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 Apr 04. 2024

바다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코모도섬을 여행하기 위해선 플로레스섬, 라부안바조 항구로 가야 하는데, 이 지역은 마치 우리나라 남해, 거제도처럼 봉긋봉긋한 섬들이 아주 많이 있다.

항구 근처에서 지내도 되고 배를 타고 먹고 자고 다이빙을 하는 리브어보드 트립을 하기도 하고 우리처럼 원아일랜드 리조트로 들어가기도 한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원아일랜드 리조트로 들어간 이유는 바다생물을 너무나 사랑하는 만 8세 어린이와 투어 없이 스노클링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였고, 우리가 선택한 세라야 섬은 그 조건에 아주 만족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50분 정도 망망대해를 달려 세라야 섬으로 간다.


배를 놓칠까 봐 전력질주를 한 뒤라 힘이 들어 한동한 멍하니 있던 우리 둘. 배에는 다행히 우리 둘과 섬에 필요한 물품들을 싣고 출근하는 리조트 직원들이 전부여서 조용하게 갈 수 있었다.


나는 고향이 동해바닷가 지역이라 바다를 원 없이 보고 자랐음에도 낯선 곳의 바다가 주는 느낌은 또 달랐다.

물 빛, 바람의 냄새, 섬의 모양, 파도의 소리까지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세라야 섬은 얼마나 좋을까

어젯밤처럼 담배냄새에 찌들어 자지 않아도 되겠지,

모든 빌라가 다 비치 뷰라는데 정말 좋을 거야,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처음 하는 여행도 아니고 그토록 꿈꾸던 배낭여행에 배낭'만' 메고 온 것도 아닌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매일 삶을 버텨내느라 하고 싶은 마음으로만 삼켰던 감정들과 치열하게 살아내던 어린 시절의 내가 눈앞에 스쳐 지나간 게 이유였을 테지.


그리고 유난스럽다 하지 않고 네가 원한다면 안전하게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오라고 응원해 준 남편이 생각나서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눈물을 들킬세라 선글라스를 챙겨 쓰고 바람 때문에 눈을 찡그리는 것처럼 볼을 훔쳐대다가 아이 역시 조용해진 걸 눈치챘다.


"무슨 생각해?"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배시시 웃기만 한다, 혹시 내가 우는 걸 본 걸까. 나의 감정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아이고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당황할 때마다 함께 긴장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조용한, 미묘한 표정의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말하고 싶지 않아?"라는 질문에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

"어떤 기분인지만 알려줄 수 있어? 슬프다던지, 기쁘다던지, 행복하다던지, 설렌다던지.."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가 대답한다.


"감동적인 생각"


마음이 또 한 번 내려앉는 걸 느꼈다.

만 8세 어린이의 감동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지만

아이가 직접 말하고 싶을 때까지 더 묻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던 우리 둘은 눈앞에서 돌고래 떼를 발견했다.


돈 내고 투어도 간다는데 행운처럼 마주한 돌고래들을 보며 나는 눈물대신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채채야, 우리가 오늘 이 배를 타기 위해서 한 것들이 있잖아~ 엄마도 영어 잘 못 하는데 용기 내서 물어물어 비행기도 갈아타고 배도 타러 오고 사람들한테 길도 물어보고 또 혼자서 가방도 세 개나 들었어.

엄마는 못 할 줄 알았거든? 영어를 잘 못 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코모도섬이 너무 와보고 싶어서 용기를 냈어, 그리고 막상 와보니 여긴 진짜 오기 힘든 곳 같아. 그런데 엄마랑 채채가 해냈지? 거기다가 야생돌고래를 우연히 보다니! 돌고래가 우리한테 잘했다고 박수 쳐주는 거 같아"


"이 기분을 또 느껴본 적이 있어 엄마"라고 입을 뗀 아이의 뒷 이야기에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수학공부가 너무너무 하기 싫은데 단원평가에서 점수는 잘 받고 싶어서 억지로 하고 있다는 거다.

엄마가 수학학원을 다니고 싶지 않으면 집에서 만점왕이라도 풀어야 한다는 건데 학교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까지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니!!!

하지만 학원을 가는 건 더 싫은 일이라 하루에 한 장 노력해서 푸는데, 힘들었지만 매일 풀었더니 단원평가에서 나쁘지 않은 점수가 나왔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거다.


그걸 오늘의 이 세라야 섬으로 넘어가는 보트 탑승기에비유를 해서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말에 정말 초등학생다운 생각이다. 하고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받고 나니 만점왕을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라고 묻자,


"아...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거 보단 낫다. 

노력을 했더니 결과가 나오더라. 세상엔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힘들어도 해야 하는 게 있더라. 그게 내겐 수학시험과 만점왕이다." 라고 바다를 향해 외치는 채채를 보며 아이가 참 마음이 건강하게 잘 크고 있구나 싶었다, 중요한 건 단원평가 점수가 아니라 노력했더니 되더라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더니 내게 "열심히 살아서 엄마랑 계속 여행다닐거야" 라던 나의 어린 딸.

어린이의 열심히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 내심 궁금해 진다. 언제 그렇게 눈물이 흘렀나 기억도 안 나게 깔깔깔 웃으며 세라야 섬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무거운 가방들은 직원들이 알아서 날라주고 우린 가볍게 내려 담당 직원에게 친절하게 리조트 설명을 들으며 시원한 음료까지 대접받았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그때서야 뭔가 잘못된 걸 알았다.


원아일랜드 리조트에 비치빌라, 고립된 섬.

이곳의 주 고객은 신혼부부로 보이는 젊은 커플들 뿐이었다.


나 여길 애랑 단둘이 온 거야? 맙소사.


자연친화적이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세라야섬





이번 여행을 떠나온 진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살아온 이야기와 저희 부부의 육아가치관의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왜 이 여행을 오게 되었고 왜 그토록 눈물이 났는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는데

그 글을 이 브런치 북에 쓰다보니

글이 너무 무거워져서 따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고 어떤 여행을 했구나의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되었어요.



브런치의 세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낯설고 어리바리하는 중인데 라이킷 알림과 첫 구독자 알림에 요즘의 봄 햇살처럼 마음이 좋았어요.

별거 아닌 이야기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벼리 드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