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이겨도 진 것이다

by 똥굴이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몸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음료가 많이 나가고, 날이 조금만 풀리기 시작하면 손님들의 주문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스 음료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자주 생기는 재미있는 상황이 하나 있습니다.


손님이 이렇게 주문하는 경우입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주세요.”


처음 들으면 잠깐 멈칫하게 됩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 따뜻하게 달라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카페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습니다. 어떤 손님에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냥 하나의 단어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늘 아이스만 마시던 분들이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갑자기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면서도 무심코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한 번 더 확인합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맞으실까요?”


손님은 보통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맞아요.”


혹은 휴대폰을 보면서 고개만 끄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확인을 하고 음료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막상 음료를 내보내면 이런 말이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어? 저 따뜻한 거 안 시켰는데요.”


이럴 때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분명히 우리는 확인을 했습니다.

주문도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직원의 실수는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손님, 주문하실 때 따뜻한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더 나가면 이런 말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CCTV 확인해 보시겠어요?”


확인을 해 보면 결국 누가 잘못 말했는지는 분명해질 겁니다.

아마 손님의 말 실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저는 보통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제가 아이스로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그리고 음료를 다시 만들어 드립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따지면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한 가지를 알게 됩니다.


서비스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맞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분으로 가게를 나가느냐라는 것을요.


만약 제가 끝까지 따졌다면,

그날 논리적으로는 제가 이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손님은 아마 다음에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페에서 오래 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손님을 이겨도 결국 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요.


서비스라는 것은 때로는

옳고 그름보다 관계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카페는 결국 사람이 다시 찾아와야 유지되는 공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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