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시장에서 구직과 구인의 비대칭의 이유
6월 10일에 방송된 SBS 스페셜은 취직에 대한 재미있는 기획을 다룬다. 구인자인 회사 임원과 구직자인 대졸생 및 중고 신입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 역지사지 면접을 진행하는 내용이다. 역지사지 면접을 통해 방송은 넌지시 취업의 조건과 취준생들의 비애를 들여다본다.
방송의 문제의식은 "구인자인 기업과 구직자인 대졸 신입 사이에서 왜 비대칭이 생기는지"이다. 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취준생은 일자리가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며, 신입 사원은 조직에 만족을 못하고 조기 퇴사를 하는 이상한 현실에 대한 것이다.
방송에서 기업 임원과 취준생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기업과 취준생의 우선순위가 극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나는 취업 시장의 비대칭의 원인이 짐작이 되었다.
취업 준비생들은 연봉, 워라밸, 복지 등을 종합해서 보상이 가장 좋은 회사를 들어가고 싶어 한다. 자기 스펙이 허락하는 한에서. 여기서 보상은 자신의 스펙으로 보장받는 권리가 된다. 스펙이 좋은 사람이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응당히 누려야 할 권리가 바로 보상(연봉+워라밸+복지...)인 것이다.
사업 내용이나 경영진 만족도, 기업 문화 등도 기업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겠지만 대부분의 취준생의 우선순위는 보상으로 보인다. 상당수의 취준생에게 취업이란 자신의 스펙을 제약 조건으로 한 보상 최대화 게임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방송에 보인 상당수의 취준생들이 회사가 직원에게 지급하는 보상이 내 스펙으로 보장받는 권리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일정 조건의 스펙을 갖춘 사람을 채용해서 일을 시키려면 응당히 줘야 하는 것이 수준급의 월급이라고 인식한다. 월급이라는 보상이 내가 회사에서 달성해야 하는 책임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야근, 휴가 등의 워라밸이나 복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야근을 하냐 안 하냐의 문제에서도 직원인 내가 달성해야 하는 성과에 대한 논의는 없다. 오직 수동적으로 야근이라는 근무 환경이 주어지냐 아니면 그렇지 않냐를 선택할 뿐이다. 일을 마치기 위해 휴가를 자발적으로 반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현재 한국 문화에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연차를 소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권위적인 문화 때문이다. 그러나 취준생들은 성과 달성이 휴가 소진보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프로는 내가 받은 돈에 대한 값어치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더 큰 보상을 쟁취한다. 가장 상상하기 쉬운 프로의 모습은 바로 스포츠 선수들이다. 고연봉의 프로야구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 선수가 부진하면 먹튀라고 욕을 먹는다. 연봉만큼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프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로에게 보상은 변동될 수 있는 변수이며,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다.
월급 루팡은 회사가 주는 보상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져가려는 직장인을 비꼬는 말이다. 월급 루팡에게 보상은 이미 계약이 완료된 상수이다. 그에게 연봉과 복지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나 스스로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고, 조직에게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보상을 얼마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취준생의 모습에서 월급 루팡의 모습을 봤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성과를 내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 신입에게 월급 루팡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보상을 권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월급 루팡의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업은 프로를 뽑고 싶지 월급 루팡을 뽑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냉정하게 구인 시장에서 뽑을 사람이 없다. 프로의 마인드로 일에 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프로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모두 프로로 조직을 운영할 수 없게 되고, 대기업에서는 반드시 프로만으로 구성되어야 회사가 돌아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좋은 조건의 인재(적당한 성과를 낼 사람)를 좋은 조건으로 모셔오는데 집중한다. 그게 여러 회사들이 자랑스럽게 추진하는 복지 제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관점에서 취준생의 스펙 경쟁도, 회사의 복지 경쟁도 무의미하다. 각자가 달성해야 하는 재무적인 성과,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핵심인 것인데 취준생도 회사도 엉뚱한 지점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냉정하게 사업이 검증되지 않고, 기업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는 적당히 좋은 인재가 성과를 내기가 더 어렵다. 성과를 내기 훨씬 용이한 환경은 검증된 사업을 검증된 방식으로 하는 대기업이지 스타트업이 아니다. 인재의 능력과 조건에 상관없이 창출하는 수익의 관점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연봉이 책정되는 것인데, 취준생에게 스타트업은 낭만만 가지고 열정을 착취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스타트업이 훨씬 어려운 경영 환경에 놓여있고 직원 개인에게도 훨씬 힘들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프로의 관점에서 연봉 등의 보상은 변수이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해서 내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는 스타트업도 기꺼이 일할 수 있는 옵션이 된다. 그러나 월급 루팡에게 스타트업은 결코 선택하고 싶지 않은 옵션이다.
이러한 과거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기업과 젊은 세대로 대표되는 취준생 사이의 인식의 갭이 생긴 것은 사회적인 원인 탓이 크다. 우선 청년이 사회적으로 적당히 만족할만한 생활을 하기 위한 지위를 차지하기 어렵다. 학자금 대출 빚이 있고, 결혼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이 중소기업의 2천만원 대 연봉을 받는 선택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스펙과 전문 대학원 졸업장 같이 좋은 연봉을 보장해주는 조건을 갖추기 위한 경쟁에만 몰두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가 투입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길 바란다. 내가 서울대 나왔는데, 내가 로스쿨 나왔는데 자연히 이 정도는 벌어야지... 이런 인식이 안 생길 수 없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세대의 자조도 있을 것이다. 이미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 하에서 개인이 거둘 수 있는 성취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우리 세대는 월급 루팡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일에서 프로가 되고, 일에서 소명 의식을 느끼고, 일을 통해 공동체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기 어려운 현실인지 모른다. 사회가 안전망을 더 공고히 하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누릴 수 있게 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교육해야 조금 바뀔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개인은 개인의 차원에서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급 루팡의 시선으로는 당장의 취업의 문제도 돌파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스펙 경쟁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점점 조건과 자격은 상향 평준화된다. 일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스펙 경쟁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취업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의 마음으로 일한다면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만족감과 일에서 거두는 성취도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절대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 없다는 '임금 격차론'에 공감한다. 그러나 임금 격차론 논리의 전제는 한 개인이 평생 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야구 선수가 팀을 옮기 듯 어느 조직에든 가서 일할 수 있다. 능력을 키우면, 능력을 인정해주는 조직에서 더 큰 보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문제는 해소되어야 한다. 다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자조하기보다는 빠르게 성장해서 나의 보상을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직업인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기업도 밀레니얼 세대에 맞는 기업 문화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자율과 책임, 수평적인 소통은 반드시 기업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세대도 기업과 기성세대에 대한 혐오와 부정에서 끝나면 안 된다.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하고, 일에서의 성과나 보람은 관심 없다는 자조적인 태도 대신 프로의 마인드로 일에 임하는 게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