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프롤로그
철수와 영희는 1995년 10월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을 했다. 아들도 둘 낳았다. 결혼 생활에 큰 어려움도 없었다.
IMF때 철수가 실직을 했다. 다툼이 잦아졌고 둘은 2001년에 협의이혼을 했다. 영희 혼자 애들을 힘들게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영희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졸음에 겨워 접시를 놓치기도 했고, 근육통 때문에 온 몸에 파스가 붙지 않은 날이 없었다. 눈물이 마르지 않은 날도 없었고, 아들 둘은 번갈아가며 사고를 쳤다.
그렇게 세월이 10여 년쯤 흘렀다.
철수는 지민과 재혼을 했고, 영희도 힘든 생활에서 도피하고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지민은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기를 원했지만, IMF로 실직한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던 철수는 지민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고, 철수는 다시 이혼을 했다.
도피처를 찾았던 영희도 원했던 도피처가 아니어서 이혼을 했다.
아들 둘이 차례로 결혼을 했다. 혼주석에 나란히 앉아야 하는 문제, 하객을 초대하는 문제 등으로 철수와 영희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예전의 정이 되살아나 재결합을 하기로 했다.
스튜디오에서 간단하게 사진만 다시 찍는 것으로 결혼식을 갈음했다. 그렇게 2023년 5월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제2장 철수의 투병과 혼인 파탄
제1절 철수의 투병
혼인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철수는 건강검진을 하다 폐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미 여러 곳으로 전이된 상태여서 손을 쓸 수도 없었다.
영희도 병원에서 철수를 간호하기도 했지만, 장사를 해야해서 매일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결혼한 아들들도 모두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철수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병원에 있을 때가 많았다. 철수는 까닭 모를 외로움과 죽음을 앞둔 공포심에 지민에게도 연락을 했다.
지민은 바로 병원으로 찾아왔다.
"여보, 저 여자가 여기 왜 있어?"
병실에 온 영희가 지민을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도 없는데 내가 많이 아파서 연락을 했어"
철수가 침대에 누운 채 힘없이 대답을 했다.
"당신 제 정신이에요? 여기가 어디라고 다른 여자를 불러요?"
"여보세요. 다른 여자라니요? 저도 한때는 철수씨 부인이었어요. 말씀 좀 가려서 해주세요"
철수와 영희 사이의 다툼에 지민이 끼어 들었다.
"그럼 알아서 해요. 나는 갈테니까"
영희는 병원에 온지 5분만에 가방을 들고 다시 나가버렸다.
영희는 그 다음날부터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지민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잠시 병원에 들렀다. 영희는 2, 30분 동안 병원에 있거나, 그 전에 지민이 오기라도 하면 휑하고 병원을 빠져 나가기 일쑤였다.
제2절 혼인 파탄
철수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 갔다. 간병도 영희 대신 지민이 도맡게 되었다.
철수는 날마다 곁에 있어주는 지민을 보자, 지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철수는 동생으로부터 "형님, 요새 형수님 잘 안 오시죠? 제가 얼마전에 형수님 가게에 갔었는데, 형수님이 가게에서 어떤 남자랑 정말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구요"라는 말까지 들었었다.
그래서 철수는 ‘이 여편네가 나 죽으면 바로 딴 남자와 살림을 차릴려고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영희가 병원에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철수는 죽기 전에라도 영희와의 혼인을 정리하고, 자기 곁에 있는 지민과 혼인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철수는 지민을 지긋히 바라보았다.
"당신, 내가 죽기 전에 소원이 하나 생겼는데.. 들어 주실 수 있으려나?"
"무슨 소원인데 그래요?"
"당신과 다시 혼인신고를 하고 싶네.."
"아이고 그게 뭐 대단한 소원이라고 그러세요. 내 그 소원 들어드릴게요"
지민은 철수의 소변통을 비우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영희는 철수의 이혼를 거부했고, 철수는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철수는 힘겹게 휠체어에 앉아, 판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판사님, 제 인생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눈을 감을 때 피고인 영희 말고 다른 여자가 제 옆을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피고와 이혼을 하도록 해주십시오."
영희도 판사에게 호소를 했다.
"판사님, 제가 원고의 첫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중간에 이혼을 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제가 원고의 부인이고, 마지막까지 원고의 곁을 지켜 주고 싶습니다. 원고의 자녀들도 엄마인 제가 아빠 곁에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이혼만은 절대 안됩니다."
철수는 영희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둘을 번갈아 보던 판사가 영희에게 먼저 물었다.
"피고, 원고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데, 들어 주실 생각은 없어요? 위자료도 필요 없고, 재산분할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혼만 해달라는 건데, 들어 주실 생각은 없는 건가요?"
영희는 눈물까지 훌쩍였다.
"판사님, 제가 간병을 잠시 소홀히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 남자를 진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통화했다는 소장의 내용은 완전한 억측입니다. 저 남자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꼭 함께 있도록 해주세요"
판사는 철수에게 다시 물었다.
"원고, 피고의 말씀 들으셨지요? 원고께서 마음을 돌리실 생각은 없는 건가요?"
철수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판사를 향해 호소를 했다. 정말 인생의 마지막 소원인 것처럼.
"판사님, 저 여자의 인생이 아니라, 제 인생입니다. 저 여자가 아니라, 제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제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판사는 당사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 지민이 사망을 앞둔 철수와 다시 혼인을 하려하고, 영희가 이혼을 거부하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이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겠다고 하면서 그 날의 재판을 마쳤다.
"이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겠습니다. 2주후에 조정실에서 뵙겠습니다. 그리고 원고는 지민씨와 함께 조정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지민이 철수의 휠체어를 밀고 조정실로 들어와 철수와 함께 원고석에 나란히 앉았고, 영희는 그 반대편에 홀로 앉았다.
판사는 영희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피고. 혹시 원고가 지민과 재혼을 한 후 사망을 하면 피고의 자녀들이 원고의 재산을 상속받는 데 장애가 있을까봐 이혼을 거부하는 건 아닌가요?"
영희도 법정에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상속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숨을 멈칫했다. 그리고는 숨을 내쉬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모두 영희만을 바라보았다.
"판사님께서 그렇게 물으시니 저도 솔직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민이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건 순전히 철수의 재산때문입니다. 저도 저와 살 수 없다는 원고와 혼인을 계속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원고가 지민과 혼인하는 순간 저희 아이들 몫의 상속분이 줄어들게 됩니다. 원고와 이혼하고 저 혼자 정말 힘들게 두 아이를 키웠습니다. 어미로서 저 아이들의 상속분만큼은 지켜주고 싶습니다."
법정에서와 달리 차가워진 영희의 태도에 판사도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판사는 원고측 조정참가인 자격으로 앉아있던 지민에게도 물었다.
"참가인의 입장은 어떤가요? 재산때문에 철수와 혼인하시려는 건가요?"
지민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피고는 재산때문에 애정도 없는 혼인을 계속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세속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을 때까지 저는 철수씨를 사랑해서 결혼을 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말을 마친 지민의 표정은 결연했고, 철수도 지민을 도우려는 듯 한마디를 거들었다.
"판사님 저는 가진 재산도 별로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과 예금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지민이 제 재산 때문에 혼인을 하려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피고가 정녕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 집이라도 지금 바로 피고에게 주겠습니다."
영희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면서 손을 들었다.
"판사님, 재산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제가 한마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판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희가 요구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원고도 죽을 때까지 살 집이 필요할 텐데 저도 집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영희가 중간에 말을 멈추었고, 조정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영희를 향했다.
"저도 저 둘이 같이 사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고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데 이혼도 해 주겠습니다. 다만 철수와 지민의 혼인신고만은 못하게 해주십시오. 진짜로 지민이 재산과 무관하게 철수를 사랑한다면 혼인신고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희의 말이 끝나자, 판사는 영희에게 확인해야 할 사항이 생겼다.
"그런데 피고, 철수와 지민이 여기서의 약속을 어기고 혼인신고를 해도, 그 혼인신고를 무효로 돌릴 수는 없거든요. 만약 철수와 지민이 그 약속을 어긴다면 위약벌로 얼마를 받으시면 되겠어요?"
영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5억원이라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판사는 원고석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럼 영희측 의견에 따라 '원고와 피고는 이혼하되, 원고와 조정참가인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다. 만약 원고와 조정참가인이 이 의무를 위반하면 원고와 조정참가인은 연대하여 원고에게 손해배상으로 5억 원을 지급한다.' 이렇게 조정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철수는 당장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데, 지민의 눈빛은 많이 흔들렸고, 대답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철수가 지민을 바라보며 침을 삼키는 소리와 조정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소리, 판사가 두 손을 맞잡은 채 엄지손가락만을 부딪치고 있는 소리만이 조정실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1. 첫번째 결말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지민이 입을 뗐다.
"피고의 요구대로 하면 저는 사실혼 배우자에 불과해집니다. 저에게 사실혼 배우자가 되라는 그 요구를 저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조정실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렇게 조정은 성립되지 못했고, 결국 한 남자의 마지막 소원도 그를 사랑한다던 두 여인의 현실적인 계산 앞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판사는 쓸쓸한 표정으로 조정실 문을 닫았다.
한 남자의 청구는 결국 기각되었다. 한 남자의 인생도, 그의 마지막 소원처럼, 조용하고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2. 두번째 결말
지민은 조정조항을 위반하여, 혼인신고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머릿속에서 열심히 계산기를 돌리고 있었다. 집과 예금의 합계액에서 5억 원을 빼고, 그 중 자기의 상속분인 7분의 3이 얼마인지, 그리고 향후 지급해야 하는 간병비가 얼마나 소요될 것인지를 비교해 보았다. 마침내 그 계산이 끝났다.
지민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는 저의 사랑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정조항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하려합니다. 판사님께서 금액을 말씀하시니까 저의 의견을 조심스레 말씀드리면, 저는 영희에게 지급해야하는 5억 원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2억 원 정도까지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조정실은 갑자기 지민이 지급해야할 금액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장소로 변해버렸고 두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올라가기 시작했다. 철수는 아직 자기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마치 자기를 죽은 사람처럼 대하는 두 여자가 모두 너무 징그럽고 싫어졌다. 철수는 한 때나마 인생의 막바지에 저 두 여자의 사랑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에 행복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현실은 두 여자의 현금지급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주 비참하게 깨달아 버렸다.
철수는 중간에 판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판사님, 저는 이 소송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소를 취하하겠습니다."
철수는 그 말만 마치고 들어올 때와 달리 혼자서 힘겹게 휠체어를 밀고 조정실을 나가버렸다.
철수의 갑작스런 행동에 영희와 지민, 그리고 판사까지 모두 얼어붙어 버렸다.
그렇게 소송은 종결되어 버렸고, 결국 한 남자의 마지막 소원도 그를 사랑한다던 두 여인의 현실적인 다툼 앞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판사는 쓸쓸한 표정으로 조정실 문을 닫았다. 한 남자의 인생도, 그의 마지막 소원처럼, 조용하고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3. 세번째 결말
지민은 조정조항을 위반하여, 혼인신고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머릿속에서 열심히 계산기를 돌리고 있었다. 집과 예금의 합계액에서 5억 원을 빼고, 그 중 자기의 상속분인 7분의 3이 얼마인지, 그리고 향후 지급해야 하는 간병비가 얼마나 소요될 것인지를 비교해 보았다. 마침내 그 계산이 끝났다.
지민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는 저의 사랑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정조항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하려합니다. 판사님께서 금액을 말씀하시니까 저의 의견을 조심스레 말씀드리면, 저는 영희에게 지급해야하는 5억 원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3억 원 정도까지는 양보할 수 있습니다"
조정은 몇단계의 논의를 더 거쳐 지민과 철수가 혼인신고를 하면 영희에게 4억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철수는 한 때나마 인생의 막바지에 저 두 여자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는구나라는 생각에 행복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현실은 두 여자의 현금지급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주 비참하게 깨달아 버렸다.
그나마 철수는 영희에게 그 선에서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마지막 소원을 이룬 것에 감사했다. 상처뿐이었지만 휠체어를 밀어주는 지민의 손길을 뜨끼며 조정실을 빠져나갔다.
판사는 뭔가 많이 쓸쓸한 표정으로 조정실 문을 닫았다. 사랑으로 포장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비열한 것인지 새삼 느껴지는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