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초보 사진가

by 김형범

뒹굴뒹굴, 빈둥빈둥, 뭉그적뭉그적.

게으름을 나타내는 또 다른 좋은 말들이 더 없나? 나이를 먹으면서 어휘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적절한 낱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새벽에 수영강습을 다녀와서 아침밥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사실 나는 한 삼십여 년 전에 수영을 다 배웠었다. 집에는 오리발도 있었다.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던 어느 날, 문득 수영이 하고 싶어서 자유 수영을 하러 갔는데 통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열심히 팔을 휘젓고, 발을 힘껏 차 보아도 제자리다. 그래서, 자세를 고칠 요량으로 수영강습 기초반에 등록했다.

“훗, 내가 소싯적에 수영을 마스터했었는데, 내 실력을 한번 볼 테야?”

그런데, 기초반에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수영강습 초급반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을 소위 수영장 고인 물이라고 한다. 상급반으로 가면 선수처럼 수영하는 회원들에게 기죽을까 상급반으로 가지 않고, 평생을 기초반에서 머물면서 똥폼잡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이실직고(以實直告)하자면, 수영강습 기초반에 등록하려고 마음먹었던 나도 그럴 양으로 기초반에 등록했다. 그런데, 막상 강습이 시작되고 나는 기가 죽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호흡도 가쁘다.


8월도 거의 다 지나가는데 날은 아직도 덥다. 내가 생각하기에 침대 위는 더 더운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있을 곳은 안방 침대뿐이다. 거실은 마나님이 차지하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거실로 나가보지만 걸리적거리지 말고 들어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럴 때 에어컨이라도 틀어주면 좋으련만 마나님은 자신이 더위와 싸워 이기고 있음을 과시한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오후가 되었다.


“노을 사진이나 찍으러 가야겠다.”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집을 나서 뚝섬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내 눈앞에 거대한 토목공사의 위대함이 펼쳐졌다.

“우와, 정말 멋진걸. 나와보길 잘했네”

강변북로에서 청담대교로 진입하는 도로가 마치 예술품처럼 보였다. 빠르게 카메라를 꺼내 들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댔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는데, 청담대교 밑으로 지하철 7호선이 지나간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되다니, 내가 바로 서울 촌놈이었네.


DSC_0069.JPG 청담대교 북단 진입램프 / 니콘카메라 Z5-Ⅱ, 초점거리 28.5㎜, 노출시간 1/125초, f/8.0, ISO 3200


해 지는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방해받지 않고 노을 사진을 찍으려고 남산이 잘 보이는 곳으로 한참을 걸어갔지만, 멋진 노을 사진을 찍는 데 실패했다. 다음에 다시 또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뚝섬으로 향해 가는 도중에 옹벽에 바짝 붙어 피어있는 능소화를 발견했다.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셔터를 눌렀는데 그만 노출이 부족했는지 너무 어둡게 찍히고 말았다.


DSC_0063.JPG 뚝섬한강공원 능소화 / 니콘카메라 Z5-Ⅱ, 초점거리 62㎜, 노출시간 1/125초, f/6.0, ISO 3200


청담대교 다리 아래에는 젊은 친구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끼어 더위를 식히며 해지기를 기다렸다. 야경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저 멀리 롯데타워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저 롯데타워의 야경을 멋지게 찍을 테다.”하고 혼자 또 중얼거렸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롯데타워의 불빛은 희미하기만 하다. 불빛이 화려해지기를 한참을 기다렸다. 어느덧 한밤중이 되었다. 하늘은 새까매지고 롯데타워의 불빛이 아까보다는 화려해졌다. 때마침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 주었다. 행운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DSC_0091.JPG 뚝섬한강공원 / 니콘카메라 Z5-Ⅱ, 초점거리 135㎜, 노출시간 1/125초, f/6.3, ISO 20000


“음, 잘 찍었네. 사진 선생님께 보여주면 칭찬받겠어. 잘했어.”

그러나, 이 사진을 본 사진 선생님은 “잘못 찍었어요. 이건 망한 사진이에요. 야경 사진은 노출시간을 길게 해서, 차알 ~ 칵 찍어야 하고, 하늘이 깜깜하면 안 돼요. 짙은 남색이어야 해요. 그래서 소위 골든아워인 해진 후 30분 이내에, 삼각대에 카메라 올려놓고 찍는 겁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실망, 실망, 또, 실망. 사진 선생님께서 찬사에 찬사를 거듭하실 줄 알았는데. “에구, 이게 뭐람.”


아직도 날이 덥다. 습도도 높아서 몸이 끈적거린다. 기분도 꿀꿀하다.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고, 침대에서 뒹굴어야겠다. “마나님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