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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Sep 26. 2024

사직서 쓰기

무명배우여서, 퇴사합니다. 240926

한 글자 시작이 어렵고, 쓰다 보면 그런대로 써지는 것이 내게는 가사이고, 두 번째로는 사직서라고 오늘부터 추가하겠다!

별것 아닌 개인사유 네 음절 적는데 이게 뭐라고 위압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은 막내들이 퇴사하며 사직서를 적을 땐 옆에서 가르쳐줘보기나 했지, 내가 써본 적이 없어내 별생각 없었는데 새삼 이토록 거칠고 무거운 서류였구나 싶다.

출근은 이틀 남았다. 하지만 며칠은 더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스케줄표를 괜히 자주 들춰본다.

‘나 진짜 여기 안 와?’

이토록 서운한 걸 보니 내가 너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게 아닐까 괜히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장난.)


일을 사랑했다. 그래서 에세이도 쓰게 됐고, 에세이 쓰면서 더 사랑하게 됐다. 거짓말 한 톨 안 보태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상처 치유도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건 내 인생의 기적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이 핸드빌을 했고, 제품이 들어와 영차영차 허리 부여잡고 핸들카를 끌며 구두에 땀이 차도록 다녔고, 고객을 만났다.


옛날엔 꽉 끼는 치마입고 이 무거운것들을 어떻게 올렸다 내렸다 했나몰라

뵐 때마다 장난치고 음료수 나눠마시던 배송기사 아저씨한테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저씨가 안 계셔서 제품만 홀랑 집어왔는데 섭섭했다.

하긴, 하나하나 마음 가는 사람 다 챙기다 보면 아마 백화점을 뱅뱅 돌며 “나 퇴사하네~”하고 떠들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챙기고 싶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도 마음에 거스러미가 핀다.

나는 인스턴트 인연이 아직도 어려운 mz다. 모두들 어쩜 그렇게 시원하다 못해 추우면서도 아무렇지 않은지.


일에도 인연에도 그런 것들이 늘 있는 것 같다.

나는 궁금한 길은 길을 잃더라도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리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머리가 안 아픈 사람이다. 일도 그랬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지, 철이 없는 건지 늘 헛갈리며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헛갈린다.


같은 말을 자꾸 하는 버릇이 있는 막내 언니는 자꾸 대리님의 말을 재연해 준다.

“지금 퇴사해서 어쩌려고? “라고 말했다고.


뭐, 죽기야 하겠나.


 

지인에게 갑자기 퇴사 선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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