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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Apr 29. 2024

오늘도 무사히 보내게 해 달라는 기도 선물

폭우에 고립된 우리.

다시 발리 국제공항.

처음 발리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픽드랍해준 드라이버 마데이가 공항으로 와주었다.

우붓으로 가야 했고 하필 저녁시간에 도착한 우리에게 배는 고프지 않니?라고 물어봐주던 마데이

"배가 고프긴 한데 뭔가를 먹고 싶진 않아, 너무 피곤해서 빨리 숙소로 가고 싶어."

라고 대답을 했더니 마데이가 친절하게 탄산수를 따서 건네주었다.


비록, 탄산이 다 빠진 탄산수였지만 그의 마음이 따뜻해서 탄산이 있는 척 시원하게 마셨다.

우붓 시내 가까이였지만 골목 안쪽에 위치한, 가족이 운영한다는 작은 호스텔에 늦은 밤에 도착했다.


신혼여행으로도 많이 가는 곳에서 지내던 리조트에서

배낭여행객들이 많이들 묵는 호스텔의 컨디션 차이는 꽤 컸지만 '살아보기'가 해 보고팠고, 3주 여행동안 매번 호텔에서 지낼 수는 없으니 선택한 가성비 숙소였다.


방문을 여는 순간 왠 날벌레들이 정신없이 날아 움직이고 욕실에 불을 켰더니 날파리 애벌레로 추정되는 벌레들이 벽을 기어 다닌다, 우리가 이 방에 투숙하기 한참 전부터 방이 오래 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일단 밤이 너무 늦었고, 뭐 어쩔 수 없지. 챙겨간 벌레 퇴치제를 구석구석 뿌리고 뜨거운 물을 욕실 구석구석 뿌려준 뒤 아이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우리 여기 곤충 보러 왔다고 온갖 벌레들이 아는 척하네"


문 앞에 나방이 한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맞은편 벽에는 찌짝(도마뱀)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저 거봐 저 도마뱀이 나방을 사냥할 거 같아!!"

"우리가 보고 있으면 명중에 실패할 수 있으니 도망자를 응원할지 사냥자를 응원할지 생각해 보며 어서 자자"


 






다음 날 아침, 어제의 불편한 모습들로 잠을 설쳐서 인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우붓에서 어떻게 지낼지 생각하며 테라스 문을 활짝 열었는데, 어제는 보지 못했던 우붓의 청량함이 기분을 좀 나아지게 했다.


그리고 테라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방 날개들! 찌짝이 사냥에 성공했나 보다.

아이랑 둘이서 누굴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었지만 누군가는 즐거운 저녁이었네 하고 웃어 보였다.

테라스 앞 나무에는 박새보다도 더 작은 새가 와서 둥지를 짓느라 바빴고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코모도에서 모아 온 빨래를 세탁소에 맡기고 우리 숙소 근처에는 뭐가 있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 점심을 먹어볼까 하는 찰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보니 오늘은 좀 쉬라고 하나보다 하고 아이랑 그랩으로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챙겨간 보드게임을 하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 여유가 좋다라고 느낀 건 단 반나절, 그 이후로도 비가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쉴 새 없이 내려 우린 숙소에 꼼짝없이 고립되고 말았다.

우비를 쓰기엔 온몸에 멍이 들 정도의 비였고 우산을 쓰고 나가기엔 우붓의 길은 좁고 복잡하다.

더군다나 레스토랑이 없는 작은 호스텔로 온 우리는 비상식량마저 동이 난 상태였는데 아이랑 나갈 수가 없으니 밥이 문제였다, 그랩푸드 마저도 기사가 배정이 안 되는 상태


이를 어쩐다.. 거기다 작은 원룸형태의 방에 아이랑 온종일 갇혀 있다 보니 어제는 여유였는데 오늘은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들기 시작했다.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밖을 나가볼까 하는 순간 천둥번개돌풍을 동반한 비가 오니 다시 포기를 하기 여러 번.


지금이라도 조금 규모가 있는 호텔로 옮겨 아이랑 호텔 산책이나 식사라도 해결을 해야 할까 하고 숙박어플을 켜보았다. 고민하는 동안 눈앞에서 방이 자꾸 매진된다.


와중에 호텔로 이동은 어떻게 하지? 하고 여행카페에 접속해 보니 다들 택시가 잡히지 않고, 차에 탄 사람들도 도로가 다 침수되어 길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는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됐다.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고 숙박어플을 닫으며 창가에 인기척이 나길래 내다보았다.

호스텔 사장님이 우리 방 문 앞에 짜낭사리를 놓고 기도를 하시는 게 아닌가.


우리 방 앞에 놓여있던 짜낭사리


짜낭사리란, 발리 힌두교의 종교의식으로 발리의 여자들은 하루에 3번에서 5번 짜낭이라는(Canang) 코코넛잎으로 만든 바구니에 사리(Sari)라는 내용물을 채워 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발리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길거리 상점 앞 집 앞 사원 등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안에 채워진 꽃의 색에 따라 의미하는 신이 있고 쌀, 과자, 돈, 향, 담배 등을 놓고 제물을 바치는데 과자는 길에 돌아다니는 개, 원숭이, 새 들이 와서 먹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라고 기도해 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주어진 하루를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발리인들의 긍정의 힘이, 우리 모녀에게 전해져 우리는 우비를 입고 우산도 빌려 쓰고 밥을 먹으러 나갔다.


길은 좁고 온통 물웅덩이에 아이와 둘이 걷기도 쉽지 않았지만, 이것도 추억이지!

우리는 오늘 하루도 무사하게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선물 받은 행운의 여행자들이니 좋은 일들만 가득할 거야! 하고 아이랑 쫄딱 젖은 채로 우붓의 논길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논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야자수가 우뚝 서있는 모습이 꽤 이국적이라, 흐린 날에도 비 맞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비가 오니까 개구리를 만날 수도 있지!라는 아이의 말에


우린 쪼그려 앉아서 개구리도 찾아보고 달팽이도 찾아보고, 오늘의 행복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비 오는 우붓을 즐겼다.


비록 아무것도 찾지는 못 했지만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간단히 밥도 먹었고, 유명한 코코넛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나눠 먹으며 오늘의 행복을 충전했다.


"엄마 이거 정말 정말 맛있다, 우리가 한국에 이거 차릴까?“


코코넛 수입을 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는데? 아이의 귀여운 생각에 혼자 웃음이 터졌다.

여행 뭐 별거 있나, 이렇게 순간순간 즐거우면 되는 거지, 그렇게 오늘도 무사히 보냈고 행복했다.



사냥에 성공한 찌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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