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발니

성병은 그가 걸렸는데, 이혼소송은 내가 당했다.

by 흠흠

제1부 잔소리와 간섭


윤미와 주호는 결혼 초부터 3년째 주말부부였다. 주호가 근무하는 회사 사정상 서울로의 전보가 쉽지 않았고, 윤미네 회사는 서울에만 사무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윤미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다가 주호와 결혼을 했었다. 그 때문인지, 결혼 초에는 주호와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과 혼자 계시던 아버지를 돌보듯, 혼자 지내야 하는 주호가 안쓰러워서, 주호에게 자주 전화를 했다.


윤미는, 주호가 밥은 잘 챙겨먹고 출근하는지, 퇴근 후에 집에는 잘 들어오는지, 화장실 청소는 잘하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챙겨주고 싶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점점 주호가 전화를 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자 딴 짓을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고, 그 무렵부터는 영상통화를 고집했다.


주호는 어렸을 때부터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주호의 부모님은 주호가 방에서 공부를 하는지, 게임을 하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주호는 윤미의 이런 모습이 자기의 생활에 간섭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윤미의 전화가 거듭될수록 주호의 불만도 점점 쌓여갔다.


남자 혼자 살면서 아침은 대충 건너뛰고 출근할 수도 있고, 직장동료들과 술 마시다가 새벽까지 당구도 치면서 들어갈 때도 있고, 화장실도 적당히 더럽게 해놓고 살고, 빨래도 더 입을 게 없을 때쯤 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윤미의 계속되는 잔소리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윤미에게 그 전화들은 걱정이었지만, 주호에게는 점점 관리와 감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주호는 윤미에게, “아, 이제 그만 좀 해, 내가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라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주호는 윤미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윤미도 전화를 받지 않는 주호가 처음에는 너무 걱정이 되어 전화를 계속 했었지만, 주호가 며칠째 전화를 받지 않자, “흥, 네가 전화를 안 받겠다는 거지! 누가 먼저 전화하나 보자”라면서 전화걸기를 포기했다.



제2부 사면발니


제1장 가려움증


그로부터 약 2주간 서로 전화도 없었고, 주호도 서울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다 그 다음주 금요일 저녁에 주호가 불쑥 서울에 올라왔다.


윤미는 팔짱을 낀 채 주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안 볼 것처럼 굴더니?”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주호는 윤미에게 옆에 앉아보라는 손짓을 했다. 윤미가 팔짱을 낀 채 주호의 옆에 앉았다.

주호가 계속 옷깃을 매만지다 어렵게 입을 뗐다.


“여보, 우리 내일 같이 피부과에 좀 같이 가자.”


윤미는 너무 의아했다. 피부과에 갈 일이 있으면, 혼자 가면 되지, 왜 자기랑 같이 가자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며칠 전에 사타구니가 너무 가려워서 병원에 갔더니, 사면발니에 감염됐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면서 부인도 꼭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해서...”


주호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윤미는 처음에 사면발니가 뭔지 몰랐다. 윤미는 주호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 ‘사면발니?’라는 생소한 단어만 귓가를 맴돌았다.


윤미는 주호에게 물었다.


"사면발니가 뭔데?"


주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주호가 말 없이 앉아 있는 사이, 윤미는 홀린 듯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창에 그 단어를 입력했다.


[사면발니: 주로 사람의 음모에 기생하는 이의 일종으로, 성접촉에 의해 감염되며...]


‘성접촉’이라는 세 글자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윤미의 눈을 찔렀다. 윤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화면을 아래로 내릴수록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현미경으로 확대된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과 함께 '극심한 가려움', '전염성', '성병의 일종'이라는 단어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성병의 일종...’이라는 단어에서 미세하게 떨리던 윤미의 손가락은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이제 손가락을 넘어 전신에 퍼지고 있었다. 지난 2주간 전화 통화 없이 이어지던 주호의 침묵이, 단순히 자존심 싸움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때문이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주말부부라는 이름으로 3년간 이어지던 신뢰가, 스마트폰 화면 속의 기괴한 벌레 사진 한 장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윤미는 거실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주호를 쏘아보았다.


“여보, 이거 성병이라는데? 당신... 그동안 뭐 하고 다녔어?”


윤미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라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고, 머릿속에서는 주호가 모르는 여자와 함께 있는 온갖 지저분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주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윤미의 다그침이 이어졌다.


“대체 뭐라고 말 좀 해봐, 뭘 하고 다녔길래, 성병을 걸려오는 거야?”


제2장 주호의 변명, 그리고 가출


주호가 어렵게 입을 뗐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직장 동료들하고, 술 마시고 당구 치다가, 찜질방에 갔던 게 전부인데, 갑자기 사타구니가 가려워졌어. 정말이야. 여자로부터 옮은 건 절대 아니야, 날 좀 믿어줘.”


주호의 목소리는 낮고 바닥에 기어들어가는 듯 했다.


윤미는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화면 속에는 [찜질방 등에서... 감염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위생관리를 잘하는 시절에 찜질방을 이용한 후 사면발니에 감염되었다는 주호의 변명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허...... 지금 나보고 그말을 믿으라는 거야?”


윤미는 아까보더 더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아, 정말이라니까... 정히 못 믿겠으면, 친구들에게라도 확인해 봐.”


주호도 억울한 듯 전화를 거는 시늉까지 하면서 목소리를 점점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구들 이름을 불러주었다. 윤미는 그 이름을 받아 적었다.


그 후로도 ‘자기가 군대에 있을 때 옆 중대에서 쎄멘바리(사면발니)에 걸려 사단 전체가 난리난 적도 있었다’는 등 주호의 변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윤미도 성병의 일종이라는 것 말고는 주호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어 더 이상 추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윤미는 화제를 돌려 주호가 전화를 받지 않았던 걸 따지기 시작했다.


“사면발니에 걸려서 2주 동안 전화를 안 받았던 거 아냐? 내 전화를 피하는 게 어쩐지 의심스럽더라니.”


주호는 윤미의 살림살이에 대한 잔소리와 감시가 다시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둘의 말싸움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제 그만하자!, 나 내려갈테니까, 병원은 당신 혼자 꼭 가봐, 알았지?”


마침내, 주호는 이 말만 남기고는 챙겨왔던 짐을 다시 싸서 시골로 내려가 버렸다.


윤미는 다음 날 창피함을 무릅쓰고, 동네에서 아주 먼 피부과에 혼자 찾아갔다. 다행히 윤미의 몸에서는 사면발니가 발견되지 않았다.



제3부 뒷조사


윤미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주호에게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주호의 회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주호가 그날 이야기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는 회사 앞 카페로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윤미는 주호의 회사 친구들에게,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시는지, 술을 마시고 주로 뭘 하는지, 당구를 치고는 했는지, 그 후에 찜질방에 간 게 사실인지, 사면발니에 감염된 친구들은 또 없는지 등을 묻고 또 물었다. 주호의 회사 친구들도, 윤미의 추궁에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주호의 친구들 반응은 한결 같았다.

“제수씨, 이제 그만 하시죠. 저희가 무슨 죄라도 졌습니까? 부부사이의 일은 부부끼리 해결하세요.”


윤미도 그들이 짜증을 내는 이유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한 번 생긴 의심은, 확인하지 않으면 더 커질 뿐이었다.


그런데, 윤미의 그런 노력도 헛되이, 주호의 어느 친구도, 주호가 그 시골에서 다른 여자와 만났다거나,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간 후 잠을 잤다는 등의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한편, 윤미를 만나고 온 주호의 친구들도 주호를 찾아가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너 우리랑 헤어지고, 혼자만 좋은 데 갔던 거 아냐?', '진짜 찜질방에서 사면발니에 옮은 게 맞아?'라면서 괜시리 주호를 의심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원성과 의심까지 사게 된, 주호는 ‘이 여자가 내 뒷조사까지 하면서, 내 명예까지 훼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윤미에 대한 연락을 아예 끊어 버렸다.


그리고는,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면서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주호의 소장을 받아 든 윤미는, 한참동안 허공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바람을 피다 성병까지 걸려온 주제에, 누가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미는 법원 앞에 있는 변호사사무실 몇 곳을 들러 상담을 했다.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사건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사면발니는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미에게 친구분들을 찾아간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했다. 윤미는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채 이혼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제4부 법정


원고인 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판사님, 저는 결혼 생활 내내 피고의 의부증에 시달렸습니다. 피고는 하루에도 서너번씩 전화를 해서, 제가 뭘 하는지 세세하게 감시를 했습니다. 저도 신혼 때는 피고의 애정과 관심 때문이라고 이해했는데, 점점 그 정도가 너무 심해져서 이제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피고인 윤미도 차분히 반박했다.

“판사님, 저는 원고의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주말부부를 하는 남편이 밥은 먹는지, 집에는 들어왔는지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원고가 떳떳하지 못하니까, 저의 행동을 감시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사면발니입니다. 원고는 부정행위를 하다가 사면발니에 감염된 것입니다. 그렇게 부정행위를 하는 게 들킬까 두려워 저의 전화를 감시라고 하면서 피한 것입니다. 혼인파탄의 귀책사유는 원고에게 있습니다.”


주호는 사면발니이야기에 다소 흥분한 듯,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판사님! 판사님도 아시다시피 사면발니는 성관계 이외의 경로로도 많이 옮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원고에 대한 의부증 때문에 원고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원고의 부정행위를 밝힌다면서, 저희 친구들에게까지 찾아가 저에 대한 뒷조사까지 했습니다. 원고의 의부증이 혼인파탄의 원인입니다.”


판사는 당사자들을 차례로 보다가, 윤미에게 물었다.

“주호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직접 만나신 게 맞아요?”

"네"

“그래서 원고가 어떻게 사면발니에 걸렸는지 알아내셨어요?”


윤미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한 채 눈으로만 '아니요'라 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미의 눈빛은 흔들렸고, 입술도 바짝 말랐다. 손은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듯 허공을 갈랐다. 윤미는 그 상황에서 무언가라도 한 마디 해야 했다.


“그렇지만, 판사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피고, 저에게는 상식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합니다.”


판사가 윤미의 말을 냉정하게 끊어 버렸다.

윤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억울했다. 몸에서 생각만 해도 징그러운 사면발니가 나온 건 주호인데, 왜 자신이 피고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판사는 양 측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원고와 피고는 화해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혼인생활을 시작하실 생각이 없나요?”


양쪽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사자들의 의사는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4주후에 조정을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정이 안 되면, 선고기일은 그 때 지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판사는 그렇게 그날의 재판을 마쳤다.



제5부 판결


조정절차는 오래 걸렸다. 의견 차이는 좁혀질 것 같다가도,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조정은 결렬되었다. 윤미는 의심을 끝내 지울 수 없었고, 주호도 끝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몇 달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판결이 선고되었다. 결과는 '원고의 본소 및 피고의 반소에 의하여, 원고와 피고가 이혼하고, 원고와 피고의 위자료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① 원고와 피고는 혼인 초부터 주말부부 생활을 하였으므로, 피고로서는 부부로서 원고와 생활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원고는 피고의 이와 같은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집착하면서, 원고의 생활에 간섭하려 한다고 치부한 채 피고와 진지한 대화 등을 하지는 아니한 잘못이 있다. ② 다만 피고도 뚜렷한 증거 없이 원고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채 <사면발니>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원고가 부정행위를 하였다고 의심하면서 원고의 친구들을 만나 그 경위를 조사하는 등 원고와의 갈등을 심화시킨 잘못이 있다. ③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와 피고 모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며 갈등을 키웠다는 점에서, 혼인 파탄에 대한 책임은 어느 쪽이 더 무겁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등하다고 판단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와 피고의 위자료 청구는 모두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제6부 에필로그


판결문은 얇았고, 사면발니는 그 안에 한 줄로 남았다. 재판을 통해서도 어떻게 옮았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면발니라는 단어가 담긴 그 판결문의 한 줄로 두 사람은 더 이상 부부가 아니게 되었다.


윤미의 스마트폰은 이제 조용하다. 하루에 몇 번씩 전화기를 쥐고 주호에게 연락을 하던 열정은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가끔 검색어에 사면발니라는 단어를 입력하곤 한다. 의심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주호는 이제 더 이상 영상통화에 시달리지 않는 온전한 자유를 얻었다. 퇴근 후 싱크대에 설거지를 며칠씩 쌓아두어도, 화장실 청소를 한 달 넘게 하지 않아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가끔... 새벽에 혼자 차를 몰고 어디론가 나가기도 했다.


윤미의 의심이 사실이었는지는, 끝내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게 이 사건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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