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카메라는 필수적인 도구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왜 찍었는지에 대한 사진가의 의도가 없다면, 그 사진은 과연 가치가 있을까? 나는 아직 흥미로운 피사체를 발견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내가 발견한 피사체로 무엇을 나타낼지조차 모르면서 도구인 카메라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었다.
은퇴하고 돈을 물 쓰듯 하고 나니, 돌아온 것은 경제권 박탈이었다. 마나님께서는 나에게 딱 한 장의 신용카드만 남겨 놓고 모든 은행 계좌의 접근권을 빼앗아 버렸다. 하루를 ‘그냥’ 보내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기가 막힌 취미 활동이 필요했다.
“그렇지! 나에게는 DSLR 카메라가 있었지. 그래! 사진을 찍는 거야. 사진이야말로 정말 고상한 취미가 아니던가.”
나는 그렇게 유레카를 외쳤다.
십수 년 전, 아내는 나에게 DSLR 카메라를 하나 사주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하나의 카메라로 촬영할 수 있었던 최초의 카메라였기에, 나는 내 카메라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자부심으로, 으스대고 다녔다. 하지만, 새롭게 등록을 마친 사진 강좌에선 내 카메라는 고물에 지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그 잘난 척하던 어깨를 움추릴 수 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내 카메라에 관심을 보일까 두려웠다.
사진 강좌에서 청와대로 2025년 첫 출사를 나갔다. 나는 종로 1가에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 효자동에서 내렸다. 길을 걷다 보니 왼쪽에 무궁화동산이 있었고, 맞은편 길 건너에는 사랑채가 있었다. 잠시 둘러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카메라를 꺼내 무궁화동산 입구와 사랑채의 외관을 찍어 보았다. 사진 촬영 기초반에서 배운 대로 카메라 촬영 모드를 M으로 맞추고, 내가 찍으려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니, 적정 노출값이 뷰파인더 하단부에 나타났다. 노출이 부족하면 우선 조리개를 열어주었고, 그래도 여전히 노출이 부족하면 셔터 속도를 늦춰 주었다.
“찰칵”
셔터가 들려주는 소리가 경쾌하다.
“음. 이 맛이지.”
영빈관 정문을 지나 계속해서 청와대 정문으로 향했다. ‘청와대로’라고 불리는 도로는 도심 속 산책길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조용히 뽐내고 있었기에 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찰칵” “찰칵” “찰칵”
사진 강습반 지인들과 청와대 정문에서 만나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우선 청와대 본관을 바라보면서 왼쪽에 있는 작은 포장된 길로 들어섰다. 길 양쪽에는 제법 멋지게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멋진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영빈관을 찍고 돌아 나와,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청와대, 국민 품으로”라는 슬로건을 몇 장 찍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은 글자를 절대로 찍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소풍 온 사람처럼 마구 찍어댔다, 그런데, 카메라가 이상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카메라가 망가졌다. 셔터를 누르고 LCD 스크린을 살펴보니, 사진이 안 찍혔다. 급하게 사진 선생님을 찾았다.
“아마, 셔터 모터가 망가진 것 같아요. 수리점에 가보셔야겠어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어야 했다. 다른 지인들과도 떨어져 고개 숙이고 걸었다. 나의 어깨는 천근만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없이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부랴부랴 카메라 AS 센터에 수리를 맡겼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새 카메라를 정말 사고 싶었다. 그러나, 카메라를 사려면 마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카드가 있잖아. 그냥 질러버려. 막아주겠지.”
사진 강습반의 지인(知人)들이 악마처럼 속삭였다.
“원래 당신 돈이잖아. 사버려. 어떻게 되겠지.”
좀처럼 마나님께서 허락하지 않고 있던 어느 날,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은 훌륭한 카메라가 새로 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카메라가 사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마나님께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카메라 새로 사주세요.”
마나님께서 대답했다.
“안돼! 있는 거 써. 지난번에 수리했잖아”
“사주세요.”
“안~돼!”
며칠을 고민하다 아들에게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아드~을! 아빠가 카메라 바꾸려 하는데 돈 좀 보태줄 수 있어?”
“웅.”
“얼마나 보탤 줄 수 있을까?
”한 이백만 원.“
”에구, 이뻐라. 키운 보람이 있네.“
마나님께 얼마쯤 내 비상금을 내주고, 아들이 보태준다니 나머지 부족한 돈 채워서 사달라고 졸라댔다. 마나님이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렇게 나는 새 카메라를 장만했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슨 사진을 찍으려고 하지?”
카메라라는 도구에만 집착하던 나는 문득 나의 사진 정체성을 묻기 시작했다.
“나는 정녕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