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라는 성장호르몬 주사
택배를 받으러 전남자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집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거는 그를 보며 택배가 실수는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저녁을 먹을 건지 물어봤다.
그는 좀 더 밝아진 얼굴로 알겠다고 하며 들어왔다.
사실 나는 얼굴을 보자마자 울 것 같았다.
택배를 주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한 뒤 보낼 생각이었는데
택배를 받고도 계속 복도에서 근황을 물어보는 그를 보며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우리는 몇 개월간 하지 못한 말을 다 했다.
서로가 없는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는 이사를 결정했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고 있으며 그 친구는 해외를 다녀왔다.
사귄 기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게 이뤄져 있었다.
나에게 자신이 없었기에 이렇게 성장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맞기도 하다.
연애에 나는 에너지를 많이 쓰고 연애를 비효율적인 걸로 생각하는 편이라서
연애가 빠진 나의 삶은 두 배는 빠르게 발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외롭고 기댈 곳이 없어서 길을 걷다가 눈물이 나왔다.
나는 그런 감정에 젖어있지 않는다.
눈물을 3초 정도 흘린 뒤 아 눈물이 나네 그래 근데 울어서 뭐 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성공한 나를 그려본다.
"아 제가 길 가다가 눈물 흘릴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성공했죠"라고 인터뷰하는 재밌는 상상
그러면 눈물이 그친다.
이별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이 내 세상이 되어버려서 이별을 할 때마다 힘들어한다.
보통 애도기간을 정해두고 마음껏 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눈물이 갑자기 나더라도
"애도기간 지났잖아..."혼자 다짐하거나
세상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던가.. 엉뚱한 상상을 하거나 일을 하며 생각을 돌린다.
그러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있다.
그래도,
힘들 때가 있다.
나는 사실 헤어지고 잠을 잘 못 잤다.
졸리지가 않았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도 안 졸렸고
끊임없이 매운 음식이 당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잘 몰랐다.
매일 카톡 하고 보는 사람들도 잘 몰랐다.
근데 이번에 그를 만난 뒤로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
우리는 만약에 우리를 본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우리가 계속 사귀었으면 안 헤어졌을 거 같냐고 물어봤고
나는 헤어졌을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날 우리는 대화만 7시간 30분을 넘게 했다.
그 대화 속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나는 처음 그가 헤어짐을 고했을 때
나에겐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만 진심이었고 그는 가벼웠던 마음이 아닐까 하고
친구들에게 뒷담도 많이 하고 그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게 편했다.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는지 서로 이야기하고,
불같았던 감정이 지나간 뒤 객관적인 눈으로 보니
사실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었고
괜찮은 연애를 했다.
그 끝이 영원히 함께하는 게 아니라 아쉽지만,
오히려 우리의 만남이 퇴색되지 않는 지금 선에서
서로를 성장시킨 연애로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환승연애 솔로지옥 등 연애 관련프로그램을 일절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공감되지 않았고 인위적인 것처럼 느껴졌으며
이별여행을 가는 사람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고 나니 이해가 간다.
못다 한 말을 할 수 있고
서로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으며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