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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Apr 18. 2024

내 경험 vs 남의 경험

이제 나는 직접 봤어!라고 대답 할 수 있지

드디어 코모도 드래곤을 만나러 왔다.

평소에도 파충류 양서류 곤충 같은 생물들을 만나면 가던 길도 멈추고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배에서 내리기 전부터 그 누구보다 설레어서 빨리 내리고 싶어 발을 동동 거렸다.


배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선착장에서 수영하는 거북이를 봤다.

거북이가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길 가다가 물밖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필리핀 보홀의 발리카삭섬에서 거북이 만나러 가는 투어는 해봤어도 이렇게 길에서 만나다니! 아이랑 나는 사진도 찍지 못 한 그 찰나를 서로 거북이 봤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당장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는 아이의 모습을 보던 가이드가 코모도 만나고 나서 거북이 왕창 만나게 해 줄게!! 하고 웃어 보였다.


입구에서 코모도 도마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주의 사항을 듣는다. 매우 위험한 동물이라 일행 앞뒤로 공원 내 레인저가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함께 하는데 절대 단독행동을 해서도 안되고 큰 소리를 내거나 뛰어서도 안된다.


코모도 왕 도마뱀은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에서만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이고, 이곳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침에는 엄청난 박테리아가 존재하고 공룡의 후예라고 별명이 붙은 이 코모도 드래곤은 먹잇감을 사냥할 땐 일단 입으로 한번 물고, 박테리아에 감염된 먹잇감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다고 한다. 가끔 사람이 물리는 사고도 발생하고 혈관을 통해 독이 퍼지면 온신경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물리면 그 자리에서 물린 곳을 절단해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해서 레인저의 지시에 따라 조심히 관람을 해야 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처음에 이걸 보러 간다고 했을 때의 주위 반응들은, 대체 그 위험한 곳에 그걸 왜 보러 가냐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문구만 보면 돈 내고 고생해서 죽으러 가는 모양새니 말이다. 하지만 나와 아이는 호기심이 굉장히 많고 직접 가서 보고 만지고 듣는 것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편인걸 어쩌나, 이것이 소원이라는 딸아이에게 네가 힘들다고 투정 부리거나 하지 않는다면 가겠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이곳을 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준 아이의 모습은 내가 알던 것 이상으로 성숙한 모습이었고, 이런 모습을 나만 본 게 아쉬울 정도로 자랑하고 싶었던 모습인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겪으며 공유한 추억과 감정들은 절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인 것을 알기에, 이번 여행에서 내가 아이에게 꼭 느꼈으면 하는 것들을 느끼길 바랐을 뿐이다.



내 경험과 남의 경험

물론 책과 미디어, 다양한 공유 채널을 통해 후자도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경험했다는 사실은 간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지만 경험한 사람의 감정까지는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후자를 통해 지식은 습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경험이 주는 감정과 내적성숙은 경험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추측만 할 뿐, 나는 경험이 주는 가치를 아이가 알 수 있길 바랐고 그것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를 바랐다. 그래서 늘 짐을 꾸리고 떠난다.


아이가 나랑 함께 가기 싫다고 말할 때까지 함께 짐을 꾸리고 떠나고 싶다.




우린 걸음이 느리고 하나하나 볼 때마다 깊게 관찰하는 아이 때문에 제일 뒤에서 따라갔는데, 그 덕에 레인저와 함께 걸으며 그가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레인저가 말할 때마다 아이가 한국말로 같이 떠드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동시통역사 같았다. 하지만 서로 각자 할 말을 했을 뿐. 아이는 자기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해서 나에게 설명해 주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싶어 했다.

조용히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코모도의 모습은..

마치 하루종일 자길 보러 온 사람들에 질린 표정의 커다란 악어? 키우는 반려 동물? 정도의 느낌이었다.

저 커다란 도마뱀이 정말 그렇게 위험하다고? 얘네 여기서 사육당하는 거 아니야? 싶게 정말 가만히 있는 모습이라 의아했고, 우린 그 도마뱀 뒤에서 사진도 찍었다. 위험하다고? 진짜? 연출된 상황인 건지 알 수 없지만 레인저가 각자 핸드폰을 건네받다가 도마뱀이 움직일 수도 있으니 한 사람 핸드폰으로 다 찍고 알아서 사진을 받으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사육당하는 것 같은 코모도


그리고 숲을 간단히 걸으며 코모도 드래곤의 흔적을 좇는다, 둥지, 배설물, 이들의 습성과 번식 성장이야기 등을 듣다가 숲에서 닭도 만나고 멧돼지도 만나고 커다란 사슴도 만나서 신기해했는데 얘네들이 코모도의 먹이라고 밤이면 코모도가 사냥하러 숲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 사이 베이비 코모도를 만났다, 확실히 아직 철 모르는 아기라 그런지 걸음이 재빠르고 사람들 사이에서 유유히 걸어가는 거 보니 진짜 살아있는 도마뱀이 맞긴 하네 싶었다. 살아 움직이는 도마뱀을 보고 아이가 너무 신기해해서 갑자기 크게 움직이는 바람에 도마뱀이 방향을 틀어 가버려 일행 모두가 아쉬워하는 순간

레인저의 센스로 가던 도마뱀을 불러 세워 두 번째 포토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코모도의 먹이 사슴


 우린 한 시간가량 트래킹을 했는데 이렇게 두 마리밖에 만나지 못했다 번식기라 숲으로 다 숨어버려서 그렇다고 많이 못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이 섬에 들어온 비용과 투어비용, 끝나고 레인저에게 줘야 하는 의무 팁 등을 생각하니 정말 이 코모도국립공원 사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코모도 국립공원 내에 쥐라기 공원 같은 테마파크를 건립하겠다고 했겠지? 환경단체들과 충돌했다는 뉴스를 보긴 했는데 이후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디 지금도 사람의 손을 많이 탄 듯한 이곳이 이 정도만이라도 지켜지길 바랄 뿐이다.


투어가 다 끝나고 기념품 샵을 들를 사람들에게 잠깐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우린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아이에게 코모도섬을 나가는 날 공항 근처 기념품 샵이 크게 있으니 거기서 좋은 걸 사주겠다고 약속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우리 아이보다 더 어려 보이는 코흘리개 아이들에 제발 하나만 사달라고, 진주목걸이나 팔찌등을 들고 와서 매달린다. 수십만 원을 내고 여기까지 와놓고 단돈 만원도 안 하는 저 물건이 왜 그렇게 사 지지가 않던지, 미안해 를 외치며 애써 외면하고 배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행선지 만타포인트 스노클링

아이랑 세라야 섬에서 스노클로 몸을 좀 풀었고, 여기는 가이드도 있으니 좀 수월하겠지 했는데

보트에서 바다에 그냥 뛰어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 검푸른 바다에?


내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 아이가 겁을 먹어서 인지 자꾸 나보고 먼저 뛰라길래 애라 모르겠다 하고 뛰어들었고 고개를 넣었더니 그다음부터는 공포심 따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코모도섬 여행을 검색하면 다이빙트립, 리브어보드 투어등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해양생물 다큐방송에서나 보던 모습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돈을 많이 써서 꾸민 아쿠아리움도 이것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산호와 거북이,만타(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코모도섬 핑크비치(아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접시산호 뇌산호, 이름 모를 산호와 말미잘들부터 정신 못 차리게 앞을 지나다니는 물고기 떼들이 정말 황홀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그 와중에 산호 위에서 쉬는 거북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 거북이 저 수심 깊은 곳에서 먹이 먹는 거북이까지 5분도 안돼서 거북이를 다섯 마리도 넘게 보았고, 미역인 줄 알았는데 눈이 달려 헤엄치는 물고기도 내 옆을 지나가서 깜짝 놀랐다. 아이랑 정신이 팔려 일행들에게서 멀리 떨어질까 봐 나는 거리를 체크하고 아이를 잡아끌어 가이드 근처에서 수영하려고 하는데 아이는 자꾸 저 멀리 신기한 생물들에게 끌려서 아무 생각 없이 발차기를 하고 나간다. 이 날 극한의 발차기 훈련으로 다져진 내 허벅지 근육덕을 톡톡히 봤다. 세상에 정신없이 물고기 따라 앞으로만 가는 애를 잡아끌어 제자리에 돌려놓다 보니 기진맥진, 육아극기훈련 해상 편 2편을 찍던 중에 아이와 함께 입에 스노클을 물고도 소리를 질렀다. 수염상어였다. 세상에 상어를 봤어! 고프로가 고장 나서 가방에 두고 온 게 또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잊지 않으려고 눈에 담고 마음에 담으려고 애썼다. 사람들이 가기 힘들어야 자연 그대로 보존되는구나를 가슴깊이 느꼈다.


이름은 만타투어였는데 포인트를 두 군데나 옮겼지만 이 날 만타는 만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다음에 다시 올 이유 하나쯤 남겨두고 우린 숙소로 돌아간다.


"오늘 어땠어?"

"최고야 엄마, 너무 행복했어 꼭 다시 올 거야"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종일 투어였는데 행복했다니 다행이다. 내일이면 이 천국 같은 세라야 섬에서 나가 다시 발리로 간다.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 얼굴에 마스크팩 하나씩 붙이고 나는 비행기 티켓과 시간등을 체크하며 픽업 기사와 일정 공유를 하는 동안 아이는 패드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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