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온전함이다.
투박함에 끌려 새로운 개완을 마음에 들였다.
검은 외형에 하얀 내면을 가진 투박한 개완 앞에 발길을 멈춘다. 한동안 다구보다 tea 자체에 관심을 쏟으며 더 이상 다구는 들이지 않겠노라 했는데, 발길이 돌고 돌아 다시 이 앞이다.
안다. 이건 기필코 내 손에 들려 집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기고 뜨거운 물에 씻어서 깨끗한 면포로 닦은 후 좌식 찻자리로 옮긴다. 몇 달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던 다구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개완세트가 자리를 잡는다. 설렌다. 다른 마음은 없다.
첫 찻물이 담기는 차는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고른 '유기앵화홍'을 우린다. 평소처럼 개완날의 어디쯤에 물줄기를 맞춰 물줄기를 잡는데 넘친다. 자연스럽게 개완 끝까지 닿는 물줄기는 또 자연스럽게 넘치지 않고 개완 안으로 흐르던 다른 개완과 다르다. 개완날의 중간정도까지 물을 담고 찻물을 공도배에 따른다. 아슬아슬 주구에 넘치기 직전까지 담긴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숨을 한 번 고른 후 따뜻한 온기를 마신다. 천천히 마음을 비우며 잔을 비우는데 3번째 잔을 채우고 애매하게 찻물이 남는다. 개완세트에 있는 잔은 3개다. 즉, 3번 찻잔을 채우면 되는 양이어야 한다. 그런데 3번째 잔을 비우고 4번째 잔에 찻물을 담는데 5할 정도 담긴다.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떻게 이 다구를 내 마음에 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첫 찻자리를 정리한다. 그렇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새로 들인 다구는 그 속을 모르겠다.
주말 아침, 따스한 햇살이 창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차 마시기 딱인 시각이다. 여전히 썸 타는 중인 다구를 본다. 첫 만남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픈 마음에 '유기앵화홍'을 준비하고 자리를 잡는다.
개완날보다 살짝 아래에 맞춰 물줄기를 잡고 물이 밖으로 넘치지 않게 조금은 가는 물줄기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찻잎을 적신다. 물도 개완날이 시작되기 직전의 어느 부분까지만 담는다. 그렇게 온 마음이 물줄기와 찻잎에만 존재한 후에야 찻물이 우러나기 시작한다.
공도배에 옮겨진 찻물의 양도 적당하다. 첫 잔부터 세 번째 잔까지 적당한 양의 찻물을 담은 후 공도배에 남겨진 찻물이 없다. 온전한 비움이다.
처음부터 기준이 달랐던 개완은 조금 덜 담았을 때 온전히 비워질 수 있는 거였다.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집중했을 때에만 마주할 수 있는 온전함이 깃든 다구였다. 이렇게 새로운 다구는 온전히 나의 찻자리에 마음을 둔 존재가 된다.
비스듬히 더 깊이 스며들기 시작한 햇살이 얼굴에 스치기 시작한다. 방석과 차탁을 뒤로 물리지 않고 그대로 햇살을 받으며 찻자리를 내려다본다. 햇살에 따스함이 깃든 다구들과 그 다구들의 그림자로 채워진 찻자리가 아름답다. 음양의 조화를 닮은 흑백의 새 다구가 지금의 나의 마음과 가장 닮은 것은 아닌지 들여다봐진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여리고 섬세하다는 것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양은 적지만 보여지는 마음은 온전하다는 것을.
열심히 거울을 닦고 있는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