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파

by 흠흠

제1부 협의이혼


민준은 명지와의 혼인생활이 힘들어져 협의이혼을 하기로 했다. 결혼 당시 전세돈을 대부분 명지가 부담했던 터라 전셋집을 명지에게 주기로 한다는 이혼 조건도 크게 억울하지 않았다. 아이가 없던 민준과 명지의 협의이혼은 그로부터 한 달 가량이 지나 끝이 났다.


민준은 그렇게 살던 집을 나와 잠시 부모님 집에 있다가 원룸을 하나 얻어 살기 시작했다. 이사를 하면서 새 출발이라 생각하며 묵은 마음을 털어내려 했다.


그런데 민준이 원룸을 얻은 후부터 민준의 소망과 달리 명지가 밤늦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늘… 잠깐 너희 집에 가도 될까? 그냥… 좀 외로워서.”


민준도 명지와 좋지 않은 기억을 안고 헤어졌던 터라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단칼에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명지가 몇 차례나 계속하여 자러 가겠다고 하자 마음이 무뎌져 그러라고 했다.


그렇게 둘은 따로 살면서도, 일주일에 한, 두번씩 명지가 '나 오늘 자러가도 돼?'라는 문자를 보내면, 함께 밤에 보내게 되었다. 그러는 날이 많아질수록 민준은 연애를 하던 때의 감정이 되살아 나면서, 내심 재결합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차마 명지에게 말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런 관계가 지속된 지 6개월이 접어들 무렵, 명지의 연락이 뚝 끊겼다. 민준의 마음엔 불길한 그림자가 깃들었다. 민준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명지네 회사 근처에 찾아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그는 명지가 낯선 남자와 나란히 서서, 봄 햇살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보았다. 조금 더 알아 보니 두 사람은 이미 함께 살고 있었다.


민준은 명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명지를 상대로 사실혼 부당파기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제2부 법정


민준은 법정에서, “판사님, 저는 명지와 협의이혼을 했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관계를 가졌습니다. 사실혼 관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지는 다른 남자와 동거까지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부정행위에 해당합니다.”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명지는 기가막힌 듯 코웃음을 치며 반론했다.


“판사님, 사실혼이라니요. 저는 원고와 이혼한 후, 원고와 하루도 같이 산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게 사실혼이 됩니까?”


판사는, “그런데 피고, 원고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오늘 자러 가도 되냐’는 문자를 보냈네요. 그건 어떻게 된 건가요?”라면서 명지에게 물었다.


그 부분에 이르자 명지는 볼을 조금 붉히더니, “그건 말씀드리가가 조금 쑥스러운데요. 판사님”하면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판사님, 제가 밤에 외로울 때 원고에게 연락을 해서 만난 적은 있습니다. 저는 건강한 30대 여성이고, 욕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 남자하고나 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 남편이었던 원고가 가장 안전하다 싶어 원고에게 연락을 해서 잠을 같이 잤을 뿐입니다. 부부처럼 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 요즘 말로 하면 원고는 저에게 섹파였을 뿐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법정은 순식간에 아주 조용해졌고, 민준도 창피한 듯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방청석에서는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판사는 민준에게, “원고, 피고와 이혼한 이후 따로 살다가 간혹 만나서 성관계만 맺은 게 맞나요? 그 와중에 재결합을 하자라는 말을 한 적은 있었나요?”라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듯 물었다.


민준이 성관계만 맺었고, 재결합하자는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


판사는 민준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원고. 사실혼이라는 건 혼인의 의사와 혼인의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요, 남녀가 따로 살면서 간혹 만나서 성관계만 하는 건 혼인의 의사도 없고, 혼인의 실체도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원고의 생각은 어떤까요?”


민준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판사님 저는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명지와 재결합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혼인의 의사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점을 꼭 참작해 주십시오.”라며 말을 마쳤다.


명지도 마지막으로, “판사님, 원고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저는 원고와 재결합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새로 혼인신고까지 마친 상태입니다. 민준과 사실혼 관계는 전혀 없었습니다.”


판사는 모두 돌아가라고 하면서 재판을 마쳤다. 판사가 나간 법정의 문이 닫히는 소리는 마치 두 사람의 마지막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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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민준과 명지의 주장 중 누구의 주장을 받아들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