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살이2_대관령 재궁골 인근에서 만난 식물들
돌배나무에게 반한 적이 있습니다. 반해봤자 언젠가 거주지 인근에다 돌배나무를 심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 거긴 하지만, 4월에 돌배나무에 꽃이 필 때 그 품은 벚나무와도 다르고 다른 비슷한 꽃을 피운다는 나무들과 다릅니다. 돌배나무가 가장 커보일 때는 꽃이 필 때인가 싶고, 하얀 꽃을 가득 피운 돌배나무를 보면 마음이 좋아집니다. 앵두나무, 자두나무, 매화가 피우는 꽃과 비슷하다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돌배나무에 꽃이 피면 자그마한 나무들이 피우는 꽃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하루종일 거기 앉아있어도 좋겠다 싶은 기분을 들게 하지요.
돌배나무 꽃이 필 때 갔던 곳에 돌배나무 열매가 지고 가서 나무를 찾았습니다. 꽃이 폈을 때보다 나무가 작아보여서 이 나무가 그 나무가 맞을까 싶었지만, 그 돌배나무라고 합니다. 옆에는 꽃사과며 모두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습니다.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전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놀라움 투성이입니다. 그때 꽃을 피운 그 나무는 언제 이런 열매를 맺은 걸까요?
바우길 국민의 숲길 구간 인근 남경막국수 근처에 핀 돌배나무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숲길이 아닌 재궁골 인근으로 들어섰습니다. 근처에는 타운하우스나 펜션 같은 건물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사이 바우길 이정표를 따라가는 초입에 산에서 보초를 서서 붙었다는 이름답게 자주빛 산비장이가 펴있습니다. 그 위에 화려한 무늬의 나비들이 앉아있습니다. 주홍, 분홍 무늬진 나비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건 말건 산비장이꽃 꿀을 빨아먹는 데 집중해서인지 산비장이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옆에는 연보라빛 쑥부쟁이도 가을을 알리려는 듯 피었습니다. 8월 중순이지만 입추가 지나 바람이 선선해질랑말랑 하는 즈음이니 지대가 높은 곳에는 쑥부쟁이가 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톱풀에 핀 꽃을 만났었습니다. 마침 돌배나무 옆에 핀 꽃에 대해 물었다가 서양톱풀이라는 답을 들은 뒤였는데 그와 비교라도 하라는 듯 톱풀이 피어있었습니다. 서양톱풀은 잎에서 갈퀴가 다시 나며 갈라지고 톱풀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들은 참이었습니다. 서양톱풀과 톱풀을 비교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그마하게 핀 꽃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그냥 슥슥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 작은 꽃들에 누가 이름을 이렇게 붙이고 분류를 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점점 더 이름이 많아지면 머리가 아파지지만, 그래도 이 작은 것들을 보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다가 또 그런 인간의 일과 상관 없이 피어나 자기 예쁨을 뽐내는 꽃을 보고 있으면, 좋습니다.
왜 사람은 꽃을 좋아할까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잎보다는 꽃을 보게 되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초록 속에 피어난 자기를 봐달라는 안간힘 같은 것에 눈이 가는 걸까요? 사람들보고 자기를 봐달라기보다는 수정에 도움을 주는 곤충들에게 자기를 보이기 위해서지만요.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나선 길이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요새 매일 밤이면 비가 내리기 때문에 초입부터 길이 많이 질었는데요. 양지꽃 이파리 끝부분이 물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이파리 끝부분에만 물방울이 맺힌 게 신기했는데, 일엽현상이라고 합니다. 식물체 내에 수분이 많아 내뿜고 있는 것이라고요.
등골나물과 뚝갈은 늘 헛갈립니다. 똑같은 하얀색이 같은 시기에 피는데다 디귿, 기억으로 초성마저 비슷하다보니 볼 때마다 이것은 등골인가 뚝갈인가 싶습니다. 알고 보면 등골나물은 국화과이고 뚝갈은 마타리과라는데, 마타리는 노란색이니 구분이 되지만 (물론 그 외에도 비슷하게 생긴 애들이 너무 많지만) 이 둘의 헛갈림이 요새 산에 갈 때마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헝클어진 느낌이 든다면 등골나물, 조금 더 정갈하면 뚝갈이라고 정리하고 있는데, 나중에 또 산에서 마주치게 되면 헛갈릴지도 모르지요.
이전까지는 국화처럼 생긴 작은 노란색 꽃을 보면 고들빼기겠거니 했는데 고들빼기도 한두 종류가 아닙니다. 이고들빼기, 두메고들빼기, 왕고들빼기를 산에서 보았는데 찾아보니 심지어 두메고들빼기, 왕고들빼기는 상추속이라고 합니다.
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에서 주로 산딸기나 줄딸기를 보았는데, 뱀딸기, 멍석딸기, 곰딸기 등 훨씬 많은 딸기가 있다고 합니다.
국민의 숲길 인근인 재궁골에서는 낙엽송이 머리 위에 가득합니다. 높이 솟은 낙엽송 아래는 층층나무가 가끔 층을 이루고 있기도 하고 우리 눈 높이나 그 아래로도 초록이 가득합니다.
깊은 산속에서 자란다는 산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처음 보았다는 게 놀라울 만큼 산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꽃이 큰까치수염입니다. 하얀색 꽃이 아래부터 차례로 피며 수정이 시급한 아이들이 가장 위쪽으로 올라와 있다 보니 나중에 가장 위쪽의 꽃까지 다 피고 나면 숙였던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말라 있습니다. 산 여기저기서 쉽사리 볼 수 있는데 보고 나면 보인다는 그 말처럼 여름 산에 가면 하얀꽃을 피우는 큰까치수염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작은 노란색 꽃을 피우는 개구리미나리와 깊은 산속에서 볼 수 있다는 물양지꽃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멀리 보면 그저 초록이나 자세히 보면 가지각색의 산중입니다.
물개암나무에는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고 멸가치, 미꾸리낚시, 산층층이 등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고 말 작은 꽃들이 가득합니다.
물가에 다다르니 이전에 종종 보이던 물봉선이 무더기로 피어있습니다. 진동호에서 보았던 것보다 색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왠지 아는 얼굴을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비가 자주 와 계곡물이 폭포처럼 흐르는 데서 물멍을 때리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양치식물과 이끼식물이 많아집니다. 예전에도 흘끗 본 적은 있는 듯 하나 속새가 양치식물인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속새밭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곳곳에 속새가 빼곡합니다. 식물 진화 중 앞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양치식물이나 이끼가 많은 데 있다 보면 오래 전 시간 속으로 들어와있는 듯 기분이 묘해집니다.
선자령으로 올라가지 않고 원점회귀하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내려오는 길에는 박쥐나물이며 애기앉은부채, 광릉갈퀴, 며느리밥풀꽃이 보입니다. 소설 제목으로만 알던 싱아며 지난번 진동호에서도 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알아보지는 못한 영아자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보아야만 보인다는 말을 산에 갈 때마다 실감합니다. 초록이라고 할 때는 보지 못하던 작은 꽃을 보고 있게 되었습니다. 늘 있었으나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보게 되었으니 인생이 더 아름다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쉽싸리와 익모초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며 그 둘 중 하나가 꽃이 지고 말라버린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던 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는 없습니다. 피어있을 때뿐 아니라 생명이 다하고 나서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흉내내는 무수한 디자인을 봅니다. 오죽하면 신을 떠올려 자연을 창조했다고 생각했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주말엔 숲으로 라는 만화책을 좋아했는데, 어느 정도 소원을 이뤄 주말엔 숲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숲에는 뭐가 있어, 물으면 자연이 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빈다. 우리가 흉내내는 자연스러움이 가득하다고, 거기 있다 보면 나라는 미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왜 숲에 가냐고 물으면, 아직은 그 정도 대답밖에 못하겠습니다. 자연과 계속 가까이 있는 일이 인생을 획기적으로 달라지게 하지는 못하지만 자연스러워지는 기분이 좋습니다.
그제의 숲, 어제의 숲, 오늘의 숲이 있습니다. 내일도 숲은 있겠지요. 그 숲은 매번 다릅니다. 한순간도 같지 않으며 잎을 내고 떨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가끔 가보면 무성하게 변한 숲에 놀라며 계절을 실감하지만 숲은 시간을 삽니다. 놀라는 것은 나지요. 같은 듯 다른 시간에 놀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 서영석 숲해설사님으로부터 식물 이름이나 식생 관련하여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