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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Dec 07. 2024

상흔

늦덕의 의미

나의 덕질은 자신과의 아이스 브레이킹이다.




하루종일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고갱님과 눈맞춤 하는 이 일상이고, 지인 및 불특정 타인과의 시선에도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애정하는 가수의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데 문득 내가 화면 속 가수의 표정들을 피해 자막 또는 노래가사에 시선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물론 노래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클로즈업이 아닌 에서는 화면에 집중한다는 것은.


뭐지?


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선택지는 딱 2가지 일뿐 매 순간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살고 있다 생각했건만, 투명한 눈빛으로 상대의 표정과 보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순간,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아차! '싶다.


정말 아무런 의식도 담기지 않은 그대로의 내가 담긴 눈빛을 타인에게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상대의 같은 눈빛을 알아차리고 받아준 적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나를 향한 그 시선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러니, 정확히는 내 감정을 들키 것보다 상대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감정을 알아차리고 받아주는 것에 대한 거부다.


오롯이 온전하게 내 모든 것을 받아주는 이에게만 보일 수 있는, 내 마음을 아주듯 네 마음이 고 싶어야 열리는 서로를 향한 투명한 눈맞춤을 잃었다.


일상과 섞이지 않고 one way 덕질에서 오는 편안한 대상이기에 보일 수 있는 3년 가까이 내보인 적 없는 맑은 눈빛이 마중물을 만났다. 의식적으로 화면 속 대상의 표정을 살피고 눈맞춤도 해본다. 판단이 필요치 않는 수용이다.


문고리를 걸어두고 빼꼼  눈치만 살피던 마음이 드디어 삐걱삐걱 요란한 듯 서툴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첫손님이 제일 어려운 법이니.


위로는 상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준비된 마음이 알아서 받는 것이기에 때늦은 덕질이 밟고 밟아 굳어진 딱딱한 흙을 보슬보슬한 옥토로 만들어주지 않으려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줄 것 같기도.




내면과 어색한 재회를 시작한 하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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