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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Apr 22. 2024

마지막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준 코모도섬

엄마 얼굴이 정수기가 되었어.

아름답고 평화로웠지만 매일이 이슈였던 코모도섬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발리로 돌아가는 날

아쉽지만 홀가분하고 서운하지만 마음이 가벼운 이상한 기분으로 아침부터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3박 동안 아침 점심 저녁 매일 고립된 섬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했던 리조트 직원들과는 꽤나 정이 들어서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채채.


그도 그럴 것이 리조트 레스토랑에 어린 여직원 데시는 우리를 처음 만났던 날,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유난히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안부를 물어주었는데,  본인이 BTS팬이고 아미라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고 우리 채채의 "저도 아미예요!" 한마디 한 뒤에 둘은 말은 잘 안 통해도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며 BTS멤버들 이름을 줄줄이 읊으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누가 가장 좋은지 어떤지 마음을 나누었던 터라

헤어짐이 더 아쉽고 아쉬웠다.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잊은 물건은 없는지 찬찬히 짐을 챙기고 라부안바조 항구로 가는 배 시간에 맞춰

체크아웃을 하고 결제까지 다 마친 우리는 리셉션에 가방을 맡기고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아이는 피시 앤 칩스를 시켰는데 튀겨진 생선의 사이즈가 우리가 어젯밤 제티아래에서 봤던 큰 물고기와 사이즈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우리 둘 다 "혹시.." 하고 말끝을 흐리며 눈빛을 주고받았고, 동시에 정말 빵 터져서 밥 다 먹고 나가서 그 물고기가 아직 있는지 보자며 큭큭 대느라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르게 웃었다.


아이랑 이런 유치한 상상을 하며 웃을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별 것 아닌 것에 함께 웃을 수 있고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에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게 감사했다.


언제든 꼭 다시 돌아오라며 리조트 직원 모두가 살갑고 따뜻하게 배웅해 주었고 진짜 꿈만 같았던 이곳을 뒤로하고 우린 배에 올랐다. 니모도 라이언피시도 안녕-




항구에서 공항까지는 리조트에서 마련해 준 택시로 갈 수 있었는데 우리와 동행했던 호주 여행객들은 라부안바조에서 코모도 투어와 며칠 트립이 더 남았다고 하여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트를 들러 간단한 장을 본 뒤 우리 모녀를 공항에 내려주고 그 뒤에 그들을 호텔로 내려준다고 했다. 여기에서 내가 잠시 정신이 헤이해 졌던 걸까, 느긋한 섬에서 느긋하게 보내다가 나사가 하나 풀린 걸까.


공항에 내리면서 캐리어를 내리고 호주여행객들에게 남은 여행 잘하라고 인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마친 뒤 짐 수속을 위해 게이트에 줄을 선지 10분쯤 지났을까. 뭔가 기분이 허전한 것이 몸이 너무 가볍다고 느껴짐과 동시에 등이 아주 시원하고 홀가분 한걸 알아챘다.


내 배낭!!!!!


배낭에는 핸드캐리 해야 하는 전자제품들, 아이패드 고프로 옷가지들이 있었더랬다.

배낭을 택시에 두고 내린 거였다. 어떡해야 하지?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아이에게 그 사실을 말했더니 아이도 매우 당황해한다. 일단 캐리어는 붙여야 하니 줄을 선채로

와츠앱을 열어 도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1분이 1시간 같아서 읽을 때까지 쉴 새 없이 헬프미를 외쳤다.


어느 날은 답이 재깍재깍 오지만 어느 날은 몇 시간씩 부재중이기도 했던 리조트 고객센터였다.

제발 제발.. 메시지를 읽어달라고 혼잣말을 하며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낸 끝에 드디어 수신확인이 된 걸 확인 한 순간, '택시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는 이 간단한 문장도 머릿속이 하얘져서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엉망으로 메시지를 보냈더니 상대는 알아듣기 힘들어하고 아주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었다.


짐을 수속하고 일단 메시지를 봤으니 분명히 해결방법이 있을 거야,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나는 세라야 섬의 너희 리조트에서 투숙했고 방금 너희가 보내준 택시를 타고 라부안바조 공항에 내렸는데, 내 배낭을 그 택시에 두고 내렸어, 너희가 보내준 택시이니 연락처가 너희에게 있을 거야. 지금 빨리 도와주면 가방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야. 제발 도와줘!!!!라고 난 곧 비행기를 타야 해서 시간이 얼마 없어, 까지 차분하게 쓰고 나니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을 보내달라는 거다. 아니 지금 내린 사람 나밖에 없는데 그게 중요한가? 하고 땀을 흘리고 있는데 순간 그곳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아쉬워 의미 없이 한 장 찍어둔 사진이 떠올랐다.


정말 아무의미 없이 찍어둔 사진 한장 덕분에 가방을 찾았다.



사진을 전송하고 10여분 뒤.

다른 번호로 메시지가 왔다, 우리가 묵었던 세라야 섬 리조트에서 연락이 온 것. 택시 드라이버를 찾았고 너의 가방도 찾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한 메시지.


드디어 온몸의 근육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에게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계속 '괜찮아, 걱정하지 마 찾을 수 있어.'만 반복해서 말했는데 드디어 찾았대 채채!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안 되는 영어로 여기저기 연락을 주고받고 보니 아이가 내 얼굴에 손선풍기를 대어주고 있었던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엄마 얼굴이 정수기 같아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그러게 엄마가 가방을 잃어버린 채로 비행기를 타야 할 까봐 너무 긴장했어,

그리고 채채에게 오늘 코모도섬 기념품을 여기서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못 지킬까 봐도 걱정했고"


그랬다, 나는 사실 가방도 가방이었지만

아이에게 오늘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념품을 사주겠노라고 오기 전부터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택시기사님을 만나 가방도 무사히 전달받고, 비행기 마저 지연출발 하는 바람에 더 마음 편안하게 기념품 샵을 들를 수 있었다.


등은 다시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공항 밖에 있는 큰 기념품 가게로 향한다.

아이는 나무로 조각된 크기가 제법 큰 코모도 드래곤 조각상을 골랐고,  저렴하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신중하게 고른 물건임을 알기에 기꺼이 사주었다.


작고 아담한 라부안바조 공항에서 계속 지연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피곤해졌다. 그래도 발리는 한국인 관광객도 많고, 큰 관광지이니 우리가 여행하기 조금 더 수월하겠지. 몇 번 만났던 드라이버 마데이가 우리를 마중 나올 테니 그것도 걱정이 덜 되었고, 이 코모도섬은 들어온 날부터 나가는 날까지 우리 모녀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와 둘이서는 위험해서 안된다고 했던 이 섬에서 아이와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냈는지, 남편에게 가족들에게 말해줘야지. 그리고 우린 이벤트 투성이던 이 여행을 평생 추억하게 되겠지, 코모도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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