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_미운 네 살과 아기천사의 한 끗 차이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프면 몸이 따라 아픈 사람이라, 최근에 조금 버거웠습니다.
나는 편안해질 수 없는 걸까? 하다가도 숨통이 트인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몇 시간 동안이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소소한 밥 한 끼였습니다.
달력을 보며 꼬박 며칠을 쉬지 않고 일했는지 세어보았지만 그것은 훈장 같은 피로감이었고, 직업이 많은 사람은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동시에 터지면 제 아무리 강철이라 할지라도 멘털이 흔들린다는 것을 찍어 먹어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저는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 그리던 <잠잘 시간도 쪼개서 일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은 갖추었지만 멋지기는커녕 왜 행복하지 않나의 답을 찾으려 했으니 답답하기만 했고, 그런 저를 건져준 건 옆 사람들이었어요.
사람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기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마음을 다시 다잡았습니다.
조금 쌀쌀하고 비 내리는 오늘. 오늘도 출근입니다.
45화_미운 네 살과 아기천사의 한 끗 차이
주말 풍경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객들이 북적거립니다.
평일엔 한산해 보였던 식당들이 모두 웨이팅 중이고, 고객 동선 정리가 안돼 직원들이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카페에는 직원들의 녹초가 된 모습을 볼 수 있고,
청소 이모님들도 평소보다 더 바쁘게 일하시는 게 보입니다.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주말 풍경 중 제일은 유모차입니다.
곤히 잠만 자는 아기부터 시작해 걷고 뛰는 아기들까지 정말 많은 아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나가며 방긋방긋 인사하는 아기와, 수줍어 엄마를 찾으며 도망가는 아기, 그리고 엄마 아빠를 모두 당황하게 만드는 목청이 찢어져라 우는 아기도 있죠.
걷고 뛰는 아기들은 저희에게 사실 늘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인접해 있는 매장이니만큼 걸어 다니는 아기들이 에스컬레이터 주변에서 장난을 치거나 혼자 걸어가면 혹시나 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하게돼죠.
그런데 다른 매장에서도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집기와의 사고가 가장 잘 일어나기 때문인데요,
저희 매장은 향수 매장이다 보니 모든 제품이 유리인지라 각별히 주의를 하는데, 가끔 아기 손이 닿는 낮은 곳에 향수 진열이 되어있을 땐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기가 덥석 집어 바닥에 내동댕이 친다거나, 마구잡이로 달려와 부딪혀서 향수가 와르르 쏟아진 적, 낮은 매대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집기에 손을 집어넣는 등 위험한 상황들이 가끔 있습니다.
어느 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매장 앞에 고객님이 동선에 멀뚱 서계셨습니다. 멀리서 매장을 주시하며 걸어오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가 디피 제품을 덥석 집더니 냅다 던져버립니다.
엄마가 황급히 주워서 다시 디피존에 올려두는 것까지 확인했어요. 그런가 보다 하고 확인하지 않고 매장으로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 제품은 노즐 부분이 손상되어 사용할 수 없었고 외관도 까진 상태였으며, 심지어 모서리가 깨져있었습니다.
어느 시향회 날, 높은 매대에 향수가 쌓여있는 디자인의 매대였고, 밑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게 안전장치가 잘되어있었으며, 벽 쪽으로 붙어있는 매대였습니다.
잠깐 고객 응대하던 중 아기가 달려와 매대에 몸을 부딪혔고, 매대는 흔들리며 향수병들이 와르르 쏟아져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퍼졌습니다.
‘와 이건 백 퍼센트 컴플레인 걸린다 큰일 났다.’
번뜩 드는 생각에 아기가 다친 곳은 없는지 요리조리 살폈고 아기는 영문도 모른 체 순수한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안팀들이 달려왔고, 무전을 받은 미화팀이 출동했고, 주변 직원들과 고객들의 시선은 모두 저에게로 쏟아졌습니다.
파트리더는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 때문에 위험하니 고객들을 다른 동선으로 안내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기를 살폈는데 엄마가 와서 아기를 훑어보더니 말 한마디 없이 초연하게 사라졌습니다.
옆 매장은 밑으로 열리는 서랍장이 있는 구조라 아이들의 손이 잘 닿는 위치인데, 그 밑으로는 쿠션이나 매니큐어 등 작은 화장품들이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응대받는 와중에 엄마를 올려다보던 아가들은 손을 뻗어 자기 손에 쏙 들어오는 제품들을 가지고 놀다가 자기도 모르게 들고 가버려서, 뒤늦게 엄마가 다시 등장해 사과하며 물건을 돌려주는 경우가 있고, 제품을 모조리 뽑아서 순서를 다 다르게 다시 꽂아놓는다거나 새로운 놀이를 합니다.
아기들의 눈에는 아주 좋은 놀잇감쯤으로 보일법도 합니다.
앞 매장 직원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기들이 서랍장을 열어 스카프를 모두 흩트리고, 바닥에 끌고 다니며, 그 서랍장은 손이 끼이거나 이마를 찧기에 딱 좋은 위치인지라 모서리에 고무 패킹 처리를 하더라도 정말 많은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며 난처해했습니다. 직원들이 아무리 많고, 항상 예의주시한다 할지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바로 아가들인 것 같다고요.
백화점 내에서 일어난 사고는 아기를 탓할 수도, 보호자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난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백화점 팀이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어린 시절 열병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분명 그 시절 함께 아파하며 이 문제에서 벗어날 고민을 같이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이 되어보니 꼭 청춘이 아니어도 열병은 여전한 듯 해 밤을 새워 토론을 했어요.
그때는 그때에 맞는 고민이 있고, 행복이 있듯이 지금은 지금에 맞는 고민과 행복이 있을 터인데, 막상 닥친 어른의 삶은 다시 행복이 희미하다며 뜬 눈으로 별을 세네요.
그동안 달라진 주위 사람들, 이제는 정말 인생을 다 안다며 호기로웠던 작은 어깨 위를 다시 짓누르던 문제들, 어른은 처음이라 어렵기만 한 물밀듯 몰아쳐오는 고난들. 저번 주, 저를 이것들에게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은 그저 햇살을 맞으며 구경하는 연휴를 한껏 즐기는 사람들, 하릴없이 거니는 공원, 한참을 걷다 마주한 치즈케이크 한 조각과 건강한 수다 한 모금, 맛있는 저녁 식사로 마무리되는 하루.
앞에서 말한 지친 날들 중 저를 살게 해 준 것들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아 맞아! 나 이런 거 좋아했지?'라고 번뜩 머릿속을 스쳤고, 이토록 단순하고 쉬운 것들이 제게 큰 위로가 되어 저를 일으켜 주었네요. 그 힘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였고, 새로운 한 주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게 되었고, 앞으로도 살게 될 테고요.
잊고 지낸 나를 발견한 하루 끝에는
아직 마주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발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유난스럽게, 조금 더 요란하게
나를 사랑해야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요즘 좀 힘들다 하셨던 분들이 있으시다면, 가장 가까운 곳을 둘러보고 그것들에게서 위로를 받아보기를 추천드립니다.
생각보다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았고, 소소한 것이 주는 힘은 결코 소소하지 않더라고요.
물론 알고도 가장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요, 행동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이러쿵저러쿵 이유들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힘든 것 다 잊히고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어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것이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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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