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저 죽고만 싶구나. 흐느끼며 그녀 날 떠났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지. 사포여, 이 얼마나 우리에게 아픔인지요, 저는 제 뜻에 거슬러 그대를 떠나나이다. 나는 대답했네. 기쁘게 가려무나. 그리고 날 기억해다오. 우리가 너를 얼마나 아꼈는지 너는 알리라. 아니라면, 내 되새겨주리. [ ] (…) 우리가 나누었던 아름다운 시간들. 제비꽃이며 장미며 크로커스 엮어다 지은 숱한 화관들 (…) 너는 내 곁에서 썼다네. 네 가녀린 목에 둘렀던 꽃으로 자아낸 그 많던 향기로운 화환들도. 그리고 (…) 여왕에게 어울릴 법한 깨끗하고 달콤한 기름을 (…) 너는 발랐네 (…)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 (…) 섬세한 (…) 너는 네 갈망을 풀었더랬지. 어느 (…) 어떠한 성역도 우리 가보지 아니한 곳 없었네. 어떠한 동산도 (…) 춤과 (…) 소리로.
※ Reproduced with permission of the Licensor through PLSclear. ※ Rayor, Diane J., trans. & ed. Sappho: A New Translation of the Complete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 2023. Introduction and notes by André Lardinois.
<뮈틸레네 정원의 사포와 에린나>
오른쪽의 노란 옷을 입고 화관을 두른 좀더 나이든 여성이 사포, 그가 껴안고 입맞추고 있는 분홍빛 옷의 젊은 여성이 에린나다. 다만 화가의 지식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에린나는 사포와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 좀더 후대의 여성 시인이었다.
<note> 사포 곁을 떠나야 하는 어떤 여성과 사포(화자의 이름이 사포로 명시되어 있다.)의 대화를 노래한 작품이다. 여성이 왜 떠나야 하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다. 결혼을 하게 되어 미혼 소녀로만 이루어진 사포의 합창가무단에서 탈퇴하는 상황일 수도, 다른 합창가무단으로 가게 된 상황일 수도, 아니면 사포와의 동성연인 관계를 청산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슬픈 이별 장면에서는 사포의 다른 몇몇 단편에서 드러다는 저주나 질투 같은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떠나는 이에게 지금껏 함께 나누었던 추억을 "기억"해주기만을 부탁하며 담담히 떠나보낼 따름이다. 무엇을 기억해주길 바라는가? 꽃으로 엮은 관과 목걸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던 신성한 사원들... 이런 것들뿐 아니라 후대인들로 하여금 야릇한 상상을 하도록 자극할 수밖에 없었던, 상당히 끈적끈적한 느낌의 상황도 나타난다. 어쩌면 동성연인과의 뜨거웠던 육체적 관계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의 주장대로 당시 어린 소녀들이 통과했던 일종의 성인식 장면을 되새기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동성애자 사포의 이미지를 다시금 선명하게 만드는 작품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독자나 학자 나름, 그러나 동성애니 아니니 하는 증명 불가능한 논란을 넘어, 가슴 아픈 헤어짐의 상황 속에서 떠나는 이에게 남겨진 이를 기억해주길 당부하는 이 절절한 노랫말이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 "나 그저 죽고만 싶구나" : 첫 행의 이 말은 떠나는 여인이 하는 말인지, 화자인 사포가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다.