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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Apr 29. 2024

백화점 C 양 체험판_44

44화_1층의 남편들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론 아직 봄이랍니다. 백화점은 드디어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에어컨 바람에 예민한 저는 며칠 내내 몸살끼에 몸이 무거워요.

그러던 어느 아침, 출근 후 응대 테이블에서 깜빡 잠들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여름날 교실에 앉아 가만히 있으면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참 좋아했어요. 더위에 지친 친구들이 책상에 엎드려 숨소리만 내는 것, 반팔 위 대충 걸친 교복 블라우스,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아 선생님께 징징대던 시절, 컴퓨터실에만 가면 검붉은 오래된 나무 창 사이로 흔들리는 푸른 벼잎들이 참 좋았는데... 좋아하는 노래를 귀에 꽂고 창문을 보며 잠들었던 그 쉬는 시간을 기억합니다. 그날이 그리워 그 노래를 다시 듣다 잠들었고, 많이 커버린 저는 그 꿈으로 인해 마냥 기분이 좋네요.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그리고 깔깔거리며 웃던 어린 날의 제가 그리워지는 아침입니다.

오늘도 출근입니다!


44화_1층의 남편들

옷과 가방 그리고 액세서리 화장품이 가득한 백화점 1층.

조용히 걷지만 바쁘게 신상을 체크합니다. 대부분 가족 단위이나, 데이트 나온 커플들인데요,

몇 년 동안 제가 보게 된 유독 1층에서만 볼 수 있는 남자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자주보이는, 어쩌면 대부분의 모습인, 이번 주에 관찰한 부부의 모습을 조금 담아봅니다.


화장품을 보고 있는 아내의 뒤에 멀뚱한 남편.

저 부부는 평일 내내 각자의 일을 처리하다 주말에 쇼핑을 나왔을 겁니다.

아이는 유모차에 거의 눕듯이 앉아 혼자 떠드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고, 엄마는 어딘지 모르게 들떠선 립스틱을 이것저것 발라봅니다.


“보고 있어 금방 올게”


남편은 흡연구역이 어디냐고 직원에게 묻곤 밖으로 나가 몇 분 뒤 돌아옵니다.

아이는 핸드폰에 재미를 잃었는지 징징 대기시작했고 엄마는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었다 당겼다 하며 한 손으론 립스틱을 고릅니다.

결국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근처를 크게 한 바퀴 빙 돌았지만 엄마의 쇼핑은 끝나지 않았어요.

아기를 예뻐하는 점원들의 시선에 아이의 입을 빌려 인사를 해보기도 하고, 머쓱해하고 있는데

립스틱을 바른 아내는 남편에게 물어봅니다.


“이게 예뻐 이게 예뻐?”


오랜만에 신난 아내의 얼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 여태껏 보지 못한 미소로 대답합니다.


“이게 더 잘 어울리네.”


“근데 너무 비싸다 립스틱에 몇만 원 쓰기 아깝네 밥 먹으러 가자.”


“그냥 사”


“안 살래”


“왜~ 여태껏 봤잖아 여보 사고 싶은 거 사”


아내가 한사코 거절하며 유모차를 끌고 매장을 벗어납니다.

아내를 응대했던 직원에게 살짝 묻습니다.


“바른 게 뭐예요?”


직원은 몰래 사주려는 남편의 의도를 눈치채고 얼른 요점만 단어로 툭툭 던집니다.

쇼핑백에 빠르게 설렘이 담깁니다. 얼른 받아 든 남편은 등뒤로 쇼핑백을 숨기고 걸어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등뒤에 외치는 직원의 인사처럼 될 것 같은 상황이네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아달라 보채는 아이를 들쳐 안고 토닥이고 있습니다.

참 고생 많았을 사람, 저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몇 년 전 그 소녀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인 거 같죠?



<오늘의 퇴근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운 이유는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동정도 사랑이다라고 하며, 누군가는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라고 하고 누군가는 사랑의 힘을 믿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 사랑은 뭘까 하고 가끔 고민했던 것 같은데

저에게는 “사는 게 뭘까”와 “사랑이 뭘까” 가 거의 비등비등하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 문제들이라 그냥 피했던 주제들입니다.

저는 사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도처에 깔린 모든 것이 사랑이에요.

오늘 아침 출근 길로만 보아도 아침 새소리, 조금 잤지만 푹 잔 것 같은 개운함,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기다려주는 차, 엘리베이터 열림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는 것, 문을 열고 지날 때 살짝 문을 잡아주는 것, 모든 것에서 사랑을 느껴요.

누군가는 “그런 것도 사랑이냐” 하지만

작은 것에 사랑을 느끼며 살다 보니, 사랑이 아닌 것들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너무 거창하게, 어렵게 느꼈던 그것들은 저에게 너무나 단순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세요.  ‘봄이 와서’가 아니라 사랑이 더 쉽게 보이는 계절이니까.


작은 것들에 사랑을 부여하니
사랑이 아닌 것들이 없고
그것들은 늘 나를 안아주고 있었으며,
봄이 와서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봄이 세상을 투명하게 만들어
아무도 몰래 사랑이 비친 것 같아.






기억하세요. 행복은 빛나는 장미 한 송이가 아니라, 수북하게 모여 -신해철, <음악 도시> 마지막 클로징 멘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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