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적 갈등의 중심에서 고군분투하는 내담자를 만나다
4월의 어느 날 저녁, 잠시 저녁을 먹고 책상에 와보니 핸드폰에 부재중 통화기록과 함께 음성메시지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요즘 하도 스팸전화가 기승을 부려서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남겨진 음성메시지도 확인하기가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가 중요한 전화를 한 것일지도 모르니 음성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X에 거주 중인 ㅇㅇㅇ라고 합니다. 시간 되실 때 연락 바랍니다"
다행히 스팸전화는 아니었고, 어느 중년 여성의 차분한 말투로 녹음된 상담 요청이었다. 바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2번 정도 울렸을 때 바로 전화를 받은 내담자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런 경우 접수 상담(Intake)도 아니고 단지 예약을 잡는 목적으로 전화를 한 경우인데, 얼마나 다급하고 힘들었는지 내담자는 한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원래는 도중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예약을 빠른 시일 내로 잡은 뒤에 사무실에서 만나야 하는데, 조금 더 조금 더 하다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네, 그럼 다음 주 화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약속을 한 뒤, 다음 주 화요일에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내담자는 60대 중반의 여성이었는데,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고, 옷차림이나 표정, 제스츄어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보통 첫 세션에서는 intake라고 해서 기본적 접수내용을 어떤 서류에 기입해서 상담사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이 서류를 이렇게 세련되게 마무리해서 제출하는 내담자는 본 적이 없다. 첫 세션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 저녁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나 상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어느덧 2달이 지났다.
처음에 그녀가 꺼낸 고민거리는 딸에 관한 것이다. 착실하고 예의 바르던 딸이 3월부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속을 썩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뒤늦은 사춘기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분의 삶을 보다 큰 그림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이민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힘든 상황들을 혼자 감내해왔고, 그 과정에서 근접한 관계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거의 모두 훼손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담을 진행하는 나도 혼란스러웠고, 상담의 무게랄까, 그 압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분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글쎄 아마도 전쟁터의 한가운데 부상을 입고 서서 고군분투하는 중대장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많은 시련과 억울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혼자 서서 끝까지 자신의 도리와 소임을 다해보려고 버티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관계적 어려움은 대부분 이 분이 지나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그들과의 경계를 허물면서까지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경제적 능력이 없는 동생의 아이들마저 자신의 조카라는 이유로 이 분은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그런데 그들은 성인이 된 지금 그런 고모의 헌신과 노고를 제대로 기억하고 고마워하지 않아서 내담자는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오랫동안 살아왔다. 한 가지 의외스러운 모습은, 보통 상처와 상실감을 받게 되면 사람은 움츠려 들기도 하고 방어적이 되어서 타인에게 베푸는 데 있어서 다소 제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타인을 경계하기도 하는데 이 분에게는 아직 그런 가시 돋친 듯한 경계의 모습이나 타인을 향한 깊은 증오의 감정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소 바운더리 (경계)를 설정하고 한 발치 떨어져서 관계를 맺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대해서 그녀는
"그런 점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바운더리가 뭐죠?"
라고 반문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겪게 될 수도 있는 상실감과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묵묵히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셀프 가드를 치지 않은 채 스테이지에 외롭게 서 있는 듯한 복싱선수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바운더리를 두껍게 설정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분의 경우는 바운더리가 거의 없다시피 한 느낌이라서 염려가 된다. 그 대신 이 분은 타인에게 상처도 받고 상실감도 느껴왔지만, 그만큼 경계 없이 살다 보니 추진력과 능률이 생겨서 그런지 커리어 부분에서는 꽤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마치 커피 필터로 비유하면, 필터가 너무 촘촘하면 많은 것을 걸러내는 대신 커피가 나오는 속도가 늦고, 나오는 커피 양도 다소 적은 반면에, 필터가 느슨하면 많은 것을 걸러내지는 못해서 불순물이 섞일 수는 있겠으나 커피가 수월하게 내려가는 차이라고 해야 할까?
상처와 상실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음에도 사람을 여전히 크게 신뢰하고 사랑하는 내담자의 뒷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마음의 필터를 조금씩 촘촘하게 해온 것은 아닐까? 그걸 원하지는 않으면서도 괜히 필터를 덜 촘촘하게 했다가 겪게 될 불필요한 상처와 상실감에 미리 겁을 먹어서?
내담자는 세션 중에 표정이 풍부하다. 밝게 웃기도 하고, 어느새 슬퍼하기도 하다가, 가끔 눈이 빨개져서 울기도 한다. 지금은 거미줄의 웹 한가운데 서있는 존재처럼 사람들과의 악화된 관계 속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노모를 모시고 계시며, 딸은 늦게 사춘기에 접어든 것인지 매일 새벽마다 늦게 귀가하고 있다. 남편은 자기의 요구를 들어줄 것만 외치고 있고, 친척들은 그동안 받은 도움에 적응한 것인지 이제 더 큰 도움을 베풀기를 바라고 있다. 이분에게는 지역에 거주하는 몇 안 되는 또래 여성 친구들이 유일하고 또 귀한 감정적 후원자들이다.
미국에 온 지 40년이 넘은 내담자가 자신이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20살 때 사진이라는데, 긴 생머리를 한 사진 속 소녀는 아메리칸드림에 한 껏 들뜬 듯한 밝고 순수한 표정을 짓고 웃고 있었다. 내담자가 상담이 끝난 뒤 사무실을 떠났다. 내담자와 마지막 순간에 바라보며 인사할 때 본 그 분의 주름진 얼굴과 사진 속 20살 때의 얼굴이 겹쳐서 내 앞에 떠올랐다. 그 오버랩된 두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예전의 어떤 드라마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딸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딸이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남편이 가정을 생각하고 자신을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는 것
친척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그들이 자신의 헌신과 노고를 알아주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늙은 노모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돌아가시기 전에 딸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천국에 편히 가는 것
그 내담자가 그동안 사무실에게 한 말들을 정리해 보면 이것인데, 이걸로 정말 충분하단 말인가? 평생을 성실하고 선하게 살아오신 분으로서 조금 더 욕심을 내도 되지 않을까? 한 여성으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것도 많을텐데 이젠 행복을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셔도 되지 않을까?
사무실 구석에 있는 커피포트를 보니 아직 두 컵 분량의 블랙커피가 따뜻하게 남아있었다. 지난 주에 상담소 창립 10주년 기념 선물로 받은 빨간 머그컵에 커피를 부었다. 커피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 처럼 보였지만, 왠지 커피에서는 아무 향도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무실 밖을 보니 검은 야자수 사이로 빨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는 서서히 자신의 특성과 심리적 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담을 하며 조금씩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삶의 목표와 사람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재고를 해서 그런지 상담실에 오면 기분이 조금은 편해진다고 한다. 내담자의 삶이 급진적으로 바뀌고 그녀가 전에 없던 삶의 큰 만족과 행복을 얻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은 현실적인 상담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내담자는 천천히 뭔가를 깨닫고 있고 기분이나 감정도 조금은 안정되어간다고 한다. 그 말이 상담사인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인지 예의상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아직 그녀와의 세션이 앞으로 몇 차례 남아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각종 상담 이론, 기술, 요법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다소 복잡해졌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결국은 60년이 넘게 살아오신 이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이야기가 핵심이다. 가급적 모든 경험과 시시콜콜하게 들릴만한 모든 이야기를 듣겠다. 그리고 마지막 세션에서 그 내담자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제게 귀한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내담자님의 그 경험과 이야기의 목격자 (Witness)가 되어 평생 그 이야기와 내담자님의 감정을 기억하겠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기억해 주는 것, 그리하여 그 분의 인생의 목격자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상담사인 내게 주어진 특권이자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하며,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커피 향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내담자님, 저의 내담자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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