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코드가 확산되면 무엇이 바뀌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게 뭘까요? 80년대 영상 편집을 위한 비디오 믹서입니다. 다양한 비디오 소스를 가지고 하나의 비디오 출력물을 만드는 기계입니다. 복잡해 보이죠? 이처럼 과거의 영상 편집은 전문 제작사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누구나 영상을 촬영하고, 모바일로도 쉽게 편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술은 발전함에 따라 점차 대중화되고, 진입장벽이 낮아집니다.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전문가들은 훨씬 더 전문화됩니다. 데이터 분석은 Excel을 통해 전 세계 사무직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기초 역량이 되었습니다. 웹디자인 분야에서도 Figma나 Canva 등이 등장하면서 일정 수준의 디자인은 비 디자이너가 직접 수행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전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개발' 분야 어떨까요? 소프트웨어 개발도 기술의 민주화가 될까요? 이러한 트렌드에서 태동한 것이 노코드 (No-code)입니다. 노코드는 코딩 없이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거나, IT 기반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툴입니다. 이러한 노코드 툴이 생태계를 이루기 시작하고, 주목받기 시작하는 지금이 소프트웨어 개발이 민주화되는 초입일 것입니다.
사실 IT 기술은 이미 점진적으로 민주화되고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이해하는 이진법 코드(Binary)에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개발 언어 (Programming Language)가 나왔고, 이 개발 언어 중에서도 인간이 이해하기 더 쉬운 언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코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넘어갑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비주얼(Visual) 기반의 프로그래밍입니다. 블록을 드래그 앤 드롭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조금 제가 과장을 보태면 도스에서 윈도우로 넘어가는 수준의 변화입니다.
개발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사실 노코드라는 표현을 들으셨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시거나, 마케팅 용어로 치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Visual Programming이라는 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업계에서는 존재하던 것이었습니다. (A.K.A 나모웹에디터)
하지만 저는 지금의 노코드가 과거 나모웹에디터 등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노코드라는 트렌드는 티핑 포인트를 넘었으며, IT 시장을 바꿀 수 있는 파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지금 노코드가 주목받기 시작했는지 배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IT 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미국 나스닥 최상위 기업의 대부분이 IT 기업이며, 타 산업에도 IT 기술은 유통하는 방식, 마케팅하는 방식, 심지어는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IT 관련 기술 수요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커졌다는 것이죠.
반면에 개발자의 공급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들의 인건비는 하늘 높게 치솟고 있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코딩 부트 캠프 등을 통해서 개발자로 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발자 신입 초봉이 5천~6천을 호가한다고 하니 개발자를 찾는 기업은 (대기업, 스타트업 가리지 않고) 다른 대안이 필요해졌습니다.
더해서, 업무 환경이나 소프트웨어 유통/사용은 이제 클라우드화 되었습니다. 많은 기업은 이제 일을 할 때 웹브라우저 위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워드 대신 구글 닥스를 쓰고, 사내 메신저 대신 슬랙을 쓰는 식입니다. SAP, MS, Oracle 같은 대형 B2B 솔루션들이 언번들링(Unbundling)되어 수많은 SaaS들이 등장했습니다.
노코드는 이러한 SaaS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이루었습니다. 개별 툴을 배우고 익히던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이 생태계입니다. 노코드는 하나의 툴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노코드는 생태계입니다. 여러 인터넷 기반 소프트웨어를 연결해서 개발에 준하는 생산성을 "저렴하게", "빠르게" 낼 수 있는 생태계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노코드는 주목할만한 빅 웨이브가 된 것입니다.
미래 예측은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체감한 것이나 미국 노코드 커뮤니티에서 목격한 것과 제 희망적인 기대를 섞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IT 개발자는 이제 더욱 전문화될 것입니다. 기존 모듈을 조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성 툴이나 인터넷 서비스는 상당 부분 노코드를 활용하는 비개발자들에 의해서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메이커의 수가 훨씬 많고, 노코드라는 방법론이 훨씬 더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개발자는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특화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차별화되고 역량 있는 개발자는 지금보다 더 큰 소득을 낼 것이고, 애매한 역량의 개발자는 노코드와 차별화가 어려워져 소득이 줄 수도 있습니다. 즉, 개발자의 양극화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양극화 경향성은 기술 보급에 따라 영상 편집자, 디자이너, 총무 등의 직무에서도 이미 발생했던 일입니다.
크리에이터와 인디 메이커들의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고, 그들이 수익을 더 쉽게 낼 것입니다.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컨텐츠를 유료로 판매하거나, 자신의 브랜드를 기반으로 하는 커머스를 만드는 데, 노코드가 핵심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커머스 사이트, 강의 사이트, 뉴스레터 등을 만들면서 자신의 컨텐츠와 브랜드를 수익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익화를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클래스101 등의 플랫폼 위에서도 할 수 있지만 노코드를 통해서는 개인이 직접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컨텐츠와 오디언스가 있는 미국의 크리에이터들은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노코드를 통해서 수익화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이드 프로젝트나 인디 메이커의 프로젝트를 거래하는 플랫폼이 이미 성행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퍼슬랏, 인디메이커, 마이크로어콰이어 같은 사이트에서 아이디어만 검증한 IT 서비스들이 $15,000 정도로 매각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라고 하기 어려운 작은 프로젝트들의 인수합병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수합병은 아니더라도 사이드 프로젝트나 인디 메이커의 부상은 글로벌에서는 프로덕트헌트, 한국에서는 디스콰이엇과 같은 프로젝트 공유 사이트(+커뮤니티)만 보더라도 체감이 되실 겁니다.
(한국의 메이커들의 열정과 결과물을 보시고 싶으시다면 디스콰이엇에 방문해보세요!)
노코드로 인해 스타트업 창업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지금도 초기 스타트업의 성공의 핵심은 아이디어의 사업성 검증이지 기술력이 아닙니다. 신사업의 검증을 노코드를 통해서는 더욱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의 매뉴얼한 운영도 노코드를 활용하면 쉽게 자동화되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Unicorn Facory라는 뉴질랜드의 스타트업은 노코드로 이 서비스를 개발하여, 지금도 노코드로 운영하고 있는 프리랜서 매칭 사이트입니다. 크몽과 유사한 프리랜서 매칭 사이트입니다. 노코드로 수익을 낼 수 있고, 소수의 인원으로 서비스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Unicorn Factory는 1인에 의해서 개발되었고 지금도 1인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합니다.
딴 세상 이야기 같으신가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에게도 노코드를 배우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회 요인이 있을지 말씀드려볼게요.
기술이 태동하는 티핑 포인트는 개인에게는 커리어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Excel이 처음 등장했을 때, Final Cut Pro 등의 동영상 편집 툴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이 툴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수요가 있었습니다. 신기술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나의 커리어 전문성을 찾는 좋은 전략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노코드를 배운다는 것은 IT 업계에서 비개발자로서 차별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래서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제2의 수익, 부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저는 스마트 스토어, 해외 직구와 같은 아예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내 경험과 취향을 중심으로 컨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부캐를 만드는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터로서 노코드는 내 컨텐츠를 수익화하는데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게임/먹방 같은 대중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니치한 내 전문 영역을 다루는 크리에이터라면 내 적은 구독자에게 노코드 툴을 활용해 수익화 시도를 하는 방식이 맞는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을 창업하고자 하는 예비창업가시거나, 아니면 나중을 대비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시는 직장인에게도 노코드는 실용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개발을 할 줄 모르시는데 내 아이디어를 저렴하고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서비스를 적은 리소스로 운영하시려면 노코드가 유일한 대안입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외주 개발을 하거나 같이 프로젝트를 할 개발자를 찾는 방법...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는 거 경험해보셨으면 잘 아실 겁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식노동자라면 누구나 크리에이터/메이커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전제에 동의하신다면 노코드는 꼭 배워야 하는 기술일 것입니다.
저도 노코드 생태계의 일부만 경험해보았습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공유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쓰고 컨텐츠를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배웠던 방법 위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야 합니다. 만들고 싶은 게 없는 상황에서 노코드를 배우는 것은 지속하기도 어렵고,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노코드도 결국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므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나만의 아이디어를 먼저 찾으셔야 합니다. 이런 아이디어나 목표가 없는 분들은 노코드를 배우려고 하시다가도 금세 포기하게 됩니다.
스타트업 신사업을 하면서 노코드로 제품을 만든 경험을 블로그로 썼습니다. 저도 개발자 없이 신규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노코드라는 도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저 일을 하기 전에는 저도 노코드를 전혀 몰랐습니다.
아이디어가 생겼다면 하나의 툴을 정해서 일단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노코드 입문자들이 방대한 툴에서 무엇을 써야 하는지 몰라하시고 이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요. (어떤 툴을 써야 할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클릭!) 저는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툴을 정해서 일단 무료 플랜으로 써보기 시작하세요. 그러면 아쉬운 부분이 생기고, 이를 수정해나가면서 더 깊은 이해가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맞는 기술 스택도 자연스럽게 찾게 되실 거예요.
위 두 가지가 조금 막연했다면 이건 실용적인 방법입니다. 노코드 커뮤니티에서 활동해보는 것입니다. 커뮤니티는 비슷한 관심사와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조금 먼저 경험해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만큼 큰 투입 없이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시도해보면서 막히는 문제를 커뮤니티 멤버들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아래 노코드 단톡방이 꽤 활성화된 노코드 관련 커뮤니티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많이 가입해주세요 :)
더해서 글로벌 툴들은 각 툴 별로 커뮤니티/포럼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용하는 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각 툴 커뮤니티에 방문해서 검색하고 질문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구글링 하면서 노코드도 배우시고, 영어 실력도 늘려가세요.
여러분들도 가치를 만드는 메이커가 될 수 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일잘러가 될 수 있고요. 노코드는 이러한 목표가 있는 분들께 좋은 도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함께 배워요!
+ 제가 노코드 관련한 튜토리얼들도 유튜브 영상으로 촬영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내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궁금하시다면 제 영상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