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26
한 글자 시작이 어렵고, 쓰다 보면 그런대로 써지는 것이 내게는 가사이고, 두 번째로는 사직서라고 오늘부터 추가하겠다!
별것 아닌 개인사유 네 음절 적는데 이게 뭐라고 위압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막내들이 퇴사하며 사직서를 적을 땐 옆에서 가르쳐줘보기나 했지, 내가 써본 적이 없어내 별생각 없었는데 새삼 이토록 거칠고 무거운 서류였구나 싶다.
출근은 이틀 남았다. 하지만 며칠은 더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스케줄표를 괜히 자주 들춰본다.
‘나 진짜 여기 안 와?’
이토록 서운한 걸 보니 내가 너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게 아닐까 괜히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장난.)
일을 사랑했다. 그래서 에세이도 쓰게 됐고, 에세이 쓰면서 더 사랑하게 됐다. 거짓말 한 톨 안 보태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상처 치유도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건 내 인생의 기적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이 핸드빌을 했고, 제품이 들어와 영차영차 허리 부여잡고 핸들카를 끌며 구두에 땀이 차도록 다녔고, 고객을 만났다.
뵐 때마다 장난치고 음료수 나눠마시던 배송기사 아저씨한테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저씨가 안 계셔서 제품만 홀랑 집어왔는데 섭섭했다.
하긴, 하나하나 마음 가는 사람 다 챙기다 보면 아마 백화점을 뱅뱅 돌며 “나 퇴사하네~”하고 떠들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챙기고 싶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도 마음에 거스러미가 핀다.
나는 인스턴트 인연이 아직도 어려운 mz다. 모두들 어쩜 그렇게 시원하다 못해 추우면서도 아무렇지 않은지.
일에도 인연에도 그런 것들이 늘 있는 것 같다.
나는 궁금한 길은 길을 잃더라도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리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머리가 안 아픈 사람이다. 일도 그랬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 철이 없는 건지 늘 헛갈리며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헛갈린다.
같은 말을 자꾸 하는 버릇이 있는 막내 언니는 자꾸 대리님의 말을 재연해 준다.
“지금 퇴사해서 어쩌려고? “라고 말했다고.
뭐, 죽기야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