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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잘러 장피엠 Apr 25. 2018

내가 스타트업에서 배운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

나의 스타트업 이야기


  나는 스타트업에서 3년을 일했다. 우리 팀은 다양한 사람들이 입사하고 퇴사하며 팀 스피릿을 맞춰간 결과 열정 있고 끈기 있는 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우리는 치열하게 작은 성공과 실패들을 경험했다. 그 과정이 절대 편하지 않았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경험들이 현재의 나의 생각을 만들어주었다.


  스타트업이 다른 기업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스타트업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제품, 검증되지 않은 사업 모델을 검증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검증한다는 것은 가치를 만드는 제품, 즉 팔리는 제품 아이디어를 찾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스타트업은 다른 기업과 달리 검증된(=확고한) 돈 줄이 없는 기업이지만, 동시에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돈 맥을 찾고 있는 기업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타트업은 고객, 문제, 솔루션, 팀을 바꿔가며 팔리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 과정에 있는 기업이다. 돈으로 평가받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고객, 문제, 솔루션, 팀이라는 다변수 방정식의 해를 찾는 지난한 과정에 놓인 것이 스타트업의 운명인 것이다. 이러한 스타트업의 과정 속에서 배운 점을 회고해보았다.



배운 점 1. 기업의 본질은 문제 해결


  스타트업에서 배운 점 중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기업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은 특정한(specific) 고객의 특정한(specific)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하고, 고객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한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성장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스타트업이란 고객, 문제, 솔루션, 팀이라는 4개의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푸는 것이다. 모두 중요하지만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문제가 아니거나, 문제이더라도 너무 작은 문제를 풀다가 망한다. 아무리 솔루션이 우수해도 문제가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 솔루션은 종국에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권도균 대표님 칼럼) 권도균 대표님은 스타트업을 흐르는 물에 배를 띄우는 것으로 비유해주셨다. 급류에 물에 배를 띄우기만 한다면, 노를 젓지 않아도 심지어 노를 잃어버리고 배에 구멍이 나도 배는 빠르게 내려간다. 급류란 결국 고객의 해결되지 않은, 고객조차도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이다. 반면에 문제가 분명하지 않으면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고통스럽지만 속도는 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스타트업의 핵심이 배를 만드는 것(=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소리를 찾는 것(=문제를 탐색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우리도 배를 먼저 만들고, 배를 띄울 수 있는 물을 그다음에 찾는 방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몸소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문제를 탐색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사람이라면 그 회사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크고 심각한지 고민해보는 걸 꼭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공감할 수 있고, 특정 고객이 강렬히 원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푸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투자/팀 구성/기술 등은 절대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배운 점 2. 불확실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가설 검증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검증되지 않은 초기 기업이다.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일하기 방식은 대기업과는 달랐다. 스타트업은 가설 검증을 중심으로 일을 했다.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몇 가지 가설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설을 구체화하고 하나하나 맞는지 따져봐서 이 사업이 정말 사업성이 있는지 판단하게는 게 회사 차원의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었고, 나의 대부분의 일이었다. 


  가설 검증 중심 일하기 방식은 대기업에서 리서치를 하고 사업 기획서를 쓰는 것과는 달랐다. 가설을 구체화하고 나면 가설을 최대한 빠르게 검증하는 게 중요했다. 기획을 하는데 오랜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몇 가지 문장으로 만들면 준비는 끝났다. 가설을 빠르게 검증하기 위해 사람을 소개받아 만나고, 길거리에서 잠재 고객을 인터뷰하고, 상황을 만들어 테스트를 했다. 광고 반응률을 예측하기 위해 지하철에 임시 스크린을 설치하고 사람들 반응을 관찰하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불법 스크린을 놓고 반응을 관찰하던 당시 테스트 사진. 역무원이 오면 스크린을 들고 튀어야 했다.


  가설 검증할 때는 우리 팀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이 실제 세상에서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 설정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제품을 만들고, 파트너들과 협력 관계를 만든다고 한 들 그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차라리 빠르게 실패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는 게 목적이다. 오히려 엉성한 프로토타입으로 고객의 반응을 살펴보는 게 공들여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결과적으로는 효율적이고 빠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하고, 시행착오를 겪어 섬세하게 방향을 조정해나가는 방식은 이제 누가 어떤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체득해서 계속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 아니 반드시 틀린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 겸손하게 일에 임하게 되었다. 현장에 과감히 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가설 검증 과정은 준비 안된 상태로 고객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에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절당하는 것은 익숙해졌지만 그 마음이 결코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고객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대기업에서 느꼈던 사업 놀이를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최소한 어제보다는 새로운 것을 오늘 알게 되는 과정이 기뻤다.



배운 점 3.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을 많이 받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더욱이 스타트업은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의 문제에 집요하게 집중하는 게 필수적이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가장 중요한 것 외에는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걸 스타트업을 하면서 배웠다. 뻔한 소리지만 정말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많은 그루들이 강조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처음 한 가지 가설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집중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스타트업의 현실은 쉽게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을 진행할수록 검증해야 할 추가 가설이 생기고, 기존에 검증했다고 생각했던 가설도 검증이 되었는지 애매해지는 상황이 생긴다. 이럴 때 비로소 집중은 어려운 목표가 된다. 또한 팀원 개개인의 일에 대한 선호가 생겨서 팀 전체의 집중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기존에 하던 일이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라 판단되어 하지 않으려 해도 레거시 때문에, 계약 때문에 또 애매하게 지속하는 일이 생긴다.


  스타트업은 아주 작지만 중요한 문제를 풀었을 때 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늘처럼 역량을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집중이라는 방향성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역설적으로, 집중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이 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팀이 우선순위에 맞춰서 역량을 응집시키기 위해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아가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리더가 과감히 일을 걷어내는 결단을 내려야 하고, 팀원들이 모두 동일한 우선순위를 숙지하고 있도록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배운 점 4.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 기대만큼 걱정도 많았다.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등의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막상 스타트업에서 일을 한 지난 시간을 회고해보니... 예상보다 더 힘들다! (비슷한 고백을 담은 영상이라 추천합니다.) 스타트업의 삶은 작은 실패의 연속인데 이 실패 충격이 생각보다 세더라.


  하지만 기대했던 외적 성취가 잘 안 풀릴 때, 오히려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첫 번째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배웠다. 오만하지만 과거에는 작은 부분은 잘 모를 수 있어도 대체적으로 내가 올바른 선택을 내릴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대부분은 틀리기 때문에, 빨리 틀리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는 내가 어느 분야의, 어느 종류의 일을 못한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넓은 주도권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에 대해서 피드백을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에게 받을 기회가 많았다. 그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잘하는 부분에 대한 피드백도 받지만,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 점이 내게는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업은 운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사업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말했던 것 중에 그렇게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3년 전에는 세상을 삼켜버릴 것 같았던 IoT라는 트렌드도 지금은 뜸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내 소명과, 내 현재 능력을 명확히 아는 것이 성공하는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행복한 직업인이 되는 필요조건일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


  내가 느낀 것처럼 이 또한 틀릴 수 있다. 3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수많은 실패를 견뎌내며 하나씩 몸으로 배워가는 것이 스타트업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한 게 값지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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