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한 사례를 통해 사실혼 배우자의 사망과 재산분할에 관해 유의할 사항에 대해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법은 때때로 상식과 반대로 움직입니다. 보시죠.
첫 번째 사례입니다. 배우자를 죽을 때까지 지킨 순자씨의 사연입니다.
순자는 남편과 사별한 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던 동식과 10여년전부터 동식의 집에서 혼인신고 없이 살림을 꾸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동식은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순자는 동식의 곁을 지키면서도 동식이 자신에게 재산에 대한 유언이나 증여 없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들었다.
"여보, 이제라도 나에게 집이라도 넘겨주면 안되시겠어요? 영감이 갑자기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아이고.. 여보, 아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죽더라도 아들이 알아서 자네를 잘 모실거야.."
그렇게 동식은 순자에게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않고 사망해 버렸다. 순자는 장례식장에서도 배우자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순자는 동식의 아들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소장을 받았다. 순자는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 등 여러 곳을 전전하여 물어보았지만, 동식이 이미 사망하여 사실혼 배우자로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도 없고, 유언도 없어서 집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할 뿐이었다. 암담한 마음만 안고 법정에 출석하던 참이었다.
판사가 동식의 아들에게 물었다.
“원고, 피고가 원고의 부친과 10여년간 동거하면서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시나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 피고가 원고의 새어머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새어머니를 상대로 집을 비워달라는 청구를 하는 건가요?”
판사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동식의 아들을 바라보았고, 법정에 있던 사람들도 새어머니를 상대로 집을 비워달라는 청구를 하고 있는 아들의 태도에 여기저기서 쑤군덕대는 소리로 술렁였다.
동식의 아들은 그에 아랑 곳하지 않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판사님, 피고는 그냥 원고의 부친과 함께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피고는 원고로부터 매달 생활비로 적지 않은 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원고의 부친이 사망하기 몇 달 전부터는 원고 부친의 계좌에서 한번에 1,000만 원 내지 2,000만 원씩의 목돈이 인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피고가 원고 부친 계좌에 있는 돈을 부당하게 유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판사님 말씀마따나 새어머니같은 분이라 앞으로도 그 부분에 대한 반환청구까지는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돈이면 작은 전세집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은 사정도 참작해 주십시오.”
동식의 아들은 말을 마치고서는 법정에 있던 주무관에게 거래명세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판사는 거래명세서를 확인하면서, 순자에게 물었다.
“피고, 원고의 말처럼 계좌에서 적지 않은 돈이 인출되었네요. 왜 그런건가요?”
순자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판사님, 저 혼자 원고의 아버지를 간병할 수 없어서 간병인을 고용하느라 지출한 돈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식의 아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사님, 제가 아버지 병실에 갔을 때 피고 혼자 주로 있었고, 간병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간병인을 고용했다는 피고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판사는 원고와 피고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였다. 순자는 억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울먹이며 마지막 변론을 시작했다.
“판사님, 원고의 부친은 살아생전에 이 집만큼은 저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만 믿고 원고의 부친이 사망할 때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집을 나가면 살 곳도 없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그 양반 뒤치다꺼리를 하였다는 점만 알아주십시오. 그 말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판사님, 피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아무리 좋게 해석하더라도 증여나 유증을 받았다는 취지로 볼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식 아들의 냉정한 변론이 오랫동안 법정을 울렸다.
그리고 두 번째 사례입니다. 배우자가 죽을 때가 되자 가출한 말자씨의 사연입니다.
말자는 남편과 사별한 후, 부인과 사별한 후 혼자 지내고 있던 강훈과 10여년전부터 강훈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강훈 자녀들의 반대로 혼인신고를 못하고 있던 말자는 그게 계속 불안했다.
그러다 강훈이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말자는 강훈이 자신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영감, 가실 때 가시더라도 나에게 이 집이라도 넘겨주고 가셔요.. 네?"
"허허.. 이 사람아.. 내 자식들을 못 믿는가.. 내가 가더라도 자식들이 자네는 잘 모시겠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그집에서 사시게.. 자네 이름으로 변경하려면 세금도 들잖아.."
말자는 혼인신고를 그렇게 반대하던 강훈의 자식들이 떠올랐다. 말자는 강훈에게 더이상 당신과 살 수 없다고 선언하고는 집을 나왔다. 그리 며칠 후 강훈을 상대로 가처분신청과 함께 사실혼 관계 해소를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심판청구를 하였다.
강훈은 청구서를 받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말자는 강훈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장례식장에 가 강훈에게 절한자리 올리지 않았다.
강훈이가 사망하고 몇 달 후, 강훈의 아들은 법원으로부터 소송절차 수계신청서를 받았다. 강훈의 아들은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면서 이미 재산분할 청구서를 발견하고 이를 읽어본 상태였다. 강훈의 아들은, 아버지의 간병도 포기하고 도망간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 재산분할을 청구하는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강훈의 아들은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법률 상담을 받으며 충격에 빠졌다. 아버지를 돌보지도 않은 여자가 '사실혼'이라는 이름으로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판사는 강훈의 아들에게 물었다.
“피고, 원고가 피고의 부친과 10여년간 동거하면서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시나요?”
강훈의 아들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재산분할 청구를 하는 원고가 영 못마땅하여 한마디 하였다.
“네, 인정합니다. 그런데 원고는 피고의 부친이 돌아가실 때가 되자 무단 가출을 하여 피고 부친을 간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산분할을 청구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출한 주제에 재산분할청구까지 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습니까?”
법정의 분위기도 가출한 새어머니가 전남편의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청구했다는 사정에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 앉는 것 같았다.
판사는 그와 같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기록을 확인하면서, 말자와 강훈의 아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원고와 피고, 재산분할내역표에 기재된 원고와 강훈의 재산들만 분할하면 되는 건가요?”
“판사님, 저는 진짜 억울합니다. 원고가 가출하는 바람에 저 혼자 부친을 간호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점만 꼭 참고하여 주십시오.”
강훈의 아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변론을 마쳤다. 말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두 사례에서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예상하신 바와 같이 남편을 끝까지 지킨 순자는 재산을 하나도 못 받고 집을 비워줘야 했고, 가출을 감행한 말자는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순자가 동식의 사망 전에 목돈을 인출했는지 여부 그리고 말자가 사실혼 관계 파탄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여부와 같은 도덕적 문제는 법적인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끝까지 배우자를 지키는 경우보다 가출을 감행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되시죠? 뭐 어쩔 수 있습니까. 법이 그렇다는데요.
물론 사실혼관계에서는 증여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법적요건을 갖춘 유언을 받아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것 없이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에 임박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가출을 하시고 재산분할을 꼭 청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착하게 살면 보상받는다.”고 하지만, 법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끝을 신뢰에만 맡기기엔, 우리 법의 현실이 너무나 냉정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