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엄마를 기억할 때
우리가 발리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 중 하나가 더운 나라에 사는 곤충들을 보기로 한 만큼
우리는 발리의 수많은 관광지들을 뒤로하고
북쪽 정글 깊숙한 문둑이라는 지역을 방문했다.
원래는 문둑 정글 속에 있는 작은 홈스테이에서 지내려고 했으나, 발리 깊숙한 지역 특성상 그랩(택시)도 잡히지 않고 오토바이를 탈 수도 없을뿐더러
아이랑 단둘이 움직이려니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조금 큰 큐모의 호텔에서 지냈고, 호텔은 깊숙한 정글지역의 특성상 호텔 내에서 많은 것들을 자급자족 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을 프로그램화해서 투숙객들과 나누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어서 매우 만족도가 높았다.
우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쓰고 나온 코코넛 오일과 레몬그라스로 캔들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캔들은 또 호텔 레스토랑 이벤트나 데코에 쓰인다고 했고 폐 플라스틱을 이용해서 팔찌도 만들었다.
폐 플라스틱들을 모아다가 구슬로 만들고 구멍을 뚫어 팔찌를 만드는 프로그램은 인근의 유치원과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체험으로도 많이들 방문한다고 했다.
호텔이 단순히 관광객만 유치해서 투숙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연이 순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리고 노력하는 모습은 꽤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발리 메인 관광지에서 험한 산길을 차를 오래 타고 와야 하는 북부 지역이지만, 다음에 아이아빠와도 함께 와서 이 대자연을 오롯이 누려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버드와칭 프로그램에도 참여를 했는데 아이는 이 날을 계기로 곤충, 파충류, 식물등에서 조류에 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발리 사람들은 새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서 새 울음소리 대회도 열고 우승한 새는 고가로 팔리기도 하고 형편보다 무리해서 새 먹이를 사거나 새를 가꾸는데 지출을 많이 하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들리는 새 울음소리와는 다르게
노래하듯이 우는 휘파람새의 종류가 많아서 발리에서는 아침마다 기분 좋은 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정글지역에 위치한 만큼 이른 아침에 나가 새를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쌍안경과 새 도감까지 준비된 프로그램이라 아이가 아주 즐거워했다.
우린 약 5종 정도의 새를 직접 보았고 10여 종 가까운 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한국에도 있는 새 종류를 찾으면 한국어로도 이름을 알려주고 즐겁게 탐사를 했다.
사실 이 호텔 역시 신혼 여행객들이 많이들 찾는 프라이빗 하고 예쁜 수영장이 있는 호텔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또 이런 곳에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하게 되었네,
정글 절벽 끝 인피니티 풀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곳으로 유명한 이 호텔에 예쁜 수영복을 입고 인증샷을 남기는 외국인 커플 뒤로 우리는..
잠자리 채를 휘두르며 메뚜기도 잡고, 나비도 잡고
아이와 한국의 메뚜기와 어떻게 다르게 생겼나 한참을 관찰하고 사진 찍으며 보냈다.
휴,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너그러운 엄마야.
한편으론 이러려고 온 발리 여행에 너랑 내가 행복하면 됐지 라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남들이 다 하는 거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거,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우리만의 지도에 그려나가는 이 여행은 그 어떤 인증샷 여행과 비교할 수 없는 우리만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을 함께 겪으면서 아이와 나는 더 돈독해졌으리라고 믿는다.
언젠가 아이가 다 자라 내게서 독립을 하게 되는 때에도 엄마를 떠올리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항상 함께 즐겁게 해 준 내 편'이라고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시간가량 아무도 없는 리조트 산책길을 걸으며 보이는 곤충마다 처음 보는 꽃과 열매마다 수십 장 사진을 찍으면서도 행복했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