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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Mar 05. 2021

일을 하며 배웠다

2020년. 좌충우돌 하며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은 청소년복합시설인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삶디)에 운영된 프로그램이며 그곳에서는 이름 대신 별칭을 지어서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식당(세가식)은 벼리인 라라와 필라가 운영하는 학교 밖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나이도 학교도 다 다른 친구과 요리와 농사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모여 함께 배우며 장터에 요리로 출점해보기도 하고 팝업을 해보는 등 많은 수행 과제들을 달성해 나갔다. 더불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출처, 음식과 지구의 관계성에 관해 공부했고 배움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힐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세가식도 함께 졸업하고 나서 라라와 필라가 우리를 삶디로 불렀다.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음식 영화 한 편, 성인도 되었으니 술도 한잔하며 인연을 이어가자고 했다. 반가웠다. 우리 모두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인 것을 알고 카페 크리킨디에서 세가식 활동을 하며 배웠던 쿠키를 납품해주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재밌을 것 같고 멋있어 보여 선뜻 하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세가식>으로 활동할 때는 사실 ‘일’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이 없었다. 준비되어 있는 일정대로 하자고 한 일을 하고 가면 상상했던 멋진 내 모습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세가식 크루>에서는 준비된 것이 없었다. 정해진 일정도 없었고 납품을 위해 준비된 레시피도 없었고 우리를 앞에서 이끌어주던 라라와 필라도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았다.

 사실 쿠키를 납품해 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내가 상상했던 건 쿠키를 납품하는 당일 날, 멋있게 진열하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만들자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일을 우리가 오롯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니 버거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납품을 한다는 건 돈을 받는 일. 제대로 해내고 싶어 우리의 활동 철학도 새롭게 만들고 크루를 소개하는 글도 적고 로고도 직접 만들었다. 쿠키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원가계산도 했다. 처음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해야 하는 일들이 쌓이면서 어느새 책임감으로만 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가?’ 의심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멋지게 쿠키를 납품하는 것이지만, ‘해야 하는 일’은 메뉴를 개발하고 원가를 계산하고 홍보를 해야 하는 과정들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결과였고 그 과정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각보다 힘들고 즐겁지가 않았던 거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우리만의 기준이 필요해

삶디가 코로나로 휴관을 하면서 우리의 쿠키 납품은 미뤄졌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삶디가 문을 열었을 때를 대비해 쿠키 말고도 스콘과 다른 디저트 메뉴도 미리 준비해놓기로 했다.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삶디 벼리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어느 정도 맛이 잡힌 상황에서 피드백을 받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아쉬운 점에 휘둘려 최종 레시피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맛있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세가식 크루만의 레시피를 잡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정답은 없어 보였다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브라우니를 만드는데 버터 대신, 두유와 두부를 이용해 레시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과정에 문득 왜 우리가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게 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그동안 농사지으며 자연스럽게 채소요리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아니면 우리가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면서 옷을 리폼하고 비누도 만들고 비건 관련 영화도 봤기 때문에? 그렇다고 꼭 식물성 재료만을 선택해야 하는 건가?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비건이라는 정체성에 머뭇거리며 ‘우리가 왜 비건 요리를 만들어야 해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이런 의문을 품는 게 세가식이 우리의 뿌리임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런 혼란스러움의 이유를 찾느라  이제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하고 지나갔었다.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안 될 줄 알았다.

세가식 활동은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크루 활동은 그렇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각자의 스케줄이 있어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아르바이트에 가야 해서 원가계산을 다 끝내지 못하고 중간에 먼저 가야 했고, 또 누군가는 다른 약속이 있어 테이블 세팅 시뮬레이션을 함께 마치지 못한 채 자리를 떠야 했다. 그런 경우엔 남아있는 사람이 일을  도맡아서 했는데 처음에는 당연하게 배려해주었던 일들도 반복되니 신경이 쓰였다.

자주 만나고 회의도 하다 보니 각자의 성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의견을 내는 사람, 의견을 내기보다 나온 의견에 수긍하는 사람 등 모두가 달랐다. 그 성향들을 다 존중하다 보니 말하는 사람만 말하는 회의가 지속됐다. 그래서 계속 말하는 내 입장에서는 가끔  '이게 과연  성향 차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손해 보는 느낌까지 들었다. 정말 생각을 해도 떠오르는 게 없는 건지 따져 묻고 싶었다.

하루는 꾹꾹 담아두었던 것이 터져 회의 시간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참다가 조용히 연을 끊어버리는 내 인간관계의 모습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회의가 원활하게 진행이 되지 않자 필라가 마음 살펴보는 일을 해보자고 했다. 시작할 때의 첫 마음,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조직에서 내 입으로 ‘나는 이런 상태야’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이 생소했다. 말을 하는 동안 내 감정이 잘 받아들여진다고 느껴지니 눈물이 났다. 속마음을 털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마음 상하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좌충우돌과 부끄러움

5월에 덥석과 함께 쿠키와 스콘을 구워 광주 북구 일곡동에서 열리는 한새봉두레 개굴장에 나갔다. <세가식 크루>로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나간 플리마켓이었다. 첫 시작이라 실수 없이 스스로 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재료가 부족해 라라가 차를 끌고 재료를 사러 나가고, 통밀로 만들어야 할 스콘을 중력분으로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하는 등 좌충우돌이 많았다. 개굴장에 도착해서도 판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라라와 필라가 옆에서 계속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가 라라와 필라의 보호 속에서 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고 여전히 벼리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안 된다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찬물을 얼굴에 끼얹듯 정신이 바짝 들었다. 도움을 안 받고도 우리끼리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첫 순간이다. 집에 오자마자 다음에는 빠뜨리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장터에 나갈 때 챙겨야 할 체크리스트를 적었다. 잘하고 싶었다.


기대와 현실은 다르다

첫 번째 케이터링은 약 1개월을 준비했다. 시간과 날짜를 합치면 고작 해봐야 1주일 정도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3개월을 준비한 줄 알았다. 케이터링을 준비하며 내 삶의 1순위가 세가식 크루였기 때문이다. 맘에 들지 않았다. 대학교 시험 기간인데 여기에 자꾸 신경이 쓰이고 알바를 구하려 할 때도 크루 활동 시간에 겹치지 않도록 구해야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 코로나로 케이터링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준비해야 했다. 삶디가 문을 열지 않아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며 집에서 비건감자샌드위치를 연구했다.

'이거 같이 하고 있는 거 맞나? 서로 개인플레이 하다가 중간 점검할 때나 모여서 공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디가 다시 문을 열고 본격적인 케이터링 준비에 들어가니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커졌다. 레시피도 빨리 잡아야 했다. 할 일은 많은데 완성되는 게 없어 '할 수 있을까?' 어깨에 힘이 빠지던 찰나에 라라가 도와주셨다. 막막했던 레시피 보완을 같이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우리들. 밝고 활력이 넘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우리의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밝게 웃으며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삶디 보자기장에 출점했을 때 손님들이 우리에게 보여줬던 관심과 환대를 케이터링 장소에서도 받을 줄 기대했다.


케이터링 당일, 상상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전혀 다른 현실이었다.  

장터 때와 같이 우리는 열심히 음식을 설명하려 했는데 정작 손님은 빨리 이 음식을 가져가고 싶은 얼굴이었다.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을 억지로 붙잡고 설명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케이터링 시간이 점심시간과 겹쳐 음식이 인기도 없었다. 손님 없이 멀뚱하게 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결국 준비해간 음식 절반 이상이 남았다. 케이터링을 마칠 시간이 다가올 때쯤 난 거의 해탈 지경이었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반면 그동안 필라는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갈 수 있도록 담아두자며 종이봉투를 사 왔다. 착잡한 마음으로 남겨진 음식을 봉투에 담는데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포장해둔다고 음식들을 가져가기는 할까? 남겨져서 버려지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제때 먹지 않고 뒷일로 미루면 어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이지 투명 인간이 되어서 음식을 소중히 잘 먹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너무 쉽게 소비되는 것 같았고 우리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하는 현실이 반갑지 않았다.


원치 않은 상황 속에도 깨닫는 것들이 있다.

돌아오는 길,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어렵게 시간을 비우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몇 개월간 신경을 쓴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화가 났다. 첫 케이터링을 후회했다. 이런 대접을 받을 바에야 앞으론 안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감정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객관적인 사실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케이터링은 파티의 일부일 뿐. 음식도, 우리도,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음식이 너무 쉽게 소비되는 것 같다고 억울해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음식점에서 누가, 얼마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들었는지 생각하며 먹었을까? 자문해보면, 전혀 아니었다. '잘 만든 음식을 먹으려 음식점에 간 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남에게는 당연하게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나도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우리가 시간을 썼다는 사실로도 인정받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우리의 첫 번째 케이터링은 비록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내가 만든 음식의 소중함, 판매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 케이터링의 특성 등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좋든 싫든, 주입식 배움이 아니라 경험하고 깨닫고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라는 게. 이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우리만의 기준이 필요해 2

2차 케이터링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진행되었다. 매번 라라와 필라가 사다 준 식재료를 쓰다가 이번에는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로컬푸드 마트와 한살림이었다.  비교적 더 저렴한 식자재 마트를 생각하고 있어서 의아했지만 왜 한살림과 식자재마트로 가요? 묻지 않았다. 그저  ‘아, 식재료의 출처를 알고 요리한다는 크루 철학 때문이겠거니 하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한다는 건 이익을 남겨야 하는 일이었다. 원가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데 도저히 우리가 원하는 과일까지 로컬푸드 마트나 한살림에서 구매하기에는 과일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길가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구매하게 되었을 때, 장을 보는 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문득 '손님은 우리가 국내산이 아닌 국산을 사용하고, 첨가물이 덜 들어간 재료를 사려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줄까? 음식에 바라는 게 오직 맛뿐이라면 원가를 줄이려 노력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먼저인지, 세가식 크루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는 게 먼저인지 정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린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걸까? 

케이터링 당일날에도 혼란스러움을 계속되었다. 2차 케이터링은 준비한 음식과 크루 소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당일 날, 음식을 세팅하면서 손님이 나에게 '왜 비건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어요?' 질문을 하는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떠오르는 답이 없어 왜 비건으로 케이터링을 했더라? 동물 복지, 기후 위기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말 그 이유에서 한 것이었나?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2차 케이터링을 끝내고 나서도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비건이 우리 크루의 지향성이었나? 아니면 그게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이어서 따라가는 거였나? 나는 어떤 생각으로 활동을 해왔지? 생각해본 답은 ‘비건 케이터링을 제안받았으니까, 세가식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기후 위기나 동물복지에 관해 접해왔으니까, 비건으로 해도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으니까’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이유가 안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왜 비건으로 해요? 왜 한살림과 식자재 마트로 가요? 의문이 들면서 묻지 않고 스스로 납득시키는 게 과연 ‘주체적’일까?  라라와 필라가 제안해주는 기회를 잡았을 뿐, 우린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걸까? 주체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세가식 크루는, 잘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하는 나, 그런 나와 달리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는 두콩, 더 성장할 것이 기대된다며 기회를 잡으려는 야망 있는 주쓰, 하자고 하면 따라오는 덥석, 추진력으로 일이 실행되도록 노력해주는 라라와 필라가 모여 상상을 현실로 이뤄나간다. 그리고 그런 서로의 다름이 역할이 되어 그 원동력으로 즐겁지 않고 어려운 일들도 잘 흘려보내기도 한다. 예를 든다면 로고를 만들 때 밑그림만 계속 고쳐나가는 나와 달리 아이패드를 들고 바로 아이패드를 들고 그린다거나,  ‘아 망했어.’라는 생각이 들 때 ‘이건 재밌는 일이야. 이런 변수도  즐기기로 했잖아.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야’라고 말해주어 굳은 얼굴을 펴고 피식 웃게 된다.

 하지만 2020년을 지나오면서 '하자'는 말의 책임의 무게라던가, 서로의 다름이 맞춰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크루 활동에 쏟아부을 시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그래서 체념하다가도 ‘그래도 같이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꾸역꾸역 고개를 쳐든다. 기어코 하지 못하는 이유 속에서 “하고싶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 낸다.

어쩔 수 없이 예정된 수순이라면 더더욱 해봐야 하지 않을까? 잘하든 못하든 우리는 어떻게든 해왔잖아. 프로가 아닌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생기는 일이 또 얼마나 있을까? 마음을 살펴볼 수 있고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구성체는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한다고 하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주는 곳과 사람들은 또 만날 수 있을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을 낸다.

그래서 말을 꺼내본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것, 우리와 인연이 있고 지향하는 바와 비슷한 곳에서 일 경험을 쌓는 것, 무등산 총유의 집의 한 달 살기를 하는 것, 크루와 같이해보고 싶다고. 같이 해보는 상상을 한다고.


에필로그_관계가 소중한 이유_어느 날 회고

오늘은 이야기가 자꾸 샌 날이었다.

주쓰의 영어 공부 고민, 필라의 영어 이야기, 우리가 깊숙이 대화할 수 있는 이유, 사랑의 관점,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 할 질문들 등 재밌는 이야기 주제가 계속 나왔다. 신기할 정도로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필라가 바로 옆에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지 오늘 오지 않았던 라라가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덥석이랑 단둘이서 밭일을 하면서 장난도 대화도 많이 했다.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었는데 노란 배추꽃이 흩날리고 그 배추를 잡고 있는 필라의 모습이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

집에 와서 더 생각을 해보면 이야기의 한정이 없고 서로서로 잘 알아 같이 요리할 때 호흡이 척척 맞는 것도, 힘들거나 지칠 때 알아차리고 끌어올려 주는 라라와 필라도, 서로 부족한 모습을 채우며 좋은 자극을 받는 것도, 인간적으로도 이 크루가 좋다. 술이 없이도 생각이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인연인 것 같다. 서로를 해치지 않고 더 알아감에 있어서 살짝 감칠맛이 나는 게 좋다. 계속해서 궁금한 게 생기고, ‘왜 그렇게 생각해?’ 하고 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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