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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혁 Jan 12. 2021

통영 시간 여행

[위로여행 2장-②] 봉래극장/통영성 남문/유치환 시인과 우체국

통영 최초의 사진관경남 최초의 극장 

 


세병로에는 1990년대까지 3개의 학교와 법원, 세무서 등의 관공서가 밀집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통제영지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원도심이라 할 수 있는 세병로 주변의 건물들도 하나둘 사라지는 중이다. 



지역의 원형을 되찾는 일은 환영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쉽게 없어진 건물을 떠올리면 서글프다. 통영 최초의 사진관으로 기록되어 있는 제등사진관 건물도 그 중 하나이다. 충무교회 바로 앞에 자리했던 제등(齊藤, 사이토)사진관 건물은 1927년에 지어졌다. 



제등사진관 (교회 앞 건물). 사진_통영인뉴스

목포, 군산 등 이 땅의 항구도시가 그러했듯이 통영에도 일제시대에 다수의 일본인들이 유입되면서 근대적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생겨났다. 통영 지역에 답사를 왔던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2012년 철거되기 전의 제등사진관 건물을 보고 1920~30년대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매우 높은 건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가장 애석한 이별을 했던 건물은 통영사람이면 누구나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던 봉래극장이다. 봉래극장은 1914년에 지어진 극장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알려진 서울의 단성사(1907년 건립) 다음가는 역사를 갖고 있다. 옛 이름은 봉래좌. 일제시대 때는 한국 연극의 기둥을 세웠던 통영 출신의 극작가 유치진의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연극, 악극들이 공연되었고, 3·1만세운동 때부터 각종 집회의 현장이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유치환의 시극이나 윤이상의 음악 등도 무대에 올랐다. 한국전쟁 때는 억울하게 학살당한 수백 명의 통영민들이 처형지로 끌려가기 전에 격리되어 마지막 시간을 보내야 했던 어둠의 상처도 갖고 있다. 이후 영화관으로 활용되며 시민들의 오락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통영지역문화사에 허브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극장의 역사 자체가 한편의 영화다. 하지만, 2005년의 도심정비사업 과정에서 아스라이 사라지게 되었다.



봉래극장의 초창기 모습

충무교회 아래쪽 갈림길에서 통영중앙시장으로 가는 소로의 왼편 큰 주차장(제일약국 옆)이 봉래극장이 91년 동안 살던 터였다. 공간의 죽음은 그 곳에 얽힌 시간들과의 단절이다. 일제가 통제영지를 헐어 조선과의 연결고리를 지우려 했던 것에서 보이듯 공간의 상실은 기억의 소멸을 불러온다. 그래서 되새겨야할 이야기들이 멀티플렉스처럼 쌓인 봉래극장을 통영문화박물관 같은 것으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2016년에 통영시의회가 ‘통영시 근대 건조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게 되어 개발로 인해 철거당해가던 통영의 많은 근대 건축물을 보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



통영성 남문나 여기 있어요

 


세병로 통제영거리 복원의 하이라이트인 통영성 남문 터에 왔다. 동쪽으로 저편 길 건너에 통영중앙시장이 보이고, 아래로 몇 걸음 더 가면 통영우체국이 있는 교점이다. 느린 우체통에서 버려진 편지를 꺼내듯 통영성 남문의 흔적을 한참 발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통제영지를 둘러싼 통영성은 숙종 4년(1678)에 축성된 둘레 약 3㎞, 높이 약 4m(15尺) 규모의 장대한 성곽이었다. 누각인 청남루(淸南樓)가 있던 통영성 남문은 통제영의 정문으로 서울의 숭례문(남대문)과 같은 격이었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년) 통제영의 폐영과 함께 통영성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남문을 비롯해 동문인 신흥문, 서문인 금숙문, 북문인 의두문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파괴되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부순 것도 많았고 주민들이 살아가기 위해 통영성 성벽을 집 짓는 데 축대 등으로 사용하면서 훼손한 경우도 있었다.



통영성 남문










통영성 남문 터 발굴 현장. 사진_통영인뉴스











통영에서 쭉 자라온 나였지만 통영이 성곽도시였다는 것을 나의 생활 속에서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성곽이라고 제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토사를 최근 공부하면서 내가 어릴 적 노닐던 골목 군데군데 이질적인 색감의 돌들이 실은 통영성의 석재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냥 집 담장의 일부이겠거니 생각했던 그 통영성이 늘 거기에 잃어버린 채 흩어져 있었다. 



통영성 남문과 성곽의 복원은 통제영 전체의 건축 시퀀스를 살린다는 면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건축 시퀀스란 공간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선조들은 건축을 생각할 때 언제나 지형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통제영도 마찬가지이다. 통제영의 시퀀스는 바다에서부터 시작한다. 섬들이 요새처럼 진을 치고 있는 통영 앞바다는 통제영 건축의 출발점이다. 그 배경 위에 통제영지로 들어오는 입구인 강구안에 병선들이 계류하는 선소를 두어 앞마당처럼 꾸몄다. 앞마당을 통해 영지에 접안하면 군사들이 포진한 통제영의 대문을 만나게 된다. 약간의 오르막에 있는 그 위엄 있는 대문이 2층으로 지어진 통영성 남문이고 군사기지 통제영의 담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통영성이다. 군기 서린 남문을 통해 들어서면 박석이 깔린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점점 숨이 차기 시작하고 시선은 고개를 들어 우러러봐야 한다. 그러면 당도하는 곳이 망일루이고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 지과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조선 왕의 궐패가 있고 삼도수군의 통제사가 호령하는 세병관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의 구조는 권력관계를 나타내는데 세병관이 통영 전체에서 가장 상위에 자리하여 군영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병선을 타고 오는 이들이 통제영지의 각 단계에 진입할 때마다 삼도수군통제사의 권위를 느낄 수 있게끔 이렇게 당초에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통영성의 성문과 성곽이 전괴되면서 이 연결성이 흐려져 버렸다. 그래서 이들의 복원을 통해 건축 전체의 서사를 이어 완전성을 회복해야 한다. 곳곳에 팽개쳐진 사연 있는 통영성의 돌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청마문학관의 유치환 흉상



청마의 연애편지와 뮤즈



남문지를 지나 아래로 몇 걸음 옮기면 연인에게 보내는 시로 애송되는 유치환의 <행복> 시비가 놓인 통영중앙우체국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유치환의 '행복' 시비가 놓인 통영중앙우체국

청마 유치환이 사모하던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편지를 부치던 우체국이다. 시간을 거슬러가 우체국 창문 앞에서 연서를 쓰고 있는 청마의 옆자리에 앉아본다. 앳된 체전부가 등에 봉서 뭉치를 짊어지고 바삐 배송지로 떠난다. 청마는 우체국 건너편 수예점을 자꾸만 기웃거린다. 아득한 지척에서 번져오는 진홍빛 양귀비 향내를 껴안고 있다. 



유치환이 심장을 여러 바퀴 칭칭 동여매어 연문을 부치던 당시에 우체국 바로 앞 골목, 오늘날은 한의원 간판이 붙은 자리에는 이영도의 언니가 운영하고 그녀가 자주 들르던 수예점이 있었다. 청마로 하여금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을 쓸 수 있게 한 이영도는 유치환의 뮤즈라고 할 수 있겠다. 앳된 체전부가 이제는 지팡이를 두드리는 시간이 흘렀고, 수예점이 있던 자리에 ‘뮤즈’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나의 스무 살 무렵 생겼다.



(위로여행 2장-③ <이문당 서점을 추모하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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