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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Mar 26. 2024

꿈을 이루기 위한 엄마와 딸의 인도네시아 여행

잠 못 이루는 밤

오랫동안 준비했던 여행이 출발 직전으로 다가왔다.

왜 가기로 마음먹었는지, 왜 그곳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했던지라 막상 여행이 다가오니 설레는 마음뒤로 두렵고 무서운 마음도 든다.


영어도 잘 못 하는 내가, 여행 경험도 많지 않은 내가

나 혼자도 아니고 아이랑 같이 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잠이 오질 않는다.

 


탭 한 번으로 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글로벌 한 시대에 살고 있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사진과 글로 친구도 할 수 있는 세상에 남들도 다 잘 가는 여행인데

왜 이렇게 까지 감성적이냐고 묻는다면...





내게 이번 여행은 참 많은 의미가 있다.

고단했던 20대에 녹초가 되어 몸부림이라곤 칠 수 없는 고시원 침대에 누워, 내가 내게 할 수 있던 소박한 위로는, 길 위를 걷는 배낭여행자들의 여행기들을 읽으며

매일매일 꿈에서, 나도 그곳에서 사막을 걷고 에메랄드 빛 바다에 몸을 던지고, 거짓말 같은 풍경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풍미 좋은 버터를 한입 베어 무는 것.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내 삶은 오늘도 내일도 쓰고 텁텁한 나무뿌리를 씹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치열하게 달리는 것 같은데 늘 그 자리에만 있는 것 같은 매일의 반복들에 언젠가 꼭 배낭하나 둘러매고 아프리카 사막에 핀 꽃을 보러 갈 거야.라는 다짐을 했었는데..


오늘의 현실에 치여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는 채로 하루하루 살다가 착한 남편도 만나고 예쁜 딸도 낳고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내 안에 무언가는 늘 욕구불만인 채로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누구도 채워 줄 수 없는 결핍 하나가 나를 자주 우울하게 했다.




어느 날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이게 대체 뭐야? 채채야 이게 뭔지 알아?"

라는 나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대답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엄마, 얘는 아틀라스 나방이야 인도네시아에 산대, 5일 정도밖에 못 살아서 저렇게 무서운 뱀모양으로 위장해서 사는 거야, 멋있지? 나 저 나방을 직접 보는 게 소원이야.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는 공룡의 후손인 코모도 드래곤도 살아 진짜 멋있지? 가보고 싶어"


그때 뭔가 머릿속이 반짝하고 스쳤다.

가자, 인도네시아. 엄마도 그런 게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어.

우리 같이 가서 이뤄보자 그 소원.


그렇게 우리는 인도네시아 여행을 준비한다.

곤충과 파충류가 좋은 어린이의 아틀라스 나방과 코모도 드래곤을 만나는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리고 매일 밤 꿈꾸었던 핑크비치를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글로벌 한 시대에 어쩌면 이런 여행은 누구에게는 별 것 아닌, 누구나 언제든 갈 수 있는 여행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오늘도 버텨내는 삶을 사는 가족들이 있는 내겐, 여행 자체가 도전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여행 전 부모님이랑 통화를 하는데 아빠가 채채에게 말씀하셨다.


"채채야, 비행기 타고 멀리 가는데 기분이 아주 설레고 좋지? 그런데 그렇게 채채가 궁금해하고 보고 싶다고 엄마 아빠가, 비행기 타고 멀리 외국까지 데려가는 건

채채 엄마아빠가 돈이 아주 많아서도 아니고, 채채에게 잘난 척을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채채가 세상에 궁금해하는 것들을 책에서 보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하나라도 직접 보여주고

그걸 보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많은 과정들,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몸소 배우라고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채채도 가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보고 경험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하루를 보내야 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방법으로 세상을 배우는 어린이가 김채채라는 걸 잊으면 안 돼~ 건강하게 잘 다녀와!"라고..


스피커 폰으로 듣는 내내 눈물이 계속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고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아빠의 삶을 살아내느라 힘들 텐데 내 자식 챙기느라 살뜰히 챙기지도 못하는 딸에게 오늘도 큰 가르침을 주는 아빠..

우리 아빠가 일생을 편안한 삶을 살았다면 아마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가끔 생각한다.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게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일으켜준 가족들. 언제나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엄마 아빠와의 추억을 되살려서

포기하려다가 다시 도전하고, 남들은 다 '못한다 고생이다' 한 마디씩 거들 때마다 "언니는 할 수 있어, 왜 못 해!"라고 일으켜준 동생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밤.


사실 아이를 위한 여행..이라고 시작했지만

준비하면서 느낀 건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이구나. 아니 도전이구나.

언젠가 신발 타고 온 세상을 누비고 싶다던 이루지 못 한 젊은 날의 꿈에 한 발자국 내밀게 된 기분이라 몹시 떨리고 설렌다.


비록 뗄래야 뗄 수 없는 아니 하나 달고 다닐 여행메이트 (라고 쓰고 "귀찮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혹이라고 읽어본다.)

덕분에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녀온 뒤에 채채도 나도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23.06.21. 새벽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시인)


엄마와 딸의 3주간의 인도네시아 여행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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