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일
내가 가장 힘들 때 생각이 나는 사람은 할머니이다.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 때면 나는 늘 착한 사람 타이틀을 얻는다. 우리 착한 손녀로 시작해 우리 착한 손녀로 끝난다. 할머니한테 난 늘 강아지이고 예쁘고 착한 사람. 그래서 나는 그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 20년도부터 지금까지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버리고 있던 그 4년 동안 할머니의 4년은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있던 시간이었단 걸 이제야 깨달았다. 할머니가 나비가 되어서야, 구름이 되어서야, 비가 되어서야 나는 보러 왔다. 너무 속상했다. 이제 냉동실에 남기고 간 고춧가루가 내가 느낄 수 있는 전부라니. 다 괜찮아 잘될 거야 최고야라는 말을 해줬던 존재가 없다는 게 이렇게 허망할 줄을 몰랐다. 세상에 제일 큰 어른이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 사랑을 받았기에 지금의 내가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용돈을 지갑 깊숙이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는 나. 항상 그 지갑을 품으면서 할머니 없는 세상을 잘 버티게 해달라고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