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18
훈풍이다. 내가 놀라지 않도록 나를 달래며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빗어주는.
응대를 마무리 짓고 조금 늦은 퇴근을 한 오늘.
기다리는 버스정류장에서 마음을 흔드는 노래를 들으며 잠깐의 사색에 빠진다.
오늘 난 응대를 하며 “맞아, 난 고객을 응대하는 게 좋고, 얼굴도 모르는 처음 만난 이 사람들과 작은 테이블에서 몇 가지의 정해진 멘트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하고 생각하며 두 다리로 매장에 서서 크게 둘러보았다. 새롭게 보였다.
추석의 밤은 짧아졌고, 사사로운 것들은 크게 보이고, 매일매일이 숫자가 된다.
잘 앉지 않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뚫린 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야 활기를 조금 찾은듯한 도시의 불 그래도 듬성듬성 어둠을 지킨다.
병원에서의 일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필히 쉬고, 필히 자야 한다고.
나약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서른 살이나 먹었는데도.
바쁜 것이 좋은 건 줄 알았다.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잠을 자지 않고 목표를 해내는 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
사람들은 퇴사하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그중 누군가는 나만 몰랐던 내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잠을 줄이고 분단위로 스케줄을 짜서 일을 쳐내는 나 자신이 좋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다.
대단치 아무것도 되지 않았지만 기반이 정말 땅땅해졌으리라 믿는다. 절대 무르지 않을 땅.
오늘도 가까운 곳에서 진통제를 지어먹었고, 아픈 허리가 원망스러워도, 어느 정도 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 달 같은 꿈에 밧줄을 묶으러 가는 길이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퇴근길이었길 바랍니다. 그리고 달이 정말 동그랗고 빛나요.
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