그때 가요"

"과거를 자주 그리워하시나요? 말씀하신 그런 것들이 정말 많이 그리우신 것 같은데, 지금 삶의 현실과 과거의 현실이 그렇게 크게 다른가요?"

"자주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데 옛날 생각이 자주 나요. 후회도 되고...... 지금도 물론 좋은 것은 있지만,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랄까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때의 나랑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

"그러시군요......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고 계시는 것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상실감. 아무 잘못 없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 분노, 그리고 자기 연민이겠죠"


이런 대화를 하면서 점차 대화 주제도 공황장애에서, 트라우마를 거쳐, 그의 상실감으로 포커스가 굳어갔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그 회사에 입사하면서 삶에서 일종의 전성기를 보냈다고 한다. 건강, 일, 자신감, 관계, 취미 생활 등 모든 면에서 균형 있게 만족스럽고 감사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는 건강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자주 냈고, 일에도 흥미를 갖게 되어 팀장님과 동료들에게서 신망을 얻었었다. 꿈과 열정, 성과, 그리고 만족스러운 여가 생활 등 삶의 모든 부분에서 즐겁기만 했던 그였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당시의 그의 마음 속 내면의 목소리 (Scripts)는 매우 긍정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가령, '나는 건강하고 똑똑하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세상은 꿈꾸는 자에게 호의적이다', '나의 미래가 기대된다' 등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내면의 목소리는 그와는 대조적인 것들로 뒤바뀌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위험한 일들이 많다',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나의 미래가 걱정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등이었다. 


다행인 것은 지난 몇 년간 그의 몸상태가 회복되어서 공황장애 증상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그 동안 건강을 위해서 술과 담배, 그리고 커피를 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에 비해 현재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인격이 비록 우울함과 불안감에 가려져서 잘 표현이 안될 때가 있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성장하고 성숙해졌다고 했다. 그런 좋은 변화에 대해서는 그도 스스로 좋게 생각했지만, 그런 것들은 그가 여전히 상실감으로 힘들어하고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을 대체해 주지는 못했다. 


세션 10여분을 남기고 나의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내담자의 말을 들으며 이 내담자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려서 내담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집중을 못 해 몇 마디를 놓치고 못 듣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내담자도 알아차린 것인지 세션은 잠시 침묵으로 채워졌다. 1-2분 정도의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은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 나도 깊은 생각을 했고, 그도 자신의 상태와 머릿속 생각들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고 있는 듯했다. 


오늘의 화두는 '상실감'이었고, 그 상실감은 그를 과거와 현재를 단절된 두 가지 세상과 삶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두 번째 세상에서 지나가 버린 첫 번째 세상을 망연히 그리워하고 있다.


우연히 컴퓨터에 얼마 전에 단체 상담에서 사용했던 포도 사진 파일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 포도가 다른 포도와 가지, 그리고 나무 뿌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에 착안하여 그 연결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내담자님, 괜찮으시면 이 사진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네"

"제가 이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냥 이 사진을 보시고, 제가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냥 조용히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네, 그러죠"


나는 그 사진을 화면에 크게 띄웠다. 탐스러운 보라색 포도가 주렁주렁 맺혀있는 사진을 보여주었고, 나는 내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카메라를 껐다. 



"포도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정말 싱싱하고 맛있게 생겼군요"

"하하, 네, 정말 그렇죠? 자, 그 포도가 내담자님 본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네"

"공황장애를 겪기 전에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본인의 삶을 떠올려보세요. 그 때의 기분, 꿈, 비전, 아침, 일, 동료들과의 대화, 회식, 주말의 생활 등을요"

"네"

(3분 뒤)

"잠시 상황을 바꿔서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삶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의 나의 기분, 일상, 꿈, 비전, 아침, 사람들, 주말의 생활 등을요"

"네"

(3분 뒤)

"어떻습니까?"

"글쎄요......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고, 나의 삶도 변했고,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과거의 삶도 참 그리워지고요"

"그때의 꿈은 뭐였나요?"

"당시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 좋은 경력을 쌓은 뒤에, 약 1-2년 뒤에는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로 입사하는 것이 꿈이었죠"

"아, 그렇군요. 멋있는 꿈이었네요. 그런 꿈을 가진 이유는 뭐였나요? 성공이었나요?"

"제 꿈이 단순히 돈 잘 벌고 명예를 얻는 그런 성공은...... 아니었어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value creation for human being'이 저의 목표의 근본 철학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뒤에 많은 것을 배우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제 비즈니스를 하면서 제가 다양한 가치와 힘을 키우게 되면 그런 것을 사람들을 위해 잘 써보자는 뭐 그런 주의였죠"

"'value creation for human being'이라니, 대단하군요. 그런데 내담자님께서는 지금 어쨌든 사업을 하고 계시잖습니까?"

"네, 조그만 무역업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 어쨌든 그 시절의 꿈을 이룬 것 아닌가요?"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만약에 그 시절에 건강했었다면, 사랑하던 여인에게 배신당하지 않아서 공황장애를 겪지 않아서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지금처럼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의 꿈은 무엇입니까?"

"사업을 더 안정화시키면서 조금씩 무리하지 않고 키우고 싶어요"

"그것도 역시 'value creation for human being'을 위한 것인가요?"

"그렇지요"

"내담자님, 그럼 과거의 꿈이 지금까지 계속 연결되어 맞닿아 있던 것이 아닌가요? 저는 그게 어디서 왜 단절되었다고 보이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네, 그렇네요. 연결되어 있었네요"


내담자는 조용히 대답했지만 뭔가를 새롭게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의 대화를 통해 내담자는 그가 그리워하던 과거의 그가 갖고 있던 꿈, 비전, 목표, 역사, 신체의 특징과 이미지 (Body image)가 여전히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공황장애 경험을 하던 몇 년간 그는 극도의 분노와 절망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이 믿던 신도 자신을 버렸다고 믿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세션을 마감하며 그에게 물었다.

"지금은 어떻세요? 지금도 사람들과 내담자님이 믿던 신이 내담자님을 버렸다고 믿으시나요?"

"글쎄요, 꼭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은 어쩌면 아직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신은 나를 사랑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를 불쌍하게는 여기고 있을 것 같아요"


세션을 마친 그의 표정은 한층 안정되어 보였다. 혈색도 조금 바뀐 것 같았고, 앉아 있는 자세에서도 조금이나마 힘이 느껴졌다. 그는 잠시 관자놀이 부분을 두 손으로 마사지하듯 어루만지면서 방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나도 말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내담자가 세션을 통해 무엇을 새롭게 느꼈고, 무슨 도전을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이제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하지 말고, 과거와 계속 연결되어온 현재에 서서 그 연결성을 확신을 갖고 재발견하면서 지난 과거를 분노와 절망의 각도에서만이 아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가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조금 더 즐겁게 미래를 건설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만한 실마리와 단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확신을 갖고 한 걸음씩 자신 있게 걸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와의 세션을 마친 후 나도 그 포도 사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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