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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학자의 책장 Oct 02. 2019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1984 - 조지 오웰

인간은 기술의 발달을 통해 생존 너머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동시에 기술은 인간성의 종말을 고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1984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이야기 속에서 세계는 거대한 핵전쟁을 겪은 이후 혁명과 반 혁명을 반복하다 3개의 초거대 국가로 통합됩니다. 이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체제의 붕괴를 방지하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중 오세아니아는 영국 사회주의당 독재 체제의 국가로 국가의 원수 빅 브라더, 내부당원, 외부당원, 그리고 노동자 이렇게 4개의 계층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빅 브라더는 당을 상징하고, 내부당원은 통치를 외부당원은 실무를 노동자는 노동을 담당합니다. 당은 자원 제한과 우민화 정책을 통해 노동자를 무력하게 하고, 텔레스트린을 통한 감시, 당원들 간, 가족 간, 상호감시, 자기 검열을 통해 외부당원을 통제합니다.



영국 사회주의 당은 4개의 부서로 나눠져 있으며 각각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 범죄를 관리하는 애정부, 배급을 관리하는 풍요부, 정보를 관리하는 진리부 입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의 외부당원으로 진리부에서 과거를 수정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그는 과거를 수정하는 일을 하며 과거의 모든 기록이 수정되고 나면, 더 이상 과거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개인의 기억은 증거가 될 수 없고, 과거를 회상할 물건이 사라지면 기억도 희미해 집니다. 윈스턴은 영국 사회주의 당이 오세아니아를 지배하기 전에 태어났지만 영국 사회주의 이전의 세상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과거를 수정할 때 신어를 사용합니다. 신어는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에서 필요하지 않은 단어를 제거한 언어입니다. 당은 단어를 없앰으로써 사고의 폭을 제한합니다.


"윈스턴 자네는 신어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군.

자네는 신어를 만드는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낱말로 표현될 것이고, 그 뜻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다른 보조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혀지게 될 걸세."


윈스턴은 이런 세상 속에서 의문을 가지고 살다가 길을 가던 중 몸을 파는 노동계급 매춘부를 만나 지저분한 지하실에서 정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몰래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하자 막연하게만 느끼던 당에 대한 반발심은 구체적인 형태를 띄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일기를 쓰는 순간 그는 이미 당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이며 자신의 죽음은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은 사생활을 없앰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지배합니다. 항상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원은 자기검열을 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생각까지 통제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통제는 이중사고라는 것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과거의 개조는 '영사'의 중심 교리이다. 과거의 사건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과거는 오직 그 자료와 기억이 한데 뭉친 것이다. 그리고 당은 그 모든 자료와 당원의 마음속까지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당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를 변경시킨다고 해서 특별한 예외의 경우를 인정하는 것을 결코 아니다. 어떤 순간에 필요한 형태로 과거를 재창조했을 때 바로 이 새로운 것이 과거이고, 다른 과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들이 바람직한 양상으로 일어난 것은 수정한 탓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처럼 기억을 다시 정리하거나 기록된 자료를 허위로 변경했다면, 그 다음에는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이런 기술은 다른 정신적 훈련처럼 습득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당원과 정통적이며 지적인 사람들이 이것을 배우고 있다. 구어로는 이를 곧이곧대로 '현실 통제'라 하고,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이중사고'란 낱말은 이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우선 이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 중략 --- '이중사고'란 말을 사용할 때도 '이중사고'를 해야 한다. 이 말을 사용하면 현실을 왜곡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다시 '이중사고'를 하면 바로 인정한 것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무한한 거짓말이 진실보다 언제나 한걸음 앞서가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점점 더 많은 자유를 꿈꾸게 되고 더 많은 일탈을 행합니다. 그러던 중 외부당원인 줄리아라는 여성을 만나 연애를 합니다. 줄리아는 윈스턴의 눈빛만 보고도 그가 영사 체제에 불만을 가졌다는 것을 파악하고 대범하게도 먼저 접근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쪽지를 건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감시의 눈을 피해 밀회를 이어가고, 체제 전복을 꿈꾸는 형제단에도 가입합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관계를 가진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들은 당을 배신하는 행위를 한 것이며 동시에 한 명의 개인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 그 자체로 당에 대한 투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국엔 죽을 것을 알지만 당이 자신들의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하며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맞아,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비록 그것이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놈들을 이기는 거야.”

윈스턴은 절대로 잠들지 않고 언제나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텔레스크린을 생각했다. ‘그래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놈들을 따돌릴 수 있어.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 낼 수는 없으니.’ 물론 놈들에게 잡히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사실 애정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고문, 마취약, 신경 반응을 기록하는 정교한 기계, 수면 방해, 고독과 끝없는 심문으로 녹초가 되도록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인간으로 죽는 것이 목적이라면 놈들은 그를 변질시킬 수 없다. 놈들이 인간의 행동이나 말이나 생각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해도 인간의 마음속까지 공략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는 모두 감시당하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당이 꾸민 무대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연극을 꾸민 것은 내부당원인 오브라이언으로 그는 윈스턴을 형제단으로 이끈 인물이자 동시에 그를 고문하고 세뇌하는 인물입니다.


윈스턴은 애정부에서 끝없는 고문을 당하며 자신이 한 잘못, 그리고 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 자백합니다. 그러나 자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가장 큰 잘못은 ‘합리적인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당이 하는 말에 의문을 가졌다는 것, 의문이 들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즉 이중사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윈스턴의 잘못이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단순히 당의 체제에 불만을 느끼는 인물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이 세상에 당에 반하는 것이 존재한 적도 없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니야!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서도, 벌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야. 왜 자네를 이리 데려왔는지 말해 줄까? 그건 치료하기 위해서야! 자네를 온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우리는 자네가 저지른 어리석은 범죄 따위에는 관심도 없네. 당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아. 우리가 신경쓰는 건 사상일세.


자네가 첫 번째로 알아 두어야 하는 건 이곳에서는 순교가 없다는 점이네. 자네는 과거의 종교 박해 사건에 관해 읽어봤을 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중세에는 종교재판이 있었네. 그런데 그건 실패작이지. 모든 이단자들에 대한 본보기로 이단자 한 사람을 화형에 처할 때마다 다른 수천 명이 들고 일어났는데, 왜 그랬겠는가? 그것은 종교재판이 그들의 적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회개를 받아내지 못한 채 죽였기 때문일세. 사실은 회개하지 않는다고 죽였던 거지.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진실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걸세. 따라서 모든 영광은 그 희생자들에게 돌아갔고, 그들에게 화형을 선고한 재판관에게는 비난만 퍼부어졌지.


                                                                -중략-


자네는 생각하겠지. 우리가 자네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면 자네가 한 말이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 왜 굳이 이렇게 고문하고 심문하는가 하고 말일세.


                                                                 -중략-


우리는 소극적인 복종이나 비굴한 굴복으로 만족 못하네. 자네가 우리에게 항복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여야만 하네. 이단자들이 우리한테 반항한다고 해서 그들을 처형하는 게 아닐세. 우리는 그들을 전향시켜 속마음을 장악함으로써 새사람으로 만든다네. 그들이 지닌 모든 악과 환상을 불태워 버리고, 외양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영혼까지 우리편으로 만드는 거지. 그들을 죽이기 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만든단 말이세.  


오브라이언은 고문과 세뇌를 통해 윈스턴을 조금씩 바꿉니다.


"아까 내가 자네에게 손가락을 펴 보였네만, 자네는 다섯개로 보았지. 기억하나?"

"네."

오브라이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이 몇 개인가? 다섯개지? 다섯개로 보이나?

"네."

그는 분명히 그렇게 보았다. 그의 정신 상태가 변하기 전, 눈 깜짝할 순간에 손가락이 다섯 개로 보였던 것이다. 기형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그 전에 느꼈던 공포, 증오, 당혹감이 다시금 몰려들었다. 그러나 삼십 초쯤 될까, 얼마 동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오브라이언의 새로운 가르침이 그의 텅 빈 곳을 채워서 절대적인 진리가 되고, 둘 더하기 둘이 필요에 따라서는 셋도, 다섯도 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그 모든 고문에도 불구하고 윈스턴은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빅 브라더를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고 하는 101호 실의 고문이 주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자기 대신에 줄리아를 고문 하라고 말을 하며 정신적으로 줄리아를 배신합니다.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던 사랑하던 사람을 배신하고 나자 이전의 윈스턴은 사라지고 맙니다.


당은 이제 윈스턴의 마음까지 지배합니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기술이 인간을 억압하기 시작할 때 인간의 마음까지 지배당하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1948년 조지 오웰이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기술을 통한 완전한 감시와 사생활의 종말은 단지 상상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래의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항상 추적당하고 있습니다. AI 비서의 등장 이후 우리가 하는 말들은 항상 기록되고 있습니다. CCTV와 얼굴인식 기술은 인파 속에서도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국민에게 점수를 매기고 그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시스템이 이미 개발되어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을 통해 생존 너머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기술은 인간성의 종말을 고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정말로 터무니없는 이야기 일 수 있지만, 합리성을 진부한 것으로 취급하고, 과거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늘어날 때, 우리는 1984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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