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단편 소설집에 참여해 보자 - 상편

by 권은강

지금도 묘하게 실감이 안 난다.

투석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진짜 2년 후에 복막 투석에 들어가는지, 갑자기 신기술이 뿅 나와서 안 일어나는 일은 아닐지. 경계가 흐릿해서인지 요즘은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감각하게.


처음 투석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달랐다. 그땐 진짜로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매번 현실이 싫어서 울고 짜고, 울고 자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내게 동아줄이 된 건, 뜻밖에도 참여하게 된 단편 소설집이었다.


운 좋게 작가와 함께 단편집 한 권을 발간하는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퇴근 후 직장인들이 모여 8주 동안 글을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전체 비용은 반액 지원받아 25만 원 정도.

초반에는 작가로부터 소설 쓰는 방법론에 대한 수업을 듣다가, 중후반부에는 각자 글을 써서 10분씩 피드백받는 식이었다.

그때 나는 투석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뇌세포의 유통기한이 반쯤 상한 상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주제는 자연히 글 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혹은 복수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일어난 이 무력하고 흐릿한 경험을, 생산적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치환해 버리자는 울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단편 소설 작성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일단 소설을 쓰기 전에 트리트먼트라는 걸 써야 한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트리트먼트? 머리에 바르는 린스 친구인가. 내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트리트먼트 : 시놉시스를 확장하여 장면과 구체적인 상황, 갈등, 인물 관계를 서술한 형태.

간단히 말하자면, 소설의 설계도이자 골격이었다. 피와 살에 해당하는 대사, 묘사는 없어야 하는 상태. 최소한 3막 구조, 혹은 기승전결 혹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요약해서 쓰면 된다.


내가 처음에 쓰기로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크게는 사회 구조 변화에서 작게는 배신과 희생에 대해 그려나갈 작정이었다.

나름 심혈을 다해서 과제를 해 갔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았다.


"주인공이 사이코 같아요."

"이야기가 혼자 퀀텀 점프해서 독자가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