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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Apr 01. 2024

관광객 말고 여행자가 하고 싶어서

아줌마는 힘이 세다.

예약해 둔 호스텔은 라부안바조에서 꽤나 핫 한 숙소였다. 동양인은 딸과 단 둘 뿐. 아이 동반 여행객도 우리 둘 뿐.


리셉션엔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낯익은 여행객들이 함께 설명을 듣고 있었고,

발리랑 다르게 관광객을 배려하지 않는 속사포 같은 영어에 나는 계속 긴장한 상태였다.


호텔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고 루프탑 레스토랑이 바다를 바라보는 구조라

리셉션에서 숙소까지는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등엔 7킬로의 배낭이 있었고, 내겐 합이 30킬로인 캐리어가 두 개.

직원들이 내 가방을 보며 한번 웃어 보였고 친절하게 함께 날라주었다.


이럴 땐 마음만큼이나 가방도 가벼운 배낭여행객이고 싶지만, 아이를 핑계로 챙겨 온 비상식량과 없으면 불편할까 싶어 바리바리 챙겨 온 짐들 때문에

그냥 유난스러운 아줌마가 된 기분과 더불어 혼자서도 할 수 있어! 하고 다짐했던 용기들에

자꾸만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꾸 우울해졌다. 아이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방 문을 열고 들어오니 사진과 다를 것 없이 깔끔하고 깨끗한 룸이 우리를 맞이했다.

다만 사진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아주 진한 곰팡이 냄새가 우릴 맞이했고 설상가상 흡연까지 자유로운 나라에 왔으니 우리가 비흡연자여도 방안으로 자꾸 담배냄새가 들어와서 괴로운 나는

아이의 표정을 살피려 바라보았는데,

"엄마! 여기는 온통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이야!! 내가 좋아하는 신기하게 생긴 나방도 많아! "

하고 신이 난 얼굴이다. 심란한 엄마와 다르게 진짜 외국 여행을 온 것 같다며 방방 뛰는 아이에게서

위로받고 늦은 저녁 요기를 하기 위해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올랐다.


  




밴드가 연주를 하고 거의 헐벗은 외국인들이 흡연을 하며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고, 그나마도 큰 리조트 위주로 가족들과 단체 여행경험만 몇 번 있는 나는

이 풍경이 참 설레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아이만 아니었어도 조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일 텐데

시끄러운 음악과 눈앞의 장면들에 마음이 자꾸 어지러워져서 나는 또 아이의 기분을 살핀다.


"엄마!!! 여기 진짜 신난다. 진짜 외국에 온 거 같아~ 한국 사람은 우리 밖에 없어!"


하하하. 걱정 많은 나와 달리 그저 해맑게 즐기고 있는 딸아이에게 고맙기도 하고

내심 부럽기도 한순간이었다.


저 멀리 밤바다에는 리브어보드 배들의 조명들이 예쁘게 빛나고 있고

한국말이라곤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는 그렇게 평생소원이던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루종일 공항 대기에 비행에 제 몫의 배낭을 메고 나를 따라다닌 아이는 곤히 잠들지만

내일은 없는 사람들처럼 떠들고 마시는 젊은이들 덕분에 나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담배연기에 온몸에 담배냄새가 베이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배는 잘 탈 수 있을까.. 뭐 한다고 아이랑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걸까,

온 갓 걱정들에 잠들지 못하고 밤을 꼬박 지새웠다.


 



다음 날, 새벽부터 투어를 떠나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준비소리에 눈을 떴다.

레스토랑 음식이 꽤나 맛있는 편이라 조식도 바다를 바라보며 먹을까 했지만

흡연가 무리들과 아침까지 함께 먹고 싶지 않아 아이랑 걸어서 라부안바조 항구로 나가보기로 한다.

아침 8시 이른 시간임에도 적도를 가로지르는 이곳은 정말 정수리에서 요리도 가능하겠군 싶게 해가 뜨거웠다. 밤에 도착해서 힘든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더니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아침의 청량함에 기분이 좀 나아져서 마치 이곳에 살 고 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마을을 산책해 본다.


아이와 함께 재잘재잘 떠들며 산책하다 현지인과 눈이 마주치면 씨익 하고 웃어 보이며

슬라맛빠기- 하고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그래 이게 바로 여행이지! 하고 어제랑 다르게 설레는 마음으로 마을을 걸어

이 작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지만,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동네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자리 잡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탈 배의 선착장 위치를 확인하고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섬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물과 음료를 살 마트 위치까지 확인한 뒤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비록 구글맵으로 도보 가능한지만 확인하고 예약한 숙소라 예상치 못하게

마주한 아주 가파른 경사로만 빼면 말이다.


아이에게 캐리어를 쥐어줄 수 없어서 나는 이 롤러코스터 같은 내리막 길을 캐리어에 끌려가다시피 하고 내려왔다. 여자 혼자 배낭에 양손 캐리어에 아이까지!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횡단보도 앞에서 누군가 도와줄까? 하는 제스처를 내보였지만,

소심한 나는 혹시나 가방에 손을 대고 팁을 요구한다던지 하는 일을 겪을 까봐 나도 모르게 놉! 을 외치고 혼자 양손으로 캐리어를 들고 나르는 괴력까지 선보였다.

내가 이렇게 힘이 셌던가, 남편이 본다면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가벼운 장바구니 하나조차 못 들게 하며 외조(?) 하는데, 장바구니는 고사하고 30킬로가 넘는 짐을 혼자서 들고 나르고 이고 지고 아이까지 챙겨가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하다고 했을까, 사서 고생이다 하고 혀를 내둘렀을까, 알 순 없지만.

나 스스로는 굉장히 뿌듯했다. 그럼 된 거지 뭐.


세라야 섬에 있는 리조트로 가기 위해 리조트에서 보내준 보트를 1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상하다 10시 50분이 되어도 배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하며 두리번거려도 배가 보이지 않아서 용기를 내 항구직원 인 듯한 사람에게

우리의 목적지를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돌아온 답변.


"여기 아니야~ 저~~~ 기 저기 보이지? 저~~~ 기!! 11시라고? 얼른 뛰어!"


완벽한 아침이었지, 이렇게 울퉁불퉁 캐리어 바퀴가 끼일 것 같은 보도 블록을 양손 캐리어로 달리기를 하기 전까지는, 미친 듯이 달려서 선착장 저 멀리 수다말라 세라야 라고 적힌  작은 보트를 향해 한국말로 외쳤다. "저기요!!!! 저희 태워가야 해요!!!!! 저기요!!!"


영어도 아니고 인도네시아어도 아니고 한국말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여자 둘을 본 리조트 직원들이 헐레벌떡 쫓아 나와 가방을 받아 들어주고

아이는 번쩍 들어 안아 배에 태워줬다.


배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으악 너무 힘들었다. 하고 포효를 한 뒤 긴장이 풀어진 나는

널브러졌다는 표현이 알맞게 늘어져서, 딱딱하고 각진 불편한 배 의자였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렸다.


"채채야, 괜찮아? 흐흐흐 우리 정말 재미있다"

"응 엄마 정말 재미있다! "


그렇게 또 재미있는 코모도섬 여행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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