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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Mar 25. 2020

2020년 3월 20일 - 유리 같은 내담자를 만나다

내담자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다

금요일 새벽 6시 50분,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시계에 눈을 뜨니 밖에는 아직 세차게 비가 오고 있다. 금요일은 일주일 중에 가장 신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일주일간의 모든 피로가 쌓인 날이기도 해서 눈을 떴지만 이불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지난 월요일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기저기 경계령이 내려지고 비상시국 같은 느낌이 되어버려서 상담도 많이 취소되고, 거리에도 차가 평소보다 절반도 안 되는 등, 뭔가 심란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이 되어버렸다. 현실감이 들지 않기도 한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상황이 펼쳐지다 보니,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굳이 구분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잠에서 아직 덜 깬 기분과 혼란스러운 현실 사이에 낀 이 순간에는 그래도 늘 그렇듯 내게 샤워 후 커피 한잔이 좋은 친구 역할을 한다. 얼마 전에 산 Lavazza커피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았다. 내가 알기로 Lavazza커피가 이탈리아산 종의 원두로 알고 있는데, 왠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병에 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필터에 커피분말을 붓고, 그 위로 끓는 물을 아주 천천히 원형을 그리면서 부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지금 마치 모든 것이 평소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비가 별로 안 오는 사막 같은 캘리포니아에 장마가 진행 중이다. 베이글에 간단히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었다. 전화기를 보니 오늘 일정이 잡힌 내담자들의 목록과 세션 시간이 미리 잡아놓은 스케쥴 알람에 맞춰서 떠올랐다. 오전에는 2건이 있고, 오후 3시에 얼마 전에 새로 만난 내담자를 만나면 된다.



비 오는 아침, 상담소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어두웠고 추웠다. 을씨년스럽게 비가 왔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길가의 큰 야자수들과 매우 안 어울리는 날씨가 연출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상점들 중 태반이 문을 닫고 있었고, 길거리 차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무실에서 오전에 내담자들을 연이어 만나고, 피자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점심을 먹는 동안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친 오후 공기는 주변의 나무와 풀과 어울려져서 그런지 맑은 민트향이 나는 듯이 느껴졌다.


이제 약 20분 뒤에는 내담자가 찾아온다. 이 내담자는 오늘 보면 세 번째인데, 오늘 어떤 식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접근해야 할지 큰 틀로 밑 그림을 그려봤다. 물론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이대로 하는 것은 아니고, 거의 늘 상황에 따라 아주 많이 다른 식으로 세션이 진행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미리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하는 것이 준비하는 내게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하기도 하고, 내 할 도리를 했다는 느낌도 주기에 거의 매번 이런 식으로 내담자를 기다리며 세션을 예상하며 밑그림을 그린다. 이 내담자는 40대 중반 한국계 여성인데,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전문직에 종사 중인 여성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 내담자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고, 평균적인 연령은 50대 중반이다. 그리고, 일반화하고 싶지 않지만, 내담자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눈다면 한 그룹은 크게 위축된 마음/감정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고, 다른 그룹은 반대로 마음의 에너지가 지나치게 팽창되고 자신감이 지나치게 넘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이다. 아직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후의 내담자는 후자 그룹에 속한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와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여성이다.


그녀의 정서나 마음 상태는 매우 당차고 자신감 있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격의 그런 자신감은 아니다. 그리고 조금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도 들기도 한다. 그녀가 상담을 받게 된 목적은 자신이 외롭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바꾸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녀는 12년 전에 결혼해서 현재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 2명이 있다. 그리고 교회에도 출석 중이고, 2주에 한 번 정도 남편과 지인들과 골프모임에도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것만 들으면 "그런데 뭐가 외로운 거예요?"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지난 2주간 그녀와 대화하면서 무엇이 그녀를 외롭게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가 되자, 정장 차림으로 그녀가 나타났다.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커피나 주스를 마시겠냐고 권했는데 방금 마시고 왔다면서 사양했다. 보통 세션은 50분을 하는데 그녀는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모자란 것 같다고 90분으로 연장했다. 그녀를 위해서 나는 오늘 철저히 듣기만 하는 "리스너 (Listener)"가 되기로 했기에, 그녀도 자신이 이해받고, 자신의 생각을 깊이 배려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의 밑그림에 있던 계획은 아니었는데 나는 오늘 철저히 Carl Rogers의 PCT (Person-Centered Therapy)의 방식을 따랐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중요한 말이나 내용을 되풀이하고, 가끔 내가 이해한 것을 확인하면서 반응하고, 그녀의 이야기와 상황을 편견 없이 이해하려고 했다.


그녀는 지금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자신보다 낮아서 그녀는 그런 남편을 은근히 낮게 보고 있고, 남편도 자신을 그렇게 보는 아내에게 오랫동안 불만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빠하고 친한 반면에 늘 일로 바쁜 자신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올수"에 "올백"을 받으며 명문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와서 다부지게 공부해서 6년 만에 박사학위를 딴 그녀는 "경쟁력"과 "분투적 노력"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가치를 그녀의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엄마를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골프모임과 교회에서의 생활에서도 그녀가 사람들을 사회적 위치와 이룬 것,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가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그녀는 자존심 때문인지 누군가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지 않는다. 늘 남이 먼저 연락해오는게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 세션의 90% 이상을 Rogers의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도중에 필요한 부분에서는 도전적인 질문도 했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대화는 다음과 같다.


나: 남편을 아직은 많이 사랑하고 존중하고 계시다는 말씀이시죠?

내담자: 그러려고 노력하죠.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요. 내 사전에 부부 불화나 이혼은 없거든요. 노력을 해야 뭔가 변화도 있고 그러잖아요. 아직 그이가 돈은 잘 벌고 나름의 능력은 보여주고 있으니까

나: 만약에 남편분이 능력을 못 보여주고, 직장생활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는 거죠?

내담자: 어휴, 상상할 수도 없어요. 그런 사위를 보는 우리 부모님이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보기에도 불안정하고 그러잖아요. 이민사회에서 보는 눈도 있는데

나: 부모님과, 아이들, 그리고 이민사회의 보는 눈을 의식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내담자: 당연하죠. 그렇게 되면 조금 이상해 보이잖아요. 가장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야죠. 나는 만약에 사람들이 내 남편과 우리 가족을 무시하거나 이상하게 보면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녀는 경쟁사회 속에서 늘 승리를 해온 사람이다. 그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은 아마도 그런 경쟁의 전쟁터에서 늘 힘겹게 승리해온 사람이 갖는 보상과 안도, 그리고 긴장과 경계가 만든 인상일지도 모른다. 상담사는 내담자에게 개인적인 가치관을 제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내담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도 마음속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내 입을 통해 나오려고 했고,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마음 속에는 능력, 성공, 남의 눈 등의 관념이 다른 가치를 몰아내고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담자다. 이렇게 성공의 가도만을 달려왔기에 단 한 번의 실패가 그녀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갈 수 있고, 그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혹시 모를 실패를 몸서리치며 두려워하고 거부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금방 깨져 벼릴 것 같은 유리병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두려움과 성공이 주는 짜릿한 쾌감 사이에서 그녀는 천천히 성공이 주는 타이틀을 마치 아이템 수집하듯 하나씩 모아가고 있는 듯했다.



어찌 보면 그녀의 모습은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부분들을 예전보다는 많이 내려놓았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목표를 향해 가자고 외친 지 오래되었으나, 그녀는 예전의 나와 공명하는 부분이 꽤 많았다.


"무시하거나 이상하게 보면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녀가 세션 마지막 무렵에 한 말이 떠올랐다. 사실 저 말은 그녀의 말만은 아니고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외침이자 자기 방패 앞에 써있는 표어같은 말일 것이다. 능력 없고, 성공 못하면, 그게 그렇게 문제일까? 그래도 여전히 좋을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성공이란 꼭 그렇게 성취에 성취를 거듭하며 정상으로 올라가야만 인간으로서의 성공한 삶일까? 그 성공은 누가 정의하는가?


나도 어찌 보면 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의식을 관통해간 이념과 담론들을 학습해온 사회적 담론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해야 좋은 것이었고, 20대에는 좋은 학점, 좋은 회사 취업, 그리고 좋은 이성을 만나 결혼하는 것, 30대에는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아이들을 낳고, 돈을 많이 버는 것, 40대에는 사회적 입지를 더욱 단단히 해서 정상에 오를 준비를 하는 것과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것, 좋은 차를 타고, 골프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앞으로 50대에는.... 60대에는... 무엇이 모범답안일까? 그런 좁은 담론의 교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또 다른 타인들을 얼마나 옥죄고 힘들게 할까?

창밖을 보니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일을 정리하고, 프로그레스 노트를 입력한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비가 오고, 전염병은 확산되고, 일은 제대로 못하고, 일상이 혼란스럽다. 나로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 할 일을 하루하루 하며 살아갈 뿐. 내담자도 오늘 나와의 세션을 통해 자신에 대해 뭔가 새로 느끼고 깨달은 것이 한 가지만이라도 있었기를 바란다. 나도 오늘 내게 학습된 틀에 너무 얽매여서 현실을 해석하지 말자는 한 가지를 다시 한번 느꼈으니까.


"모든 것이 괜찮지 않다. 그러나 그런대로 괜찮고, 앞으로 더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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