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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pr 19. 2021

부엌의 전쟁

요리가 뭐라고

올해  요리를 꾸준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말은 그동안 요리를 꾸준히 하지 않았다는 말이고, 마음을 먹었다는 건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왜 요리를 안했지? 집에서 요리하면 될일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요리를 다시 시작했다.

 첫 요리, 딸기잼. 잊고 있었다. 내가 왜 요리를 안 하게 됐는지. 여긴 엄마의 주방이라는 것을.

첫 요리 실습(타르타르 소스, BLT 샌드위치)

기초도 기본도 없이 요리에 관심이 있어 특성화고(조리고)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그때는 내가 요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안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라면 물 하나도 제대로 못 맞추던 생초보였다.  선생님이 앞으로 불러 칼질을 시켜 볼 만큼 실력이 미숙했고, 나는 연습이 필요했다. 양배추와, 버터와 밀가루를 사서 집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양배추로 일정하고 아주 가늘게 썰고 버터와  밀가루를 볶아 루 만드는 연습을 했다. 연습을 하다 다리가 저릿해서 시계를 바라보면 4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초보였던 나는 지은 죄가 많았다. 요리를 할 때마다 사고를 쳤는데 하수구 배관을 터트리기도 하고, 요리를 하고 나서 진이 다 빠져서 뒷정리를 하지 않아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냉장고에는 연습하겠다고 만든 오믈렛과 썰어놓은 양배추를 쌓아 놓았다. 요리를 하기만 하면 사고만 쳐서 엄마는 더 이상 내 주방을 쓰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도 그때는 기가 죽었다가, 하루가 지나면 다시 기가 살아났다.

'엄마 없는 시간대 하면 되지. 안 들키면 되지.'

재료를 사 와서 베란다에 숨겨두고 요리를 했다. 하지만 결코 초보인 내가 주부 경력 20년이 된 엄마를 속이는 건 쉽지 않았다. 빠지지 않은 음식 냄새, 깔끔하게 뒷정리되지 않은 주방, 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결국엔 들켰다.

질릴 대로 질린 엄마가 더 이상 내 주방을 쓰지 말라며 화, 짜증, 잔소리를 퍼부었다. 당연히 나도 가만있지 않았다. 엄마가 지원해준 게 뭐가 있냐며 제과학원도 내 돈으로 다니고, 식재료도 내가 사서 요리하는데 나는 학생인데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음성을 높이며 맞대응했다.

 치열하게 싸우며 요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리실력은 늘지 않고 청소 실력만 늘었다. 하지만 내가 치운다고 치워도 엄마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마 눈에는 뭐가 그렇게 잘 보이는지 치워도, 치워도 엄마는 허점을 발견해 잔소리를 했다.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치우지 말고 '여기가 덜 치워졌으니까 치워'라고 하면 되는데  나를 시키지 않고 '또 어질러 놓았구먼? 치워놓으면 어지르고 또 어지르고, 요리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 더럽게 말 안 듣네' 하고 혼잣말을 들으라는 듯이 한다는 것이다. 방에서 뛰쳐나와 '어디? 어딘데? 엄마가 치우지 말고 나보고 치우라고 말하면 되잖아!'라고 소리치면 '아, 됐어! 널 뭘 믿고 시켜?'  하며 짜증을 냈다.

게다가 내가 만든 요리들은 맛이 없었다. 그래도 빈말이라도 맛있다거나, 먹을 만 해라던가, 소금을 더 쳤으면 맛있었겠다라던가, 이런 말들을 해줄 수도 있는데, 막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한테 칭찬과 격려를 해줘도 모자를 망정, 가족들은 비웃었다. '너는 왜 항상 맛없는 것만 만드냐, 너보다 내가 더 요리 잘하겠다. 조리사라면서 기본 개념도 없냐. 네가 만든 건 맛이 없잖아 안 먹어'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낮아졌다. 학교에서 조리 실습을 하고 음식을 다 만들면 친구들이랑 모여서 서로의 음식을 맛보는데 나는 내 것을 나 혼자서 먹었다.  맛있게 요리를 해도 내 거 먹어봐!라는 말을 못 했다.

갈수록 나는 엄마의 작은 간섭에도 예민해졌고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걸레로 거실 바닥을 닦고, 배수구 음식물통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누가 보면 요리를 매일매일 할 줄 알겠지만 눈칫밥 먹으며 고작 해봐야 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이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해 먹는 정도였다.

'내가 그렇지 뭐, 내가 하는 건 다 맛이 없잖아'


   음식을 만들고 맛없다는 말을 들을 때도  주눅이 들어 더 이상 기죽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밑바닥이라 '아니야 맛있어, 또는 다음번엔 더 잘 만들 거야' 라며 다독이지 않았다. 나도 나에게 거는 기대가 없었다. 다 포기해서는 될 대로 되라며 달관했다.

그래도 요리를 했고 이후엔 무슨 음식을 했는지 모를 만큼 말끔히 치워나도, 바닥이 끈적거린다는 둥, 여름엔 더우니까 불을 쓰지 말라는 둥, 별별 트집을 잡으면서 엄마는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주방을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걸.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맘에 들지 못할 거라는 걸. 3년이 넘게 주방에서 요리하는 걸로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고 싸웠다.

그리고  결국, 내가 졌다. 간단한 계란 프라이 하나 하려고 팬을 잡았는데

'또 뭐 해 먹게?'

  한마디 던지는 엄마의 말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사실 더럽고 치사해서 집에서 요리 안 하면 그만인데,  하고 싶었으니까  홧김에라도 '아 그래! 요리 안 하고 만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만든 음식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매번 엄마의 눈초리를 받아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요리를 했다. 3년이 넘게 엄마의 간섭을 참고, 주방을 이용하려고 싸웠는데 이젠, 이골이 났다.
 '더러워서 요리 안 해~  엄마는 평생 그렇게 살아, 진짜 지긋지긋하다, 지긋지긋해.'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무력감. 무기력하게 집에 누워서 폰만 하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베알이 꼴려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나는 화를 냈다. 일종의 시위였다. 나를 망가뜨리는 게. 엄마가 내게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잔소리를 해도 무시하고 장난을 걸어도 받아쳐주지 않았다. 정말로 정이 떨어져서 얼굴을 보는데 원망과 화가 올라와서 웃는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면서 무뎌졌다. 열정은 다 닳아졌고 요리하는 것에 자신감은 다 사라져 있었다.

올해 초, 계속 엎어지는 사업 계획서 때문에 '이걸 통과되지 못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사업계획서가 없으면 못하나?'라는 생각에  다시 그 열정의 작은 불씨가 붙으면서 꾸준히 요리를 하겠다고 다짐을 먹었었다.

브런치에 올린 딸기 편이 오랜만에 하는 요리였다. 딸기를 사 와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뭐하려고? 딸기잼 하려고? 물어보는 것부터 세 박스 다 할 거야? 많으니까 두 박스만 해, 딸기 살려고 했는데 안 사도 되겠다.' 하며 간섭했다. 지난 시간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나에겐 좋게 들리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딸기잼을 망쳤고 엄마는 또다시 간섭했다. 그저 레몬을 너무 많이 넣었다, 설탕을 많이 넣었다고 말을 하는데, 남들이 봤을 땐 조언뿐인 말들이  나에겐 '이럴 줄 알았다. 네가 그럼 그렇지, 너는 항상 실패해. '라는 말들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간섭하지 마 내 딸기잼이지 엄마 딸기잼이야? 제발 입 좀 다물어.'라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다음날, 망한 딸기잼을 만회하려 딸기를 사러 가려는데 엄마가 딸기를 사 오겠다고 해서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이미 내 딸기잼을 꺼내서 냄비에 넣고 나무주걱으로 젓고 있었다. 입 밖으로 험한 말들이 튀어나갈 만큼 기분이 상해서 집을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가, 이거 딸기잼 해야지~' 하고 엄마가 외쳤다.

'엄마가 시작했으니까 엄마가 해'. 화를 참으며 옆에서 하는 거라도 보라는  말을 무시하고 집을 나갔다. '그게 문제야. 내가 하는 걸 엄마가 봐야지 왜 엄마가 하는 걸 내가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분은 여전히 언짢은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이스트 없이 천연 발효빵을 만들기 위한 발효종을 만들려고 유리병에 밀가루를 계량하고 있으니 엄마가 또 물었다.


'너 뭐해? 유리병 얼마 없는데 남겨놔야 돼. 다 써버리면 안 돼. 오늘은 더 이상 불 쓰지 마, 너 또 뭐 만드는데?'


 '불 안 쓰니까 간섭하지 마, 말 걸지 마. 짜증 나니까.'

 대꾸했지만 엄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폭발했다.
'나는 그럼 언제 실력이 늘어? 연습을 해야 늘 거 아니야!! 내가 만든 음식이 다 맛없다고 해서 나는 내 요리에 자신도 없고 누가 내 요리를 먹는 게 싫다고, 말을 안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시비로밖에 안 들리니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제발.'

책을 집어던졌고 동시에 참아왔던 게 터졌다. 책을 내던졌다.  내 눈물의 절반의 원인은 요리 때문이었으리라.
 

다음날에도 요리를 했다. 엄마는 내게 뭘 만드냐 묻지 않았고 이건 이렇게 하라고 간섭하지도 않았다.  눈물바람 불었으니 1주일? 2주일 정도는 맘에 안 들어도 봐주는 거다. 그래도 놀랐던 건 왕따 시키듯이 내 음식은 거들떠도 안 보던 엄마가 식탁 위에 내가 만든 오징어 뭇국과 오징어 볶음을 꺼낸 건 놀랄 일이었다. 

 성공하면 식탁에 올라오지만 실패하거나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다 내 몫이다. 나도 맛있지 않은 음식을 남들에게 먹이기 싫다. 근데 버리기는 또 아까워서 완전 폭망 한 게 아니라면 내 입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가끔 남들과 같은 짐도 더 무겁게 느끼기 때문인지 내 최대치가 남들보다 더 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걱정하고 스트레스받고 시도를 두려워하고. 그래서 내겐 용기를 최대어 이끌어내서 하는 일들이 남들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할 때, 허탈한 기분이 들곤 한다. 

몇 번을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라고 한다. 다시 일어서도 짓밟히고 짓밟히는데 '다시 일어서야지'라는 말을 듣는 건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일어서면 된다는 걸 아는데 일어서지 못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  다시 짓밟힐까, 일어서기 무서운 게 당연한 일인데 엄살인 것 같아서, 의지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일어서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사회는 그런 개인적인 사정까지 다 이해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엎어지는 횟수만큼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세상이 좀 더 격려와 응원, 칭찬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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