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곳없이 바다 앞에 서 있길
흐린 날 수평선은 모호한 게 아니었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거닌다. 소품샵에 들러 앙증맞은 귤모양 도자기와 티코스터를 사고, 또 기웃기웃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임대'라고 적힌 빈 상가들이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 잠시 세화에 들렀다 우도에 머무는 일이 더 많아져서였을까? 익숙했던 가게들이 이렇게 사라진 줄 몰랐다. 뭔지 모를 허전함과 씁쓸함을 뒤로하고 걷는다. 목적지에 들러 다점 겸 내일 조식으로 먹을 빵을 사서 다시 걷는다. 그렇게 돌아 내려오니 바다다.
흐린 날의 바다는 하늘과의 경계가 모호하여 생각의 타래를 많이 펼치게 했는데, 오늘 마주한 흐린 날의 바다는 더없이 선명한 경계를 보여준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의 상태는 하늘의 것이고 품 넓은 바다의 상태는 바다의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 선명한 한 줄기의 푸르름에 정신이 번쩍인다. 이렇게 깔끔하게 선을 긋는 바다가 있다. 그리고 힘차게 부서지는 시원한 파도소리가 있다.
새삼 명쾌한 바다에 또 반하고, 한층 가벼워진 기분으로 코앞 숙소로 복귀한다. 포트에 물을 올리고 유일하게 색감이 있는 쑥빵을 접시에 담아 찻자리를 준비한다. 아침과 다르게 본연의 향미를 온전히 전해주는 차를 마시며 다점도 한입 베어문다. 예상과 다르게 달지 않고 담백한 쑥빵과의 페어링이 훌륭하다. 멍하니 기분 좋게 찻자리를 하며 바다를 보는데 날씨가 더 흐려진 것 같다.
밖과 실내의 기온차 때문인건지 뿌옇게 된 창문이 날씨를 더 흐리게 보이게 한 거다. 그럼에도 예쁜 바다가 기특해 사진을 찍고 확인을 하는데 이상하다. 아무런 장치 없이 정직하게 찍은 사진인데 흐릿한 창문을 통과해 찍힌 풍경을 확대하니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다. 사진을 거꾸로 봐도 될 만큼 비슷한 색이다. 현실과 다르게 인식되는 각인. 고요하기만 한 파도소리.
무엇이 현실이고 진실인지 몽롱해지는 액자 속 풍경사진 같은 창밖 바다와 내가 선택한 BGM으로 가득한 공간.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하늘은 하늘이고 바다는 바다라는 듯 수평선 끝에 그어져 있는 강하고 선명한 한 줄기 선이 힘 있게 그어져 있다.
너무 평온한 일상 속에 따사롭고 자극 없이 묻혀있다 보면 준비 없이 들이닥친 상황에 뿌연 감정의 필터가 씌워져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직시해야 하는 기준을 놓친다. 나를 놓친다.
그럼에도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 감각은 놓치지 않고 있었던 하루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