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_침묵을 견딜 용기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에어컨 바람에 때아닌 오한이 들어 겉옷을 챙겨 입고 건물 밖으로 나와 맞는 주황빛 햇살은 저의 등뒤로 포근하게 내려앉아주었습니다.
편평한 등을, 볼록한 이마 위를, 길게 뻗은 콧잔등과 수줍게 솟아난 양 볼을 따라 따스히 내리며 저의 하루를 다독여 줍니다.
그동안 바빠서 살펴보지 못한 초록들을 넋 놓고 보고 있자니, 나는 지구의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느끼며 그간의 아픔들이 대수롭지 않아 지고, 내가 이래서 초록을 좋아하지. 하고 생각하며 싱긋 웃었습니다.
쓰라리게 팔락이던 마음의 가장자리가 조금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늘이 내리는 시원한 벤치도 있지만, 유모차를 끄는 아기 엄마에게 양보했습니다.
아니, 양보랄 것도 없습니다. 저는 햇살이 내리쬐는, 앉으면 엉덩이가 따끈해 그간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의자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따스히 빛나는 햇살과 천방지축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속도 모르고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완벽한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출근입니다!
46화_침묵을 견딜 용기
고객은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날 며칠 고민 후 결정을 하시고 방문하시는 고객도 당연히 있지만, 매장에서 테스트 후 구매하시거나,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2개 이상일 때 고객은 고민에 빠집니다.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놓치지 않고 비교해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은 점점 길어집니다.
여기서, 응대는 빠른 응대와 여유로운 응대로 나뉩니다.
빠른 응대의 대표적인 예로는 부동산.
마음에 드는 집은 얼른 가계약금을 걸고 먼저 찜을 해두어야 다른 사람이 먼저 채가지 않죠. 내 눈에 좋은 집은 남의 눈에도 좋은 집이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 당근을 하나 살 때에도 이것은 제주산인지? 세척을 따로 해야 하는지? 겉에 무른 곳은 없는지 요리조리 둘러보고 구매하는데,
한번 구매하면 몸에 걸치고, 입고, 뿌리는 것을 구매할 때 고민을 오래, 많이 하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부동산과 같이 빠른 응대가 이루어질 때도 물론 있습니다.
이것이 리미티드일 때, 하나밖에 안 남았고 이미 많은 고객이 고민하고 돌아가셨을 때, 혹은 오늘이 가장 혜택이 좋은 날 일 때 등등입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뭐야, 나한테 팔려고 수 쓰는 거 아니야?’
라고 하실 수 있지만 직원 입장에선 진짜 고객님이 좋아서입니다.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매너가 나이스한 고객님이시거나, 나의 은사님이나 친구를 닮았거나, 나만 아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었거나 나와 같은 핸드폰을 쓴다거나……. 대충 그만큼 별 이유 없단 뜻)
많이 보는 예로 홈쇼핑에서 “품절이 임박했습니다.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등의 멘트입니다. (이것 또한 실제 수량입니다.)
그런 저도 말이 없어지는 한 포인트는 바로 고객이 <침묵>할 때입니다. 그냥 침묵이 아니라 이 제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 타이밍이요.
‘사? 말아? 이거 비슷한 게 있던가? 과연 내가 진정 필요한 물건인가? 이 값을 지불하고 살만한 제품인가?‘
등등의 생각 중 이시겠죠?
이때 제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고객과의 침묵을 견딜 용기.
말을 해야 하나? 멘트를 하나 더 던질까? 용량 때문에 고민하는 걸까? 가격 때문에 고민하는 걸까? 0.1초 안에 이루어지는 생각은 수십 가지.
이 수십 가지를 몰아치지 않고 잘 정리해서 잘 건네어야 해요.
고객에게 이 물건을 팔려면 고객이 고민할 타이밍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저희는 배웁니다. 고객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파악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고 구매까지 이르게 해야 하고, 애초에 빠른 구매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떼로 선택지를 제한합니다. 공격성 응대는 높은 매출을 끌어내기 효과적이지만, 저는 이 말이 늘 맞다고 생각되진 않았습니다. 사실상 분위기를 조성해서 얼결에 구매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느꼈거든요. 상황에 따라 좋은 세일즈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위에서 말했듯이 식재료 하나를 구매할 때도 요리조리 둘러보고 고민하고 그램당 금액까지 따져보고 구매하는 주부 고객님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고객님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물론 이때 귀찮은 티를 낸다거나, 지친 티를 낸다거나, 시계를 보거나 짝다리를 짚는 등 절대 금물이겠지요.
고객이 고민만 하시다가 매장을 이탈한다 할지라도, 저희는 웃는 얼굴로
“천천히 돌아보시고 다시 방문해 주십시오~” 하니깐요,
충분히 고민해 보시고 만족스러운 구매가 되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는 사람과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이불속에서 ‘그런 얘긴 하지 말걸.’ 하고 후회한다고.
또 누군가는 사람과의 침묵이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 그 사람도 할 말이 없고 나 또한 할 말이 없으니 된 거 아닌가? (애초에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만큼 묻기 전까지 몰랐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그 사람이 침묵할 때 충분히 그 사람이 말 정리를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며, 그 사람이 오븐 속 빵처럼 이스트를 만나 천천히 부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세 번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저 또한 말이 느리고,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을 때 생각과 말이 동시에 되지 않으며, 머릿속에서 말을 고르고 고르기 때문인데요,
때로 생각이 너무 많아 사는 게 버겁다 느껴 지금은 좀 더 말하는 데에 두려움을 떨치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적정선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겠죠?
조금 더 가벼워지기 위한 노력. 그 적정선은 늘 찾기가 어렵네요.
그래서인지 전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주위 사람이 조금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내가 조금만 이해하면 천천히 나에게로 걸어와 말 걸어줄 거예요.
밤하늘을 잃어버릴까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여놓았어요.
달은 소리도 없이 저만큼 커졌고
목마른 하늘에 내려줄 빗물도 옹기종기 모이는 중이니,
아무런 소리 없이도 불안해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바라보면
사랑을 한 아름 껴안고 웃어줄 거예요.
오늘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