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환상] 투명하고, 미끌미끌한 것 (3)

어른들이 읽는 동화책

by 요세빈


아이라인을 따라 흐른 눈물자국.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 지저분하지 않은데도 건조한 피부탓인가 어딘지 모르게 꾀죄죄한 손. 현관에 대자로 뻗은 몸뚱어리. 축 늘어진 두 다리, 그 다리에 신겨진 스니커즈 두짝. 퇴근길에 흠씬 두들겨 맞고 들어온 사람마냥 아무런 기력도 없이, 등을 바닥에 바짝 붙여놓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다.


알람이 꺼졌고, 이불빨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현관에 시체처럼 누운 수현은 자신이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수현의 현관은 굳게 잠겨있고, 창문은 두꺼운 암막커텐으로 도시의 꺼지지 않는 밤을 꼭꼭 숨겨놓았다.


“빨래.. 이불빨래라... 아우 하기 싫어...


갑자기 벌떡일어나 후다닥 옷을 바닥에 여기저기 벗어제끼고, 샤워실에 들어가 벅벅 씻었다. 스트레스나, 걱정, 고민, 우울감까지 말끔히 지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현은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샤워실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스트레스나 앞날에 대한 걱정, 우울감 이런 것들을 지우고 나면 나도 사라지는 게 아닐까..? 나의 팔할 이상은 모두 그런 감정들인데, 그게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그 자체가 나 자신이 되어버렸는데.. 그걸 다 훌훌 털어버리면 나에겐 뭐가 남는 거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지? 생각이 안나...’


“하 아무렴어때.. 별 생각을 다하네.” 혼잣말을 하는 수현. 수현은 어깨를 자신의 두 팔로 힘껏 붙들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머리가 많이 자라서, 젖은 이마에 축 늘어져 있다. 손으로 얼굴을 쓰윽 문지르며, 무심코 손바닥을 쳐다보는 수현.


“헉.”


새끼 손가락에서부터 가운데손가락 두번째 마디까지 반투명 색이 되어, 아주 미세한 혈관들이 반쯤 투명한 손가락에 나뭇잎 줄기처럼 뻗어나가 손가락 곳곳에 하얗게 그물처럼 얼기설기 보이고 있다. 그 혈관들의 피는 어찌된 일인지 붉은 색이 아니라, 반짝이는 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너무 놀라 그대로 멈췄다. 샤워실 희미한 불빛탓인가, 황급히 물을 끄고 손을 수건으로 감싸고 거울 앞 세면대에서 천천히 손을 다시 꺼내보았다.


손은 원래대로 였다. 투명하긴 커녕, 마른 장작개비 같이 건조한 그 거칠은 느낌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잠을 못자서 그런가..” 수현은 다시 느릿느릿 몸에 있는 물기를 닦고, 아까보다 더 의욕없는 표정으로 바닥 어딘가에 널부러져있던 파자마를 대충 둘러입고, 빨래건조대에 걸린 팬티를 느릿느릿 주워입는다. 그리고는 소파에 몸을 구겨넣고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한다.


우웅-

휴대폰의 진동이 울린다.


“수현씨, 왜 전화 안받았어! 3차 수정안 벌써 넘어왔어. 그거 받아서 다시 넘겨줘야 되는데, 지금 봐줄수 있어? 내일 걔네 아침에 회의를 들어간다고 갑자기 연락이 와가지고.”


“...”


“수현씨, 내말 듣고 있어?”


“네... 어.. 근데 지금 집에 도착해서 제가 파일을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라..”


“웹하드에 올려놓았어. 지금 살짝 봐주고, 내일 아침 9시 전까지만 보내주면 되는데, 내가 잠깐 봤는데 로고 부분만 수정하면 되는 거 같더라구. 어떻게 안될까?”


“...네,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여.”


“아, 드럽게 끈질기네. 진짜... 적어도 내가 죽으면 이진욱 팀장은 알겠네. 참내.. 일시킬라구 전화했다가 안받으면 혹시 아나..? 집까지 쫓아올 수도?” 또다시 혼잣말을 내뱉으며 이메일과 웹하드를 확인한다.


“오케이.. 별거 아니네. 빨랑하고 문자나 남겨야겠다.” 어둑어둑한 형광등 사이사이, 날파리가 날아다닌다. 수현은 집중한듯 입을 삐죽거리며, 허리를 둥글게 말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정을 마치고, 알림 문자를 보냈다. 새벽 2시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오늘따라 치렁치렁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 많이 자랐네. 어, 심지어 윤기 나는데? 참내. 영양이 다 머리로 가나. 피곤해 죽겠구만, 머리로 다 에너지가 가나 부다.. 어우 피곤해.. 어우 삭신이.. 으으~”


기지개를 피고, 소파옆 간이 매트에 누워 이불을 둘둘 말고 잠을 자기로 했다. 방에 침대까지 가기가 너무 귀찮았다. 랩탑이랑 휴대폰은 거실 머리맡에 그대로 놓여져 있다. 눈을 감은 수현의 이마위로 머리카락이 은빛 가루 처럼 반짝인다. 머리가 점점 자라서 거실은 온통 은빛 가루가 아른 거린다.


놀란 수현이 잠에서 깬다. 부재중 전화 23통.


“오우 쉣.”


오전 11시 3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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