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철없던 시절 잠시 유부남을 만났다가 헤어졌다. 야속하게도 그 짧은 만남에서 아이가 생겼고, 정원이는 병원에도 못가고 혼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준영이를 낳고 혼자서 키웠다. 사생아였던 준영이의 호적이 필요해, 정원이는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에게 부탁해 그 남자와 그 남자의 처 사이에서 준영이를 낳은 것처럼 출생신고를 마쳤다.
준영이는 혼자서도 잘 자라주었고, 스무살 무렵 혼자서 자신을 어렵게 키워준 정원이와 단둘이 살 겸 나중에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살기 위해 바닷가 시골에 자그마한 집을 한 채 사서 등기를 마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그만 차가 이끌어져 바다에 빠졌고, 준영이는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 없이 눈물로 며칠 밤을 지새우고 정원은 별다른 준비도 없이 조그마한 비석 하나를 세우고 준영이를 땅에 묻었다.
그로부터 10여년쯤 지난 어느날, 정원이는 낯선 이들이 보낸 내용증명우편을 받았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준영이의 형제들이 보낸 우편물이었다. 준영이가 죽고 준영이 소유의 집을 자신들이 상속을 받았으니, 정원이더러 집을 비워달라는 내용의 우편물이었다.
정원이는 눈앞이 아득해져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 등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일단 준영이가 정원이의 친자라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 판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원에 소송이란 것을 제기했고, 드디어 재판날이 되었다.
판사가 먼저 정원에게 물었다.
“혹시 병원에서 발행한 준영이에 대한 출생증명서가 있으신가요?”
“아니요 결혼을 한 처지가 아니어서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그 시절에는 집에서 많이 낳아서요, 출생증명서는 없습니다.”
“그럼 혹시 유전자검사도 한 적 없으시지요?”
"그런 걸 왜 했겠어요"
"원고, 정말 안타깝지만, 출생증명서가 없는 이상, 유전자 검사는 꼭 필요합니다."
정원이는 눈앞이 막막해졌다.
“판사님, 준영이 죽은지가 벌써 10년인데, 어떻게 유전자검사를 하라는 말입니까?”
정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판사에게 물었다.
판사는 정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준영이의 유골에 있는 DNA를 추출해서, 유전자검사를 할 수 밖에 없는데요. 그럴려면 파묘를 해야하는데....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정원이는 판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판사님, 아무리 죽은 아라고 하더라도 준영이는 제 아들인데요, 어미에게 어찌 아들의 뼈를 자르라고 하십니까, 난 못합니다.”
말을 마친 정원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결국 정원의 청구는 기각되었다.
정숙은 부유한 유부남을 만나 그 슬하에 형주만을 낳아 길렀다. 형주의 아버지는 적자와 서자 사이에 상속분의 차이도 있었던 때여서 그랬는지, 그때의 관습대로 형주를 정숙과 사이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본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형주의 아버지는 아들과 혼자 살아야 할 정숙이를 위해 정숙 명의로 시골에 조그만 땅과 집을 사주었다.
형주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도, 아버지의 돈이 있어서 그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서든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항상 안쓰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형주는 주민등록표등본을 뗄 때마다, 아들이 아닌 동거인으로 등재되어 있었고, 그게 너무 창피했다. 그래서 형주는 성년이 되자 마자 따로 전입신고를 하기도 했다.
형주는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난 후, 명절 때나 생일 등에만 시골에 내려와 어머니를 뵈면서 지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주는 어머니를 산에 묻었다. 형주는 어머니 명의의 재산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호적상 어머니가 올라와 있지 않았던 탓에 손을 쓸 수가 없어서 그 땅과 집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시골집과 그 주변 토지가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형주는 이제라도 어머니 명의의 땅과 집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 등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모두 정숙이와 형주가 친생자라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 판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법원에 소송이란 것을 제기했다.
판사는 유전자 검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형주가 판사에게 물었다.
“판사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가 한참 전인데, 어떻게 유전자검사를 하라는 말입니까?”
"원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의 묘를 파묘해서, 그 유골에 있는 DNA와 원고 사이에 유전자검사를 해야 하는데요.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형주도 잠시 고민을 했다.
"그 방법 밖에 없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판판사는 원고의 검증과 감정신청을 채택한다고 하면서 재판을 마쳤다.
며칠 후 형주는 현장 검증 및 감정신청서를 접수했다. 판사는 적잖이 당황하면서 며칠 후 형주와 정숙의 묘소에 가, 그 묘가 정숙의 묘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감정인에게 뼈를 잘라서 유전자 감정을 해달라고 지시하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얼마 후 형주의 청구는 인용되었고, 토지보상금을 수령했다.
김판사는 두 사건을 모두 처리한 후, 커피를 마시며 솔로몬의 재판으로 유명한 한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래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절반으로 나누어 가지라는 솔로몬에게 아이를 포기할 테니 저 여자에게 아이를 주도록 했다는데, 정원 역시 집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죽은 아들일 말정 뼈 한 조각도 자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미 죽은 어머니라고 하더라도 뼈 한조각 정도는 그냥 자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판사는 마시고 있던 커피가 그날 따라 유난히 쓰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