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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학자의 책장 Oct 02. 2019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인문학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 출신의 기호학자이자 작가, 언어학자, 철학자, 미학자이며 동시에 교수 건축학자, 편집자, 문학비평론가, 역사학자, 인류학자, 고서적 수입가입니다. 

토리노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약 40개의 명예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9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언어로 작품을 집필하고, 자신의 작품의 번역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움베르토 에코 학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20세기 최고의 인문학자들 중에 한 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소설가 혹은 에세이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본업은 기호학자이고, 기호의 해석에 관한 많은 권위 있는 저서를 집필하였습니다.

텍스트 역시 기호의 집합이라는 관점에서 그에게 소설 비평은 텍스트 해석의 일종이었고 소설은 독자에게 주어지는 순간 독자에게 해석 권한이 주어진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소설에 대한 언급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 움베르토 에코


다만 에코의 텍스트 이론은 자유방임적 텍스트 해석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고 텍스트의 구조와 맥락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이것을 '해석의 한계'라고 부릅니다.)


저 역시 에코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책을 소개할 때, 가능한 작가를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 안에서 이야기 해석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신랄하면서도 조금은 가벼운 에세이가 모여 있는 책입니다. 재미있게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인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마냥 가볍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재미있게 책을 읽다가 독자 스스로 자신이 세상의 바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건 에코의 비판의 대상이 워낙 광범위한 것도 있겠지만 세상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짧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남의 바보 같은 모습을 보며 재밌어하다가 어느 순간 보니 나도 그런 바보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 입장에서는 ‘서재에 장서가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의 첫 문단이 그랬는데요.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메아리’라는 뜻의 이름 때문에 이런 식의 농담을 들으며 자랐다. “넌 언제나 대답하는 사람이로구나.” “네 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 뻔한 농담만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멍청할까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런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든 예외 없이 적용되는 두 가지 법칙이 있으니, 첫째는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가장 뻔한 생각이라는 것이고, 둘째 우리는 뻔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보다 앞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는 아마도 이 글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바보들이 많아 보이지만 나도 그 바보들 중에 한 명일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좀 더 겸손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바보 같은 모습을 더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이 책에는 이 이외에도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짧게는 한 두 페이지, 길게는 스무 페이지 내외의 글로 길이가 짧아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읽기 좋습니다. 책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을 정하는데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 한 편을 더 소개드리겠습니다. 


[죽음을 담담하게 대비하는 방법]

최근에 크리톤이라는 걱정 많은 제자 하나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죽음에 제대로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방법은 하나뿐이야.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지.”

-중략-

“생각해보게. 만일 자네가 이승을 떠나려는 순간에, 젊고 매력적인 남녀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즐기고, 지혜로운 과학자들이 우주의 마지막 신비를 밝혀내며, 청렴결백한 정치가들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신문과 텔레비전은 유익한 정보 제공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건전한 기업가들은 마셔도 좋을 만큼 맑은 시냇물과 푸르른 수풀이 우거진 산과 오존층의 보호를 받는 청명한 하늘과 단비를 뿌려 주는 솜털 구름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우리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생각한다면, 자네가 아무리 신앙인이라 해도 어떻게 미련 없이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겠는가?

-중략- 

다만 명심할 것이 있네. 우리 주위에 있는 50억의 사람이 모두 바보라는 확신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심하고 사려 깊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일세. 재능도 있어야 하고 땀도 흘려야 하는 거야. 하지만 죽기 전날까지는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존재,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야 하네. 그러다가 적절한 순간에 그 사람 역시 바보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일세.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담담하게 죽을 수 있을 걸세. 

-중략-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견딜 수 없는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이치에 맞는 것을 더 좋아한다거나, 어떤 책이 다른 책 보다 낫다라든가, 어떤 지도자는 진실로 공동선을 추구한다라는 식의 생각을 어떻게든 고집해야 하네. 남들은 하나같이 다 바보다라는 믿음을 거부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인간적인 본성일세. 그렇지 않다면 인생을 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세상에 바보가 넘쳐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선하고 진실을 찾고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신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면,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저 수많은 바보들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에코는 이 이외에도 열 권에 가까운 소설, 에세이, 수십 권이 넘어가는 기호학, 문학이론, 미학, 미디어 관련 서적을 집필하였습니다. 저는 이 중에 절반 정도를 읽어본 것 같은데요. 어떤 것 하나 실망스러운 게 없었습니다.



인문학은 죽었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끝없는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인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 어떠셨나요? 


여러분도 20세기 최고의 인문학자 움베르토 에코를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에코의 책을 소개드렸습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이외에도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도 상당히 쉽게 읽히는 책이니 기회 되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학자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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