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나라에서 며느리로 살아남기 (1)

결혼 전부터 시작된 시월드 예고편, 그리고 서막

by 빛나는조각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경계 없는 세상 속에서, 내 경계를 존중해 주는 한 남자를 만났다.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이성(異性) 부모와 닮은 사람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폭력적인 부모라 해도, 싫지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 익숙함을 안전함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론대로라면 나는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아버지와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닮지 않은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하나의 복병이 있었다.

그와 함께 따라온 낯선 가족.

60년대생 ○○○.


남자친구의 안전함과 함께 따라온 불안한 그림자.


그녀는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유난히 불편해하던 그녀는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우리 집이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부모가 이혼했으면 너는 어떻게 자랐니?”


서른이 넘도록 이렇게 직설적이고 사나운 질문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순간 내 감정과 생각이 얼어붙었다.

이걸 기분 나빠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때의 감정은 내가 가끔 **‘선을 세게 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겪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트라우마 연구에서 말하는 ‘동결(freeze) 반응’, 몸과 마음이 순간적으로 멈춰 버리는 상태다.

어린 시절 형성된 방어기제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동으로 발동하는, 흔한 트라우마 반응 중 하나다.


이 사건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날의 내가 슬퍼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못했던 탓일까.
마치 내 마음이 “지금이라도 애도하라”는 듯, 그 기억이 빚처럼 나에게 찾아와 감정을 갚아내라 재촉한다.



첫 만남의 무례함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늘 나를 내려다봤다.
말투와 억양, 표정을 종합해 보면 마치 양반집 안주인이 화가 나 종을 부르는 투였다.


“야.”


명절이나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나는 새벽부터 낯선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그녀의 딸은 아침상이 다 차려질 때까지 늘어져라 잠을 잤다.


물론 설거지와 뒷정리도 내 몫이었다.
남편이 설거지만이라도 하려 하면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그녀에게 나는 정말이지 사람이라기보다는 도구에 가까웠다.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기보다 쓰여야 할 존재였으니까.



아이를 낳고 나서도 그녀의 간섭은 계속됐다.

원래는 그녀의 아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도구였다면,

이제는 아이를 위해도 쓰여야 하는 다용도가 되어야 했다.


“이거 전집 CD 순서대로 책을 놔둔 다음에 음성에 맞춰서 애한테 책 펴줘.”
“애들은 다 엄마 책임이야.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 많이 노출해 줘야지.”
“하루에 ○○ 하나씩은 먹여.”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통제들이 이어졌다.
그녀는 늘 ‘아이 걱정’이라는 라벨을 붙인 예쁜 병에
‘통제’라는 독을 가득 담아 건넸다.


나에게 ‘사적인 영역을 무시당하는 경험’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가족 안에서 조차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밖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해 온 일'이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이번 것은 또 다른 얼굴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관계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였다.


나는 ‘아이 걱정’이라는 라벨이 붙은 병을 말없이 삼켜야 했다.
그렇게 수많은 통제를 들이켜자, 내 안에 서서히 독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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