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우리 집으로 보내
헤어진 지 몇 개월이 지난 전 남자 친구의 프로틴이 갑자기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다.
그것도 내가 그의 마지막 카톡을 발견하고 밤새 잠을 못 잔 바로 다음날에.
처음 택배를 보고 든 생각은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택배를 보기 전날 밤 나는 2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출근했다.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미처 지우지 못한 그 친구의 긴 마지막 카톡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걸 본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우며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이런 건 진짜 소설에서 나오는 표현인 줄 알았는데,
중소기업 다닐 때 스트레스로 심장이 아팠던 이후로 처음으로 겪는 통증이었다.
허겁지겁 편의점에 가서 초콜릿을 사서 먹었더니 조금 나아지고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기분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오후에 해야 할 일들을 다 끝내미 못한 채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날 저녁잠이 안 왔다.
이전에 지인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우주 무드등을 천장에 틀어두고
빔프로젝터 유튜브로 재즈음악을 틀고
별짓을 다해봐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사귀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거 같다.
다만, 헤어진 날의 아픔이 순식간에 나를 덮쳐왔던 것 같고,
그때의 내가 안쓰러워서 잠이 안 왔다.
사람이 사람을 잊는데 1년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짧지 않은 시간을 만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도 힘든 순간이 존재한다.
평소엔 생각이 많이 나진 않았지만,
이렇게 문득 발견하는 흔적은 내 심장을 아프게 할 뿐이다.
결국 나는 2-3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출근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오늘 전 남자 친구의 택배가 우리 집 앞에 있었다.
처음엔 내가 어제 잠을 못 자서 헛것을 본 걸까 싶었지만
다시 봐도 프로틴 파우더 이름은"ㅇㅇㅇ"
내 집안에 들여두기도 싫고 먼저 연락하기도 싫다.
사람이라면 배송완료가 떴는데 물건이 없으면 찾아보지 않을까 싶었다.
동시에 혹시 이걸로 내 반응을 떠보려는 걸까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흔들림 자체가 아직 내가 완벽하게 못 잊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시 사귀고 싶지 않다.
이전의 연애 경험들을 통해 헤어진 연인이 다시 잘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잘 되려면 과거를 완벽히 잊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안다.
우리의 이별은 서로의 잘못이 있었고 내가 그 시간 대비 성장했는지 잘 모르겠다.
보통 헤어졌던 연인을 못 잊는 이유는 그때의 나를 잊지 못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그때의 내가 너무 싫어서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서로 좋았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눈치를 봤다.
나는 눈치 보는 성향이 아닌데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내 직업은 트레이너다.
긴 시간 사귀는 사실을 부모님한테 비밀로 한 그 친구는 나한테
"우리 부모님은 트레이너 안 좋아하는데"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모님이 여자를 만나라고 했다는 이야기, 혹은 나를 사귀는 걸 알면 싫어하실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걸로 언제까지 먹고살 수 있을 거 같냐 와 비슷한 말들을 서슴없이 했으며, 자식이 "우리 부모님은 트레이너야"라고 소개하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봤었다.
어떨 거 같냐니 건강하고 좋을 거 같지.
라고 당당하게 맞받아치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트레이너를 쉬운 직업이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오히려 나 스스로가 편견에 사로잡혔고, 당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나는 처음부터 트레이너를 한 게 아니다.
회사도 다녔고 원하던 곳에서 근무해본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운동은 항상 내 삶의 가장 큰 고민이자 포인트였고,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한 직업이었다.
나는 트레이너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운동지도자로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에 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래서 보고싶고 감정적인 마음이 들어도
그때의 내가 싫어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