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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May 20. 2024

돌고래가 우리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 같아

좋은데 불편했고 행복했지만 아쉬웠던 순간들

우붓에서의 마지막 밤. 사실 제일 기대했던 우붓인데 지내는 내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획한 것들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일정이 있으니 떠나야 하는 우리는 여행자.


우붓 다음의 일정이 발리의 유명한 화산 바투르 화산을 넘어 로비나 라는 북쪽 어촌마을로 가는 일정이었다.

사실 운전은 드라이버가 해 줄 것이고 몸만 가면 되지만 걱정이 되었던 게,


나흘 넘게 비가 쏟아부었던 지라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곳이 많아 산사태가 났다는 뉴스. 도로가 침수되어 유실되었다는 뉴스들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고, 설상가상 우리는 그 산을 너머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 길들은 우리나라의 도로처럼 잘 지어진 길이 아닌 정말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취소를 해야 할까 어쩌나 걱정이 커지는 중에 유리창이 깨질 듯하게 불어대는 바람과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는 마치 귀신소리 같았고, 비가 집을 다 부숴버리는 건 아닐까 싶게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나는 정말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였는데 다행히 씻고 준비하는 동안 비바람은 화를 가라앉히고 잔잔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잘 지내다 간다는 인사와 함께 처음 만난 그데이가 우리를 데리러 와주었다.


중간에 예약해 둔 은반지 공예도 하고 화산이 보이는 낀따마니 카페에서 점심도 먹고 3시간을 넘게 달려 로비나에 도착했다.


발리의 북쪽 작은 어촌 마을 로비나.

야생 돌고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돌고래 투어로 소문이 난 지역이지만 아무래도 짧은 일정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위치에 있어 여러 번 방문한 여행자나 장기 여행자들만 오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었다.


발리의 유명한 관광지들과는 다르게 이슬람 아잔 소리가 곳곳에 들리고 이슬람 사원도 꽤나 보이는 조금은 낯선 풍경.


물이 쫙 빠진 바다에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갯벌체험 하듯 무언가를 줍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서해바다 같기도 했다.


아이와 짐을 풀고 우리도 바다로 나가본다.

질퍽거려서 걷기는 쉽지 않았지만 물 빠진 바다에 빵게와 조개 대신 산호와 말미잘이 보이는 모습에 여긴 인도네시아 발리이지,라고 또 각인된다.


아이와 바다생물들을 관찰하고 있는데 돌핀투어를 할 거냐고 끊임없이 호객행위가 들어온다.

심지어 나보고 인도네시아 사람이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자카르타에서 휴가를 온 거냐고 묻는다. 응? 내가 그렇게 현지인스럽게 생겼나 하하.


어찌 되었든 생각해 보겠다는 내게 내일이 풀문(보름달)이라서 물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돌고래 투어하기 좋은 날이니 잘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 호객꾼.


바다에서 배를 타고 돌고래를 보는 투어이니 날씨 영향도 많이 받겠네, 일단 먼저 시도해 보고  못 보면 다음날 다시 도전해 봐도 되니 호텔로 돌아와 호텔 프로그램으로 신청을 했다.




다음 날 새벽 6시 돌고래 투어는 아침 일찍 시작된다.

돌고래들이 해가 뜨고 수온이 높아지면 깊은 물속으로 숨기도 하고 보통 일출투어와 함께 묶어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인 투어 프로그램인 듯했다.


작은 나룻배에 휴가 중으로 보이던 인도네시아 가족과 우리, 혼자 여행 중인 듯 보였던 흑인 여성 이렇게 여섯만 배에 타게 되었다.


해가 뜨기 전이지만 풀문데이라더니 정말 달빛이 이렇게 밝을 수 있구나 싶게 밝고 아름다웠고,

바다에 비친 달을 보며 잠도 덜 깬 채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돌고래를 찾으러 간다.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와우- 하는 소리가 들리면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배들이 다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손님들에게 돌고래를 보여주기 위해 전투적으로 달리는 배들. 우리도 바로 앞에서 돌고래 떼를 보기도 하고 돌고래들이 대화하는 소리도 직접 들었다.


야생 돌고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신기하고 황홀한 기분이 들었는데, 보통 1시간 정도 투어시간 내내 돌고래 떼를 내내 볼 수 있다는 후기와는 달리

10마리 남짓의 돌고래를 두어 번 본 것이 다였다.


아이가 실망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채채야, 혹시 돌고래를 많이 못 봐서 서운하면 내일 또 볼래? 우린 여기서 세밤이나 잘 거야"


시무룩한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 엄마, 그냥 봐도 돌고래가 우리를 피해서 도망 다니는 것 같지 않아?  한번 만났으니 난 괜찮아, 돌고래들은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어"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동물원이 아니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고 동물을 워낙 좋아해서 좋아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의 대답에 생각이 많아진다.


로비나를 떠난 뒤 유명한 사파리 내에 있는

동물원 호텔에서 지낼 계획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성숙한 마음을 가졌고 많이 자란 게 느껴져서 기특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컸으면 했는데 그만 컸으면 하는 모순적인 마음.


그렇게 우리는 돌고래와의 만남을 좋았지만 불편했고, 행복했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발리 로비나의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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