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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Mar 10. 2021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입니다.

하루 일기-도시락, 비빔밥 편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누군가 도와주거나 같이 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았던 일들. 하고 싶다고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진 올해. 나의 내력은 부실공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학교를 다니며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도시락 싸서 학교 다니기, 자전거로 등하교하기, 텀블러 들고 다니기. 요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사업 계획서를 쓰는데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못하게 되어 결국엔 남은 건 프로젝트라고 말하기엔 민망한 평범한 것들이 남았다. 그렇다 보니 하기가 싫다기보다 현재 쓰고 있는 정말 사업계획서를 써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내가 마음을 먹고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그저 못해요.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요. 같이 해요'라며 미뤘던 일을 하기로 했다. 꾸준히 요리 연습을 하기로, 도시락을 싸기로, 자전거를 사기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로 다짐했다. 친구와 매일 아침 8시에 줌으로 만나 아침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자고 했다.


오늘이 바로 그 첫날.

밤새 폰을 하다 아침 5시에 잤지만 눈을 뜨고 일어났다. 며칠째 씻지 않아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친구가 줌 회의에 입장하면 받아줘야 하기 때문에 씻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데워 따뜻한 우유와 블루베리 요구르트를 먹었다. 블루베리 요구르트에 우유를 섞으면 무슨 맛일까 궁금해 요구르트에 우유를 붓다가 우유를 식탁에 질질 흘렸다. 서로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가볍게 오늘 뭐할 건지 물었다. 씻기 위해 줌을 종료하고 냄새가 나는 몸을 씻었다.


우연찮게도 오늘은 개강하고 처음 학교를 가는 날이다. 도시락을 싸기로 마음을 먹었다. 9시 반 셔틀버스. 지금 시각 9시. 시간이 얼마 없다. 빨리 만들고 아침밥도 먹어야 한다. 언니가 자기 곧 잘거니 조용히 하라고 중얼거렸다.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싶지만 냄새가 너무 많이 날 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시금치나물, 김치, 계란, 상추, 단무지 절임이 보인다. 그래! 비빔밥. 너로 결정했어.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 프라이를 굽는 동안 양푼을 가져와 밥, 상추, 김치, 김가루, 고추장을 다 때려 넣는다. 그 와중에도 감성을 놓치지 않고 이쁘게 때려 박았다. 숭덩숭덩 가위로 자르고 계란을 넣고 참기름과 통깨를 살살 뿌리고 숟가락으로 삭삭 비빈다.



 엄마가 상추가 서걱서걱하다고 했는데 진짜 서걱거린다. 철 도시락통에 밥을 넣고 꼬꼬마 때부터 쓰던 숟가락, 젓가락 통이 보이지 않아 급하게 집 숟가락을 그냥 키친타월로 감쌌다. 입가심으로 한라봉까지 하나를 챙기니 든든, 텀블러까지 챙겼다.

학교 점심시간. 사실 도시락을 싸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걱정했던 건 이걸 어디서 먹냐는 것이었다. 구내식당과 도서관 지하 휴게실 2개의 후보군이 있지만 코로나로 도서관 지하 1층은 폐쇄했다. 구내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급식을 배급해주시는 분에게 다가가 물었다.

"제가 도시락을 싸서 왔는데 여기서 먹어도 되나요?"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예요"
"아, 넵 알겠습니다."

등에 맨 가방을 붙잡은 채 구내식당을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이렇게 쉽게 포기한 게 아쉬웠다. 그럼 학과 여자 휴게실에서 먹을 걸 그랬나, 편의점 바깥 벤치에서 먹을 걸 그랬나. 전에는 나 혼자서 먹는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면 코로나 사태인 지금은 나 혼자 도시락을 싸서 먹는 게 눈치 보이는 건 둘째 치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학교 에타에 도시락 먹을 만한 데라는 검색했다. 재작년에 도시락을 싸서 가져오려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게시물을 클릭해보니 첫 번째 댓글이 "화장실ㄲㄲ"였다. 물끄러미 핸드폰 화면 창을 바라보며 정말 그래야 하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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