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환경해설여행> #1 영주산 투어 후기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영주산 오름은 제주 창조 설화에 등장하는 5대 명산(한라산, 산방산, 성산, 두럭산, 영주산) 중의 하나이다.
내가 처음 영주산에 방문했던 건 작년 가을이었다.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하는 사진 클래스에 참가했었는데, 강사님이 실습수업을 위해 사진 명소로 선택한 출사지가 영주산이었다. 그때 보았던 매력적인 풍광이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있다.
영주산은 40분 정도만 걸으면 높이 176미터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고, ‘산’이라고 이름 붙었다 해서 등산스틱을 준비했다가는 짐만 되는 쉬운 탐방로를 가졌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쌩쌩하게 오를 수 있다.
나는 환경여행단체 ‘초록길벗’을 만들어 매달 제주의 한 지역을 정해 환경 해설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 중인데, 지난 5월은 영주산에서만 4차에 걸쳐 진행했다. 영주산 자체의 아름다움도 가득할 뿐만 아니라 제주 동쪽 경치를 조망하기에 최적인 오름이라서 이곳을 선택했다.
지난달 28일, 영주산 입구에 모인 여행 참여자 분들과 함께 ‘제주환경해설여행’ 영주산 투어를 시작했다. 잔뜩 흐린 날이었고 낮게 깔린 안개 덕분에 신령스런 분위기가 흘렀다. 영주산은 예부터 영험한 산으로 여겨졌는데, 조선시대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주산이 신선산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는 기록이 있다.
오름 초입에는 엉겅퀴들이 보라색 향기를 피우고 있었다. 시들어버린 찔레꽃 주변을 벌 한 마리가 아쉬운 듯 맴돌았다. 영주산에서의 첫 번째 해설로 나는 벌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는 꿀벌군집붕괴현상을 설명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4월 기준 폐사한 꿀벌이 무려 140억 마리 이상으로 추산된다는 한국양봉협회 자료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꿀벌 대량 실종의 주요 원인으로 왜 기후위기가 지목되는지 밝히며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되기에 꿀벌의 생존은 곧 인간의 생존임을 상기시켰다.
꽃놀이에만 취하기 힘들어지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발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영주산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이다. 텔레토비 동산을 연상시키는 언덕인데, 숨이 차오를 때마다 살짝살짝 뒤돌아보면 근사한 주변 정경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런데, 산등성이 도처에 개민들레(서양금혼초)가 계속 보여 씁쓸했다. 개민들레는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교란 생물임을 여행자 분들에게 알려드렸다. 1980년대에 유럽으로부터 목초 종자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걸로 추정되는데 강한 번식력 때문에 다른 식물들의 생육을 방해하고 있다. 한 개체가 1년에 2000여개 이상의 씨앗을 뿌린다니, 노란 개민들레의 미모에 반해 방치했다가는 지역 생태계가 잠식당하고 말 것이다.
자연이 선사한 보물 같은 풍경
경사 때문에 굽혔던 허리가 펴지고, 평탄한 초지에 도착했다. 너 나 없이 자동으로 뒤돌아 경관을 감상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날은 아쉽게도 안개가 자욱해 탁 트인 제주를 조망할 순 없었다. 우리는 동쪽으로 저 멀리에 보여야하는 성산일출봉을 상상하며 산행을 이어갔다.
청명한 날에는 영주산 주변 여기저기에 풍력발전기(제주어로 표현하면 ‘보롬도래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주섬 전체를 날아오르게 하는 장치인양 빙글빙글 돌면서 청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화석연료의 시대를 넘어 친환경 에너지의 시대로 전환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말을 전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얼마 못 가 우리 일행은 소떼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영주산 출발 지점부터 나는 탐방객 분들에게 오름길에서 소똥을 주의하시라고 당부 드렸었다. 영주산은 소 방목지이다. 그래서 소똥 피하기가 여행 속의 작은 미션처럼 주어져있다.
소똥을 소재 삼아 소똥구리 이야기를 드렸다. 우리나라에서 소똥구리는 1970년대 이후 발견되지 않아 환경부는 절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과거에는 흔한 곤충이었지만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소가 먹게 되거나 목초지에 화학성분인 농약을 뿌리는 등 소똥구리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소똥구리 덕분에 가축 분변이 빠르게 분해되는 것이기에 영주산 등반길 위의 지뢰 같은 소똥들을 보며 소똥구리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소에게는 미안하지만 소들이 우리 일행들을 끔뻑이며 바라보는 가운데 소가 내뿜는 온실가스인 메탄에 대해서도 알렸다. 전 세계에 사육 중인 10억 마리의 소들이 발생시키고 있는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20배 이상 높은 온실효과를 야기한다. 그렇기에 고기 위주의 음식문화를 탈피하는 것이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하나의 방법임을 이야기했다.
제주 알프스라 불리며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는 소들의 식탁을 지나 우리는 영주산 꼭대기로 향하는 일명 ‘천국의 계단’에 들어섰다. 계단이 하늘 위에 놓여 있는 듯해서 그렇게 칭한다. 여름에 본색을 드러내는 파란 산수국이 계단 양옆으로 서둘러 돋아나는 건 기후변화 때문이 아닌가 걱정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드디어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제주 동부의 오름들을 관망하기 최적인 영주산 뷰포인트에 서서 오름에 담긴 사연들을 풀어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물영아리 오름을 소개하며 습지가 중요한 이유를 전했고, 또 다른 람사르 습지인 물장오리 오름을 언급하며 제주를 창조했다는 설문대할망이 물장오리가 너무 깊어 빠져 죽었다는 설화도 들려주었다.
야트막한 산을 나들이하는 봄 소풍 느낌의 프로그램이었기에 영주산을 내려오면서는 소풍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보물찾기를 했다. 환경여행이니 만큼 생태보물찾기로 기획했는데, 미리 숨겨둔 멸종위기생물 카드를 각자 찾아오는 게임이었다.
성인 참여자들은 유치하게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어 우려했지만 오히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어린이처럼 신나하며 카드를 찾아다니셨다. 참가자들이 열심히 발견해 온 카드를 같이 확인하며 멸종위기종인 긴꼬리딱새, 제주고사리삼, 팔색조, 물방개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여행에 환경을 더하다
이번 여행에 함께 한 참여자들은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재미있는데, 맑은 날에는 정말 최고겠다’, ‘왜 제주 5대 명산인지 알 것 같다’라며 영주산 재방문 의지를 내비쳤다. 이분들에게 제주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난 5월 25일 방영된 제주MBC TV <공감토크 소통의 고수>에 출연했다. 환경문제를 주제로 하는 노래를 발표한 뮤지션이자 제주에서 환경여행단체 ‘초록길벗’을 만들어 제주환경을 해설하는 활동가로서 환경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였다.
녹화 시간이 짧아서 미처 깊은 말들을 다하진 못했는데, 환경 활동은 ‘우리 시대의 기본값’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여행자로 태어난 우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우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오늘날이다. 그래서 우리가 환경 재난으로부터 삶을 온전히 지키려면 모든 일상의 우선순위는 친환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당신의 인생 여행에 환경이 더해지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 덧붙이는 글
- 자연과 사람이 함께 웃는 세상을 향한 ‘초록길벗’의 환경여행 소식은 초록길벗 홈페이지 https://greencompanion.modoo.at 를 통해 알 수 있다.
- 제주MBC TV <공감토크 소통의 고수> 14회 - 나의 친애하는 자연에게 (방송 보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