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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n 30. 2021

도망왔어요, 강릉으로

영혼을 구하는 프로젝트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는 제주 아니면 강릉인데, 제주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강릉은 좀 더 아는 사람도 있고 내륙이니까, 마침 맞닿는 면들이 좀 더 있어서, 도망왔어요. 내 영혼을 구하고 싶어서 도망 온 건데, 이런 얘기 조금 웃기죠? 근데 뭐, 요새 서점 가서 책 보면 영혼 구하는 얘기들이 많잖아요. 마음을 위로하는 거, 이런 거 다 그런 건데… 단어가 좀 다른 거지, 비슷한데. 도망와서 강릉 사는 거, 다른 버전으로는 잠시나마 어떻게든 나를 구하는 거, 내 마음을 멀리서 바라보는 거, 열심히 혼밥해먹는 거 다 그런 얘기 아닌가요.  




어쩌다 도망왔냐구요? 공무원하다가요. 갑자기 귀가 확 트이나요? 왜 그랬는지 궁금한가요? 그래서 무슨 생각하는지, 그래서 뭐 어디 연줄은 닿아서 다시 좀 안정적인 삶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아님 뭔가 큰 일을 벌인건지… 그런 건 없어요. 거기 있으면 내 영혼은 못 구할 것 같아서, 내 경제생활은 구하고 우리 엄마나 아빠, 가족들의 기는 세워줄 수 있는데, 내 영혼은 늘 쭈그리겠구나, 누가 직급을 불러주면 내 영혼이 좀 평온해지나 했는데, 아 내 영혼은 여기서 평온해질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누군가의 영혼은 그래 어쩌면 어느 정도는 대가가 있지만 일은 빡세게 하고 자존감은 지키고 그러니 자기 영혼을 지킬 수도 있겠지만, 내 영혼은 거기서는 잘 보다듬어 주기 힘들겠구나 싶어서 도망온 거예요.



이전에는 뉴스로 시작했어요. 회사 다닐 때는 김현정의 뉴스쇼, 어떤 날 이슈가 좀 대두되면 김어준도 듣고요. 그러다보면 와 세상은 왜 이 모냥해도 결국 가면 내 일하고 세상은 이 모냥이어도 내 일은 그대로고 야근도 그대로고, 그냥 계속 안 하면 다른 데 가는 법 모르니까… 아 저기는 딴 세상인가 하면서… 왜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못하고 기분이나 이상한 감정만 남고 쌓여서, 도망친 거예요.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던 월남했다가 죽어간 의사선생님 얘기나 오늘의 평범이 차올라 내일의 보통으로 기우는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인데이 다행이 불행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시를 쓰며 버티다가


그러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거 다 몰라 했냐 해서 남은 거냐면, 그건 아니구요.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 내게는 좀 더 오지랖 있는 삶인가, 그냥 저는 제 길에서 거기를 계속 가는 일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누구나 힘들지요. 힘을 써야 사니까 힘이 든데, 다들 열심히 사는데, 이 열심히의 방향이 제게는 맞지 않았어요. 다들 꼭 맞는 퍼즐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꿈이 있고 가정이 있고 한데 제게 그 꿈이나 거기서 일굴 수 있는 가정이 제 퍼즐이 아니구나, 저는 제 영혼이 중요한데, 누구나 영혼을 잘 보다듬는 방식도 다르고 길도 다르고 각자 보는 것도 다르고 하니까, 저는 그냥 아몰랑 내 길 갈래 하면서 나왔어요. 돈은 좀 벌었냐구요? 이전까지보다는 좀 벌었는데, 그렇다고 뭐 인생을 길러낼 돈은 못 벌었어요. 제가 철이 없고요, 저는 저 때문에 힘든 사람입니다. 와, 너는 왜 남들처럼 그렇게 못 살아서 여기 또 있니, 제가 그래요. 다수가 맞는 게 아닐까, 왜 근데 나는 그게 안 돼지, 아 이 고집쟁이를 어쩌지, 하면서 살아요. 힘들고 그래도 다들 힘을 써서 사니까 이건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 하면서요.



누군가는 제가 부럽대요. 일견 이해되는 면이 없다 할 수는 없지만, 저는 늘 제 무게를 짊어지고 삽니다. 누구나 그렇듯이요. 자기가 한 선택의 무게들이 어깨에 있고, 아 저는 '나는 참 나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 삽니다. 웃긴 얘기인데, 한 걸음 떨어지면 개진상 떠는 저 상사놈이나 일 못하는 부하직원이나 다 니 인생 살지 하며 부처가 되지 못한 나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터벅터벅 하다 울기도하고 그러다 다음날은 오고 온갖 욕설로 하루를 시작하니까, 그래도 다들 터벅터벅하다가 하루를 맞는데, 저는 어느날 그게 안 되서, 도망치기로 했어요. 강릉에서 도망중인 삶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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