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포지셔닝
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통신사 IT 솔루션 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스타트업을 거치면서 IT 업계에서 PM, 사업 개발, 세일즈 업무를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문과생이 IT 업계에서 느끼는 자격지심과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IT 업계뿐 아니라 전 업계에서 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문과생 파이팅!)
IT 업계에서 컴퓨터 공학 백그라운드가 없게 되면 아무래도 제너럴리스트의 일 (a.k.a 잡일)을 주로 맡게 됩니다. 첫 직장인 통신사 IT 솔루션 부문에서도 제가 지망했던 제품 기획팀이 아니라 세일즈 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또 스타트업에서도 책임이 모호한 역할은 제가 떠맡게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개발자가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요. 그렇지만 연봉은 동일 연차의 개발자보다 낮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연봉의 격차는 여전히 있습니다.)
PM으로서 제품 관련된 일을 할 때도 IT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만 하고 있는 제가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PM 커리어 대한 고민으로 Sendbird에 재직하시던 시니어 PM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개발 백그라운드의 PM님과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 보니 오히려 그분의 깊이와 전문성 때문에 좁히기 어려운 간극을 느꼈고, 용기보다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IT 업계가 재미있고, 이 업계 안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 개발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나, 컴퓨터 공학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때 가진 적은 있었으나) 지금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이 업계 (IT), 이 직무 (사업 개발)에서 "나만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포지셔닝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비즈니스 원칙인데요. 우리는 내 제품과 서비스의 포지셔닝에는 엄청난 고민을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의 포지셔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전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채용 관련된 사업을 하면서 많은 문과 출신 업계 분들의 이력서를 읽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어떤 경쟁력, 어떤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포지셔닝 전략이 없거나 인상적이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나를 포지셔닝하는 것은 나를 특정 영역 안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대체 불가능성이 내 가치와 실질적인 연봉을 높여주는 핵심 지렛대이기 때문에, 포지셔닝은 내 가치를 높이면서 오래 생존하게 하는 효과적인 커리어 전략일 것입니다.
나 자신의 포지셔닝은 제품 출시하듯이 뿅 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 역시도 업계 내에서의 저만의 포지셔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포지셔닝 전략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초기 스타트업의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일에 전문성과 스킬을 가진 슈퍼 제너럴리스트라고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적은 자원으로 빠르게 사업성을 검증해 본 경험을 쌓고 있고, 이를 잘할 수 있는 노코드 프로토타이핑, 유저 인터뷰, 디지털 마케팅 등의 스킬을 숙련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쓸 때도 이런 저의 전문성과 스토리를 최대한 부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위와 같은 포지셔닝 전략을 세우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방법 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이 취업을 희망하시는 분들이나, 커리어 초반의 주니어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일을 하면서 축적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나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틈새 (Niche)를 찾아보려고 노력해봐야 합니다. 매우 협소한 영역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러한 틈새 (Niche)의 존재가 나만의 스토리가 되고, 나만의 유니크한 차별점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나만의 틈새는 일을 하면서 즐거웠던 프로젝트 경험, 힘들었던 프로젝트 경험을 회고해 보면서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내가 현재 또는 과거에 수행했던 일을 (1) 산업 도메인이나 (2) 직무 관점에서 회고해보면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왜 성공 (실패) 하였나요?
고객 및 이해관계자와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게 왜 즐거웠나요 (싫었나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요?
저의 경우에는 오히려 실패 경험을 통해서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성공 경험과 실패 경험을 회고해보면서 내가 잘하고, 내가 기꺼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 프로젝트나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때 내 틈새와 가까운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물론 내가 타깃 하고자 하는 틈새는 일하는 과정에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더 새로운 틈새에서의 나의 차별성을 선명하게 할 것입니다. 이직을 하거나 회사 내에서 새로운 기회를 노릴 때도 틈새 안에서의 차별성과 축적해온 스토리가 나를 분명히 더욱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요즘은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고, 컨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취향과 목표가 다양해져서 아주 다양한 틈새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창조적인 활동을 정말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회사 밖에서의 나만의 활동을 시작하라고 저는 많이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하고,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 구독자는 비록 100명 수준의 매우 작은 매체였지만, 제가 올린 컨텐츠를 보고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거나, 새로운 기회를 제안해주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굉장히 쉽게 나를 포지셔닝할 수 있고, 나만의 틈새를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쉬운 전략이라 저는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시작을 하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틈새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없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실행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팁이라고 하면 목표를 높게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되고, 아주 특별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 시작해보시길 바랍니다. 하다 보면 내 틈새와 차별화 포인트가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삶에 바빠서 시작하기 어려운 것은 저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요?)
저뿐만 아니라 커리어 전문가들이 회사 밖에서의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일해야 할 기간은 길어지지만 산업은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나만의 브랜드/스토리를 만들어서 회사 밖에서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것은 당장의 과제가 아닐 수 있어도 언제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일 것입니다. 이러한 업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회사 외부에서 작게 시작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무엇부터 시작할지 막막한 분들께 더 쉬운 방법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취준생이나 커리어 극초반의 주니어라서 나만의 컨텐츠가 없는 경우에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바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커뮤니티 활동입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내가 지향하는 삶을 앞서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를 찾아서 가보고, 교류해보는 것에서 시작해보세요.
커뮤니티도 정말 다양해지고 많아지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직무나 분야로 검색해서 나오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법도 있고요. 트레바리/크리에이터클럽과 같은 오프라인 학습/커리어 모임도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마땅하지 않다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진솔한 글, 내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 있는 글을 쓰고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는 링크를 넣어두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 천천히 모이기 시작할 겁니다.
(+ 노코드에 관심있는 실무자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문과 출신 기획자로서의 직무 전문성을 키우는데 고민이 있으시면 커뮤니티에 들어와주세요.) ← 이런 식으로 모객해보세요:)
약 10년 간 직장 생활을 하고, 창업도 해보고, 크리에이터로서도 살아보면서 커리어라는게 참 어려운 것이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저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제 커리어가 변변치 못하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조금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분명히 느낀 것은 삶이라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더라고요. 커리어도 역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고, 무슨 일을 잘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끝없는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를 더 이해하게 되고, 내가 나일수 있는 곳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나 다운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제가 조언해드렸던 방식으로 커리어 영역에서 나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시길 바랍니다.
한가지 유념하셨으면 하는 것은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더 우월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IT보다는 석유화학 업계가 훨씬 인기 있는 분야였습니다. 불안한 문과 출신들이 전문직이 되기 위한 시험에 골몰하거나 개발자 전직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게 트렌드를 쫓는 것인지 진정으로 나 다운 것인지는 회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남들이 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그게 오히려 위험 신호는 아닐까 생각하는 편입니다.
나만의 틈새를 찾아가세요!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시행착오가 나를 더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과 많이 교류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댓글이나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
+ 제가 용기를 얻었던 시 하나를 공유합니다. 우리 존재 화이팅!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 태양보다 냉철한 뭇 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