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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혁 Jan 03. 2021

바닥 대신 바다로 향하다

[위로여행 0장] 여정의 시작


"통영 앞바다에서 거대 괴생물 사체 발견"



'통영'이란 앵커 멘트에 본능적으로 나의 시선이 TV 화면에 꽂혔다. 전문가들은 북극에서 해류를 타고 온 바다코끼리이거나 고래일 거라고 했다. 



몇 해 전의 뉴스였는데도 내 기억의 바다에는 그 후로 오래도록 그 괴생물이 떠다녔다. 어쩌면 그게 내 모습일지도 몰라 자꾸만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극지 같은 한기가 몰아치는 서울을 헤매다 쓸쓸히 고향으로 흘러온 망자.  



열망했지만 절망했고, 사랑했지만 아득했던 어느 날, 나는 흐느적거리며 발뒤축을 끌고 내가 다니던 대학 건물 옥상에 섰었다. 서울 야경이 그득한 밤은 무기력으로 단단히 굳어 내 어깨에 매달렸다. 짓눌린 무게감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아래로, 나의 현재처럼 저 바닥으로 던져질 것 같았다.



우울

에 맞서는 것은 허망해 보였다. 10년이 넘게 달라붙어 나에게 족쇄를 채우는 악귀.

나는 결국 이대로 추락하거나 가라앉거나 목 졸리고 말 것만 같았다.

완패. 그렇게 내 삶은 끝나는 것이다.

끝. 

사라지는 것. 아무렇게도 존재하지 않는 것. ‘나’라는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것.



하지만 

검은 하늘 아래에 켜진 잔별 틈으로 간신히

나를 

깨우며 생각했다.



‘그건... 너무 재미없겠는데?’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길 없는 눈 위로 내딛는 뿌듯한 발자국 소리도 더는 듣지 못하고

어느 해 질 녘 우연히 시선 머문 하늘에서 발견하는 색감들도 더는 보지 못하고

분노의 뉴스들 속에 이따금 들려오는 뭉클한 인간사도 더는 느끼지 못하고

내 오랜 벗들의 눈가에 주름으로 엮어온 이야기 술 한 잔 안주거리도 결국 만나지 못하겠군.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찌그러지고 터덜거리는 동안 영근 삶의 소리들을 담아 차곡차곡 작곡해온 노래들이 있다. 인생의 코드를 당장 뽑아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녹음기에 남겨진 나의 불쌍한 언어들. 

나의 멜로디와 리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끝’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나를 끝장내고 싶어 하는 우울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자그마한 나는 거인 같은 우울의 적수가 못된다. 

결국, 나는 우울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우울에게 말을 걸고 우울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울이 흘리는 슬픔의 호수 위에 비친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울과의 행복한 교류를 위해 나는 여행을 택했다. 지금 살고 있는 엉망구 진창동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향한 곳은

통영

나의 고향 바다

내게 가장 아름다운 스무 해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

섬들이 쉼표처럼 떠있고

예술이 그물 가득 퍼덕거리는

절망의 반대방향, 통영으로 가는 차표를 샀다.



좌절의 심연에 잠긴 나를 끌어올릴 밧줄을 유년의 골목에서, 예인들의 문장에서, 느긋한 산 능선에 이어지는 해변의 곡선에서 찾기를 원했다. 

그렇게 마치 여행자처럼 다녀온 나의 요람, 통영의 이야기를 길벗에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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